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인물

메리 투액스 얼리, 차별적 법에 맞선 원주민 여성 권리 운동가

카니엔케하:카(Kanien'kehá:ka)족, 즉 흔히 모호크(Mohawk)라고 불리는 아메리카 원주민 출신의 메리 투액스 얼리(Mary Two-Axe Earley, 1911~1996)는 원주민 여성과 아이들의 권리를 위해 평생을 헌신한 인물입니다. 수십 년에 걸친 끈질긴 투쟁 끝에 그녀는 차별적인 법 조항의 폐지라는 역사적 성과를 거두어냈습니다.

보호구역에서 보낸 어린 시절

메리 투액스 얼리는 1911년 10월 4일, 퀘벡주 카나와케(Kahnawá:ke) 인디언 보호구역에서 줄리엣 스미스(Juliet Smith)와 도미닉 오넨하리오(Dominic Onenhariio) 사이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부모는 모두 이로쿠이 연합(오대 부족 연맹) 출신으로, 어머니는 오네이다족, 아버지는 카니엔케하:카족이었습니다. 참고로 '모호크'라는 이름은 적대 관계였던 알곤킨족이 붙인 외부 명칭입니다. 부모가 별거하게 되자 어린 메리는 교사이자 간호사였던 어머니를 따라 미국 노스다코타주로 이주하여 자랐습니다.

1919년, 전 세계적으로 5천만~1억 명의 생명을 앗아간 스페인 독감 대유행 속에서 어머니 줄리엣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고아가 된 메리는 카나와케로 돌아와 조부모의 손에서 성장했습니다. 18세가 되던 해, 그녀는 일자리를 찾아 뉴욕 브루클린으로 떠났고, 그곳에서 아일랜드계 전기 기술자 에드워드 얼리(Edward Earley)를 만나 곧 결혼했습니다. 두 사람은 딸 메리와 아들 에드워드, 두 자녀를 두었습니다.

차별의 근원, 인디언법(Indian Act)

1876년 제정된 캐나다의 인디언법(Indian Act)에 따르면, '비(非)인디언' 남성과 결혼한 여성은 '인디언' 지위를 잃게 됩니다. 동화주의에 입각한 이 법은 누가 '인디언'이고 누가 아닌지를 정의하며, 이 지위를 캐나다 시민권과 양립할 수 없도록 만들었습니다. 여성이 비원주민과 결혼하면 지위를 잃지만, 원주민 남성이 비원주민 여성과 결혼하는 경우에는 지위가 유지되는 등 명백한 성별 차별이 담겨 있었습니다.

그 결과 메리와 가족은 더 이상 보호구역에 거주할 권리가 없었고, 보호구역 정치에 참여하거나 선거에서 투표하고, 그곳에 안장되는 것조차 불가능해졌습니다.

메리는 카나와케 보호구역에 있는 가족의 집을 상속받았지만, 법은 그녀에게 집을 빼앗을 위협이 되었고 보호구역 평의회는 그녀를 축출하려 들었습니다. 그녀는 자신을 "내 집의 손님"이라고 표현하기까지 했습니다. 메리가 간신히 집을 지킬 수 있었던 것은 딸 로즈메리가 성장하여 보호구역 출신 카니엔케하:카 남성과 결혼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뼈아픈 경험은 그녀가 법 개정 운동에 몸을 던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평생의 투쟁, 권리 운동가로서의 삶

1956년부터 메리 투액스 얼리는 인디언 문제 위원회와 함께 법 개정, 특히 여성의 삶에 미치는 악영향의 시정을 위해 활동했습니다. 1967년에는 '인디언 여성을 위한 인디언 권리(Indian Rights for Indian Women)' 단체를 공동 창설하고, 연설과 저술을 통해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같은 해 레스터 B. 피어슨 총리가 여성 단체들의 요청으로 캐나다 여성 지위 왕실 위원회를 설치하자, 메리는 의견서를 제출하며 적극적으로 참여했습니다.

1970년 1월, 위원회는 차별 철폐와 여성 지위 개선을 위한 167개 권고안을 발표했으며, 그중에는 인디언법 개정안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정부는 물론 이후의 퍼스트 네이션 총회(Asssembly of First Nations)조차 이 권고를 따르지 않았습니다. 메리는 굴복하지 않았습니다. 1974년에는 다른 여성들과 함께 퀘벡 원주민 여성 협회(Quebec Native Women's Association)를 설립했고, 점차 여성 의원들을 중심으로 정치적 지지 세력을 넓혀갔습니다.

1983년, 오타와에서 캐나다 권리헌장에 원주민의 권리를 포함시키기 위한 첫 번째 헌법 회의가 열렸습니다. 그녀의 대의에 깊이 공감한 퀘벡 주총리 르네 레베크(René Lévesque)는 자신의 발언 기회를 메리에게 넘겨 주며 정부 및 퍼스트 네이션 대표단 앞에서 연설할 것을 권유했습니다. 메리는 이렇게 호소했습니다. "부디 마음과 양심에 귀 기울여 주세요. 양심이 이끄는 대로 행동하여 내 자매들을 해방시켜 주십시오."

1985년 6월, 30년에 가까운 투쟁 끝에 캐나다 정부는 마침내 C-31 법안(Bill C-31)을 공포했습니다. 이 법안은 인디언법을 개정하여 그것이 만들어낸 차별 구조를 종식시키고, 수천 명의 여성들에게 박탈당했던 지위와 권리를 되돌려주었습니다. 한 주 후, 메리는 회복식에서 그 권리를 되찾은 최초의 여성이 되었습니다.

메리 투액스 얼리는 1996년 8월, 84세를 일기로 고향인 카나와케 보호구역에서 생을 마감했습니다. 그녀가 남긴 유산은 오늘날까지 원주민 여성 권리 운동의 초석으로 남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