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핍 속에서 시작된 인생
요제프 괴벨스는 라인란트 지방의 라이트(Rheydt)라는 작은 도시에서 가난한 가톨릭 가정의 아들로 태어났다. 선천적인 질환으로 평생 다리를 저는 채 걸어야 했던 그는, 1922년 철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지만 문학 분야에서 이름을 알리는 데는 실패했다.
정치에서 찾은 무대
결국 그에게 명성을 안겨준 것은 정치였다. 같은 해 그는 국가사회주의 운동의 서기로 합류하며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했고, 주간지 Völkische Freiheit(민족의 자유)에서 논객이자 편집자로서의 뛰어난 재능을 드러냈다. 1926년 8월 히틀러는 그를 베를린 지구 관리자(가우라이터)로 임명했으며, 1928년에는 당 전체의 선전 책임자로 발탁했다.
정보선전부 장관, 나치즘의 입
1933년 제3제국 수립과 함께 정보선전부가 신설되었고, 괴벨스는 초대 장관으로 임명되었다. 집권 직후 그는 언론·예술·문화 전반에 대한 나치화 작업에 착수해 국외의 모든 정보 출입을 차단함으로써 국민이 접하는 정보를 완전히 통제했다. 극렬한 반유대주의자였던 그는 유대인 박해를 사실상 자신의 사명으로 삼았으며, 1938년 유대인 상점 약탈과 회당 방화가 벌어진 '수정의 밤(크리스탈나흐트)'의 배후 조종자로 지목된다. 그는 이 부서를 대중 선동과 전쟁 수행을 위한 강력한 무기로 만들었다.
히틀러를 따른 최후
총통에 대한 그의 충성은 끝이 없었다. 1945년 4월 30일 히틀러가 자살하자 괴벨스 부부는 살아남기를 선택하지 않았다. 5월 1일, 두 사람은 여섯 명의 자녀에게 독을 먹인 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는 히믈러, 히틀러와 함께 제3제국의 가장 강력하고도 악명 높은 권력자 중 한 명으로 역사에 남았다.
생몰년: 1897년 ~ 1945년
신분: 정치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