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이야기

비잔틴 군대, 로마군과 무엇이 달랐을까?

비잔틴인들은 제국 전역에서 스스로를 '로마인'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들은 서로마 제국이 멸망한 뒤 제국의 중심이 콘스탄티노플로 옮겨왔다고 믿었으며, 자신들이야말로 고대 로마의 정통 후계자라고 확신했습니다. 그러나 어떤 면에서는 전임자들에게 크게 미치지 못했는데, 이를 지목한 이는 다름 아닌 비잔틴 학자입니다.

오늘날까지도 로마군은 효율적이고 강력한 군사 조직의 모범으로 꼽힙니다. 완벽하게 작동하는 군단은 제국과 불가분의 관계였으며, 제국 번영의 초석 가운데 하나가 되었습니다.

서로마 제국이 붕괴하고 콘스탄티노플이 '영원한 도시'의 문화적 역할을 이어받았을 때, 동방 역시 찬란한 군사 전통을 계승할 것처럼 보였습니다. 실제로 프린스턴 대학교의 비잔틴학 교수 존 홀든(John Haldon)이 저술한 『비잔틴 전쟁: 전략, 전술, 원정』에서 강조하듯, 역대 통치자들은 군사 문제의 중요성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제국 역사 전반에 걸쳐 군사 문제는 국가 운영의 근본 과제였습니다. 그렇기에 국가 연간 수입의 상당 부분이 군대와 관련 사업에 배정된 것도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낙후된 도로와 소극적인 공성전

그러나 같은 연구자는 실제로 비잔틴 군대가 과거의 위세에는 한참 못 미쳤다고 지적합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요? 홀든에 따르면 어려움은 가장 기본적인 단계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비잔틴 군대는 로마의 자랑인 완벽한 도로망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습니다.

"로마군이 그 효율성과 전투력을 누릴 수 있었던 것은 의심할 여지 없이 기원전 100년경부터 서기 100년경 사이에 대거 건설된 군사 도로망 덕분이었습니다. (...) 그러나 여러 사정으로 인해 로마 말기에는 정기적인 도로 유지보수가 심각하게 소홀해진 것으로 보입니다."

교수의 설명에 따르면, 도로가 주기적으로 보수되기는 했지만 더 먼 속주의 도로는 때때로 방치되었습니다. 그 결과 일부 구간의 상태는 처참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 드문 기록에 따르면 많은 도로가 거의 짐짐용 가축만 다닐 수 있는 오솔길로 변했으며, 포장된 노면은 도시와 요새 근처에서만 발견됩니다"라고 홀든은 적습니다.

게다가 콘스탄티노플의 지휘관들은 선조들의 기술적 성과를 별로 활용하려 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고대의 전통을 내세웠음에도 불구하고 동로마의 공성술은 특별히 정교하지 않았습니다"라고 이 비잔틴 학자는 확언합니다. 공성 기계가 때때로 사용되기는 했지만, 비잔틴 병사들은 대체로 그저 기다리며 적을 굶겨 항복시키려 했습니다. 성벽 밑으로 갱도를 파고드는 시도도 있었는데, 이 두 가지 전략이 고전적인 돌격보다 훨씬 선호되었습니다.

교수는 나아가 당대 사료에 등장하는 공성 기계 사용 기록마저 의심합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이런 기록은 순전히 문학적 관습 때문에 남아 있을 뿐이라는 것입니다. 비잔틴 저술가들은 고대 문서를 아낌없이 베껴 쓰는 경향이 있었다고 합니다. "예컨대 역사가 레온 디아코노스(10세기)가 크레타의 무슬림 요새 찬다크스 공성전을 기술한 내용은 아가티아스(6세기)의 유사한 공성전 묘사를 그대로 가져온 것입니다"라고 홀든은 지적합니다.

부재한 '부사관' 계급

그러나 교수가 동로마 군대에 대해 가장 크게 지적하는 문제는 '유능하고 총명한 지도력에 대한 의존'입니다. 그의 견해로는 "최고 사령관의 자질이야말로 비잔틴 전쟁의 성패를 좌우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였습니다. 왜일까요? 그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1~2세기의 로마 군단과 달리 비잔틴 군대에는 신뢰할 만하고 검증된, 자기 인식을 갖춘 '부사관(NCO)'이 없었습니다. 즉 규율을 유지하고 개별 부대와 하위 부대를 관리하며, 전술 상황에서 상급 장교의 부족함을 메워줄 수 있는 인력이 없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지휘부의 자질이 결정적이었습니다. 사기와 규율부터 효율적인 물류까지, 모든 것이 최고 사령관의 역량에 달려 있었기 때문입니다."

일관성 없는 지휘는 흔히 병사들의 낮은 사기와 함께 나타났고, 때로는 터무니없는 상황까지 초래했습니다. 813년 베르시니키아 전투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긴 대치에 지루함을 느낀 일부 부대가 스스로 전투에 뛰어들어 버렸습니다. "마케도니아 테마의 스트라테고스는 참지 못하고 황제에게 더 이상 지체할 생각이 없으며 곧바로 공격을 개시할 것이니 중앙과 좌익이 뒤따라주기를 바란다는 메시지를 보냈습니다"라고 『비잔틴 전쟁』의 저자는 전합니다.

그렇다면 비잔틴 제국이 거의 천 년을 버틸 수 있었던 까닭은 무엇일까요? 홀든에 따르면, 동로마 군대가 "터무니없이 서툰 지휘"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적군은 대개 기본적인 조직조차 갖추지 못한 경우가 많았기에 여전히 우위를 점할 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그는 비잔틴 군대를 일괄적으로 매도하지는 않지만, 로마군에는 한참 못 미쳤다는 사실은 분명히 밝힙니다.

출처

  • John Haldon, 『비잔틴 전쟁: 전략, 전술, 원정(The Byzantine Wars: Strategy, Tactics, Campaigns)』, Rebis, 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