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르고뉴 공작에서 왕으로
라울(Raoul, ?~936)은 '정의공(正義公)'이라 불린 부르고뉴 공작 리샤르 르 쥐스티시에(Richard le Justicier)의 아들이다. 921년 아버지의 뒤를 이어 부르고뉴 공작 작위를 계승했으며, 서프랑크 왕 로베르 1세의 딸 에마(Emme)와 결혼하면서 왕가와 인척 관계를 맺었다.
923년 장인인 로베르 1세가 전사하자 왕국의 대귀족들은 라울을 새 왕으로 추대했다. 원래 왕위에 가장 유력한 인물은 로베르 1세의 아들이자 라울의 매부인 위그 대공(Hugh the Great)이었지만, 그는 왕이 되면 자신이 거느린 여러 백작령을 내놓아야 한다고 판단해 왕위를 사양한 것으로 보인다. 대신 매제를 왕으로 세우는 편이 실권을 손에 쥐는 데 더 유리했다.
샤를 3세 단순왕의 최후
즉위 직후 라울의 최대 과제는 폐위된 전임 왕 샤를 3세 단순왕(Charles le Simple)의 잔존 세력을 처리하는 일이었다. 그는 베르망두아 백작 헤르베르 2세(Herbert II de Vermandois)의 도움을 받아 샤를 3세를 축출하는 데 성공했고, 샤를 3세는 929년 감옥 안에서 생을 마감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결정적 역할을 한 헤르베르 2세는 급격히 세력을 불리며 오히려 라울이 견제해야 할 가장 강력한 위협이 되었다. 라울은 재위 기간 내내 헤르베르 2세의 세력 확장 시도에 맞서 싸워야 했다.
추락하는 왕권
현실적인 정치 감각과 군사적 역량에도 불구하고, 라울은 왕국 전역에서 왕으로서 인정을 받는 데 심각한 어려움을 겪었다. 각지의 영방 제후들은 점차 자신들의 이름으로 화폐를 주조하기 시작했는데, 이는 왕의 고유 권한을 침해하는 상징적 행보였다. 라울 치세에 서프랑크 왕국의 왕권은 사실상 최저점까지 떨어졌다.
936년 라울이 사망하자 위그 대공은 오히려 카롤링거 왕가로 눈을 돌렸다. 그는 바다 건너 잉글랜드에 머물러 있던 샤를 3세의 아들을 데려와 루이 4세(Louis IV d'Outremer, '바다 건너에서 온 자')로 즉위시켰다. 왕권이 너무 미약해진 상황에서는 카롤링거 왕조의 명망 없이 왕국을 통합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이다.
왕위 계승 흐름
- 로베르 1세(로베르 가문, Capetian family)
- 라울 — 프랑크인의 왕(923~936)
- 루이 4세 해외왕(Louis IV d'Outrem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