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9년 진수 당시 '산안토니오(San Antonio)'라는 이름으로 세계 최초의 모터 화물선이었던 이 배는, 1982년 '아리아드네(Ariadne)'라는 이름으로 엘스플레트(Elsfleth)에 정박했습니다. 그리고 같은 해 6월 12일, '그란트 헤르초긴 엘리자베스(Grand Duchess Elisabeth)', 즉 '엘리자베스 여대공비호'라는 새 이름을 갖게 됩니다.
글: 아이린 알텐뮐러(Irene Altenmüller)
1982년 3월 14일, 베저마르슈(Wesermarsch) 지역은 축제 분위기로 가득 찼습니다. 취주악대가 항구와 엘스플레트 시내 곳곳에서 연주를 펼치는 가운데, 수백 명의 시민이 3마스트 역사적인 가프 스쿠너 '아리아드네'의 입항을 축하하기 위해 몰려들었습니다. 지브 붐에는 이미 엘스플레트 시의 깃발이 펄럭였고, 이 대형 선박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이 도시 항구에 정박한 최초의 훈련선이 되었습니다. 몇 주 후인 1982년 6월 12일, 아멜리 폰 올덴부르크 공작부인이 상선 훈련선의 전통을 이어받는 이 가프 스쿠너에 '그란트 헤르초긴 엘리자베스'라는 세례명을 내렸습니다.
1909년, '산안토니오호'로 진수되다
세례식을 받기 전부터 '엘리자베스 여대공비호'는 이미 파란만장한 역사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1909년 8월 19일, 이 배는 '산안토니오'라는 이름으로 네덜란드에서 진수되었습니다. 이 스쿠너는 독일 해군 순양함 '엠덴(Emden)'과의 충돌로 건조된 지 1년 만에 침몰한 동명의 선박을 대체하기 위해 지어졌으며, 사고의 원인이 '엠덴'호에 있었던 만큼 독일 제국이 네덜란드 선주를 위해 새 선박 건조 비용을 부담해야 했습니다.
디젤 엔진을 단 3마스트 선박, 세계 최초
'산안토니오'는 당시 상선 분야에서 세계 최초의 기록을 세웠습니다. 디젤 엔진을 장착한 최초의 화물 항해 스쿠너였고, 3개의 돛대를 모두 접을 수 있어 라인강의 저상 교량 아래도 통과할 수 있었습니다. 이후 수년간 이 배는 남미와 지중해를 오갔습니다. 1914년에는 모로코 앞바다에서 좌초했지만, 엔진의 힘으로 다시 항해할 수 있었습니다. 1929년 겨울에는 또다시 사고가 이어졌습니다. 코펜하겐 앞바다에서 전복된 것이었는데, 다행히 선적된 목재 화물 덕분에 배는 물 위에 떠서 인양될 수 있었습니다.
1936년에는 '산안토니오'가 보조 돛을 갖춘 연안 화물선(코스터)으로 개조되었습니다. 전쟁 중에는 연합군에 보급품을 실어 나르는 데 동원되었고, 종전 후에는 스웨덴 국기를 달고 항해하며 여러 차례 주인이 바뀌는 동안 서서히 낡아갔습니다.
크루즈선 '아리아드네'로 맞이한 제2의 삶
'리시(Lissi)'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이 배가 훈련선으로 엘스플레트에 오기 전에는 화물선, 연안 화물선, 유람선을 두루 거쳤습니다.
1973년, 함부르크의 선장 하르트무트 파슈부르크(Hartmut Paschburg)가 마침내 '산안토니오'를 매입했습니다. 그는 낡은 배에 새 생명을 불어넣어 3마스트 스쿠너로 개조했고, '아리아드네'라는 이름으로 이 대형 선박은 독일에서 가장 유명한 범선 중 하나로 자리매김했습니다. 다만 1978년부터 파슈부르크는 점차 '씨 클라우드(Sea Cloud)'에 관심을 옮겨갔습니다.
