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세계대전 중 벌어진 홀로코스트로 600만 명이 넘는 유대인이 학살되었습니다. 학살을 피해 살아남은 유대인들은 대부분 나치의 강제 수용소나 게토(유대인 격리 구역)에 갇힌 채 전쟁의 종식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소련군에 의한 최초의 수용소 해방
1944년 소련군이 폴란드 동부로 진격하면서 마이다네크(Majdanek) 절멸 수용소가 연합국에 의해 처음으로 해방되었습니다. 이어 1945년 1월에는 폴란드 서부로 진격한 소련군이 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Auschwitz-Birkenau) 절멸 수용소와 여러 소규모 수용소의 수감자들을 자유롭게 만들었습니다. 특히 1945년 1월 27일 아우슈비츠가 해방될 당시 현장에는 약 7,000명의 생존자만 남아 있었으며, 이날은 현재 '홀로코스트 추모의 날'로 지정되어 기념되고 있습니다.
미군과 영국군의 해방 작전
같은 해 봄에는 미군과 영국군이 서부 전선에서 진격하며 베르겐벨젠(Bergen-Belsen), 부헨발트(Buchenwald), 다하우(Dachau) 등 주요 강제 수용소의 생존자들을 해방시켰습니다. 병사들이 목격한 수용소 내부의 상황은 극도로 참혹했고, 오랜 굶주림과 질병에 시달린 생존자들은 해방 직후에도 상당수가 목숨을 잃었습니다.
전쟁이 끝날 무렵 연합군이 해방한 수용소에서 발견된 유대인 생존자는 수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정확한 숫자는 집계 방식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이들의 생존 증언은 홀로코스트의 실상을 세계에 알리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으며, 오늘날까지도 인류 역사상 가장 어두운 비극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