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인물

필리프 에갈리테(Philippe Égalité): 루이 필리프 조제프 도를레앙 공작 (1747~1793)

필리프 에갈리테(Philippe Égalité): 루이 필리프 조제프 도를레앙 공작 (1747~1793)

루이 필리프 조제프 도를레앙(Louis Philippe Joseph d'Orléans)은 프랑스 혁명기를 대표하는 인물로, '필리프 에갈리테(평등한 필리프)'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그는 오를레앙 공작 필리프 2세의 증손자로, 1785년 아버지의 뒤를 이어 도를레앙 공작 작위를 물려받았으며 당시 프랑스에서 가장 부유한 인물이 되었다.

왕좌를 향한 야망, 프리메이슨의 거목

그는 프랑스 프리메이슨의 위대한 지도자였으며, 숨겨둔 야망은 바로 왕위에 오르는 것이었다. 삼부회에서 귀족 신분 대표로 선출된 그는 막대한 재산을 활용하여 10월 사건(베르사유 여인 행진)과 같은 혁명 운동을 배후에서 지원했다.

혁명가들을 거느린 막강한 영향력

탈레랑, 라파예트, 뒤무리에, 단통 등 당대 최고의 정치적 실력자들이 그의 후원 아래 있었다는 사실은 그가 프랑스 정치권에 행사한 영향력을 잘 보여준다.

바렌 사건 이후, 사촌 루이 16세의 처형에 찬성하다

1791년 바렌 도주 사건으로 왕실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무너지자, 그는 왕위 계승의 기회를 엿보며 자신을 왕으로 추대하려 시도했다. 나아가 1793년에는 자신의 사촌인 루이 16세의 사형에 찬성표를 던졌다. 이 결정은 그에게 '에갈리테(Égalité, 평등)'라는 별명을 안겨주었지만, 동시에 왕족으로서의 명분을 스스로 저버리는 결과를 낳았다.

급격한 몰락과 단두대의 최후

그러나 1793년 뒤무리에 장군과 그의 아들(훗날의 루이 필리프 1세)이 오스트리아로 망명하면서 그의 정치적 입지는 순식간에 무너졌다. 혁명 지도자 비야드바렌(Billaud-Varenne)은 그를 처형시키기 위해 지롱드파와 연관된 인물로 몰아 세웠는데, 실제로 그는 지롱드파와 아무런 관련이 없었다. 결국 그는 1793년 파리에서 단두대 아래 목숨을 잃으며 생을 마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