
격동의 젊은 시절
오노레 가브리엘 리케티, 이른바 미라보 백작의 젊은 시절은 극도로 격동적이었다. 그는 아버지와 끊임없이 충돌했고, 그 결과 여러 차례 감옥에 갇히는 처지가 되었다. 특히 방센 성(château de Vincennes)에 유폐되어 있던 기간은 그의 인생에서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는데, 그는 이곳에서 정부(情婦)에게 보내는 편지를 집필했으며, 1776년에는 그녀와 함께 감옥에서 탈출하는 파란만장한 행보를 보였다.
국민의회를 사로잡은 웅변
1789년, 미라보는 엑스(Aix) 지역 제3신분의 대표로 선출되어 정치 무대에 등장했다. 그는 뛰어난 웅변 실력을 앞세워 국민의회 안에서 빠르게 자신의 입지를 굳혔다. 당대 최고의 명연설가로 불린 그는 열정적이고 설득력 있는 연설로 청중을 압도했으며, 이를 바탕으로 군주제의 구원자가 되겠다는 야심을 품고 활동했다.
백성을 위해, 그러나 왕을 위해
궁정에 소개된 이후 미라보는 표면적으로는 혁명과 인민을 옹호하는 입장을 견지하면서도, 은밀하게는 왕에게 충성을 맹세하는 이중적인 행보를 걷기 시작했다. 그는 혁명의 진전을 통제하고 군주제를 지키기 위해 양측 사이에서 조정자 역할을 자임했다.
드러나기 직전의 갑작스러운 죽음
그러나 그의 이중 생활은 결국 의심을 사게 되었고, 반역죄로 고발될 위기에 처했다. 그러나 미라보는 자신의 비밀이 완전히 폭로되기 전인 1791년 4월, 갑작스러운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죽음은 프랑스 혁명사에서 '만약 살아 있었다면 역사가 달라졌을 것'이라는 끝없는 상상을 남기며, 오늘날까지도 많은 논쟁과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