훈련선을 찾는 엘스플레트
'아리아드네'는 1981년까지 지중해와 카리브해 크루즈에 투입되었습니다. 같은 해, 선장이자 선주인 호르스트 베르너 얀센(Horst Werner Janssen)을 회장으로 하는 '훈련선 협회 그란트 헤르초긴 엘리자베스(School Ship Association Grand Duchess Elisabeth)'가 설립되었습니다. 얀센은 당시 니더작센 주총리 에른스트 알브레히트(Ernst Albrecht)로부터 엘스플레트 항해학교의 매력을 한층 높여 달라는 요청을 받았습니다. 이 학교는 1832년부터 이어져 온 오랜 전통을 지녔으며, 원양 항해의 선장이 되기 위한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곳입니다. 그러나 전쟁 이후 실습 훈련은 더 이상 불가능했고, 학교에는 훈련선이 절실했습니다.
폭풍우 속 횡단, '아리아드네'의 엘스플레트 입항
정전과 예기치 못한 변수들: 폭풍은 3마스트 선박 '아리아드네'의 이동을 어렵게 만들며 승무원들에게 시련을 안겼습니다.
1981년 10월, 얀센은 그리스 피레우스(Piraeus)의 외딴 작은 부두에서 '아리아드네'를 발견했습니다. 그는 배를 전세 내어 우베 오데(Uwe Ode) 선장과 항해학교 학생들과 함께 엘스플레트로 이동시켰습니다. 그러나 항해는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먼저 기어박스가 손상되었고, 강풍으로 전력 공급이 일시적으로 끊겼으며, 마지막에는 전기 계통 이상으로 탱크가 뒤집히면서 내용물이 배 안에 쏟아지는 일까지 벌어졌습니다.
1993년, '엘리자베스 여대공비호'를 덮친 화재
'리시'는 1993년의 심각한 화재에서도 살아남았습니다. 오늘날 이 배는 브레머하펜의 'Sail 2015'를 비롯한 수많은 대형 세일 퍼레이드에 참가하고 있습니다.
수많은 장애물에도 불구하고 '아리아드네'는 마침내 엘스플레트에 도착했습니다. '리시'라는 애칭으로 불린 이 배는 곧 젊은 선원들을 훈련시키는 훈련선으로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1993년 3월 31일, 뜻하지 않은 좌절이 닥쳤습니다. 화재로 선내가 크게 파괴되었고, '리시'를 살릴 수 있으리라고 믿는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그러나 훈련선 협회는 포기하지 않고 주민들과 지역 기업들로부터 기부금을 모았습니다. 복구는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고, 배는 수리와 현대화를 거쳐 다시 바다에 나섰습니다.
길이 약 64m의 이 스쿠너는 오늘날까지 북해와 발트해를 누비고 있습니다. 때로는 항해 학생과 예비 선장들의 훈련선으로, 때로는 유료 승객과 자원봉사 승무원들과 함께 항해합니다. 2008년에는 당시 외무장관이자 현 연방대통령인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Frank-Walter Steinmeier)도 이 배와 함께 항해한 바 있습니다.
'리시'호와 함께할 선원을 환영합니다
현재 회원 920명 중 200여 명이 활동 중인 '훈련선 협회 그란트 헤르초긴 엘리자베스'가 배를 꾸준히 관리하고 있습니다. 협회와 배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습니다. 희망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선상에서 항해 기술을 배우고 '그란트 헤르초긴 엘리자베스'호에서 선원 자격 시험에 응시할 수 있습니다. 또한 바다보다 배 위에서의 새 출발을 원하는 커플이라면, 선장 라운지에서 '리시'호 위의 결혼식을 올릴 수도 있습니다.
'엘리자베스 여대공비호'의 주요 제원
건조 연도: 1909
전체 길이: 63.70m
폭: 8.23m
최대 돛대 높이: 33m
돛 면적: 800㎡
국적: 독일
모항: 엘스플레트
소유: 훈련선 클럽 '그란트 헤르초긴 엘리자베스(Grand Duchess Elisabeth)' e.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