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물리학자 니세포르 니에프스(Nicéphore Niépce)는 주석판 위에 유대 역청을 감광시켜 자신의 창문 풍경을 담아낸 인물로, 사진 발명가 중 한 사람으로 평가받습니다. 이후 그의 동포 루이 다게르(Louis Daguerre)는 최초의 신뢰할 수 있는 사진 기법을 발명하여 1839년 과학 아카데미에 발표했습니다. 19세기의 이 발명은 이미지와 인간의 관계를 혁신적으로 바꾸었고, 매체 문명이라는 새로운 시대의 도래를 예고했습니다. 그때까지 어떤 사건이나 장면, 얼굴의 기억을 남기는 일은 오직 화가나 조각가만이 가진 고유한 능력이었습니다. 휴대가 가능하고 사용하기 쉬워진 사진은 점차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기술로 자리 잡았습니다.
니세포르 니에프스와 사진의 발명
10세기 전후 아랍 세계의 수많은 발견과 발명 가운데, 암실(카메라 옵스큐라)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암실은 사진 발명에 필수적인 요소였습니다. 사진은 18세기 은염의 감광성 연구에서 시작된 긴 기술적 과정의 산물입니다. 감광지에 사물의 흔적을 남기는 데는 성공했지만 이미지를 영구적으로 정착(정착액 처리)하지는 못했습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일찌감치 이 암실에 비친 상을 고정하는 아이디어를 구상했지만, 실제로 실현된 것은 1826년 프랑스인 니세포르 니에프스에 이르러서였습니다. 그는 유대 역청 용액과 라벤더 에센스를 입힌 백랍판을 8시간 동안 노출시키는 방식으로 이를 구현해냈습니다.
니세포르 니에프스(1765~1833)는 손쉬르손 출신의 프랑스 물리학자입니다. 1813년 그는 빛의 작용으로 그림을 얻어내려는 목적으로 석판술에 관심을 갖게 되며, 두 가지 연구 경로에 집중합니다. 하나는 니스로 반투명하게 만든 판화를 복제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휴대용 카메라 옵스큐라('암실')로 얻은 이미지를 고정하는 것이었습니다. 같은 해인 1816년 5월의 편지에서 그는 은염으로 얻은 명암이 반전된 이미지를 언급했지만, 직접적인 포지티브 방식을 추구하던 그는 이 '네거티브'에 만족하지 못했습니다.
이후 니에프스는 염화은, 구아이악 수지, 인, 유류 등 다양한 물질의 감광성을 종이, 유리, 금속, 돌 등 여러 지지체에 적용하며 암실 안에서 실험을 이어갔습니다. 1819년부터는 판화가들이 식각 작업에 쓰던 재료인 유대 역청을 먼저 유리판에, 이어서 연마된 백랍판에 사용해 보았습니다. 바로 후자의 방식 덕분에 1826~1827년, 생루드바렌느의 그라에 있는 자신의 집 창문에서 바라보는 풍경 여러 장을 담아낼 수 있었습니다. 그중 1827년에 촬영된 한 장 — 노출에 무려 사흘이나 걸린 것으로 전해집니다 — 은 현재까지 알려진 최초의 사진으로 간주됩니다. 니에프스는 자신의 발명을 헬리오그래피(héliographie, '태양으로 쓰기')라고 불렀습니다.
다게레오타입의 성공
이 발명은 곧 니에프스의 동업자이자 또 다른 사진의 선구자인 자크 다게르(Jacques Daguerre)에 의해 빠르게 발전했습니다. 그의 첫 번째 다게레오타입은 1837년에 완성되었습니다. 그의 기법은 요오드 증기에 감광성을 부여한 은도금 동판을 '노출'시킨 뒤, 수은 증기로 이미지를 '현상'하는 방식이었습니다. 1839년 다게르는 직접 포지티브 시험에 성공했고, 이 기법은 같은 해 과학자이자 의원인 프랑수아 아라고(François Arago)가 과학 아카데미에서 발표하여 큰 열광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다게레오타입의 권리가 공유되면서 이 발명은 프랑스 전역과 세계로 빠르게 확산되었습니다. 당대 사람의 기록에 따르면 “광학 상점들은 다게레오타입을 갖고자 하는 애호가들로 붐볐고, 어디서나 사람들이 기념비를 가리키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모두가 자기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을 담아내고 싶어 했다”고 합니다.
다게레오타입의 성공은 다른 기법들을 가려버렸지만, 윌리엄 헨리 폭스 탤벗(W. H. F. Talbot)은 연구를 멈추지 않고 여러 장의 포지티브 인화를 만들 수 있게 해주는 칼로타입(calotype)을 개발했습니다. 사진은 이렇게 '복수 인화'의 시대로 접어들었습니다. 다게레오타입은 단 하나의 원본만 만들 수 있었던 것과 대조적이었습니다. 1850년대부터는 습식 콜로디온, 이후에는 겔라틴-할로겐화은 감광면의 개선과 함께 다게레오타입의 쇠퇴가 시작되었습니다. 렌즈는 날로 정교해졌고, 색채 사진 역시 두 프랑스 발명가 루이 뒤크로 뒤 오롱(Louis Ducros du Hauron)과 샤를 크로(Charles Cros)에 의해 첫 기술적 발전을 맞이하게 됩니다.
1841년 영국의 탤벗은 네거티브-포지티브 방식을 발명하여 인화물의 복제를 가능하게 했습니다. 이 두 가지 발견은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절부터 시작된 광학 연구(카메라 옵스큐라, 즉 '암실')와 은염의 감광성에 관한 화학적 연구의 결정체였습니다. 카메라는 암실과 렌즈로 구성되며, 그 작동 원리는 인간의 눈에서 영감을 받은 것으로 조리개는 외부 빛의 양에 따라 조절됩니다. 카메라 안에 삽입된 감광 필름에서 사진사는 네거티브(현실과는 명암이 반전된 이미지)를 얻고, 이를 인화지에 칼라 또는 흑백으로 인화하게 됩니다.
가족 초상의 유행
기술이 진보했음에도 몇십 분에 달하는 노출 시간은 사진의 활용 범위를 제약했습니다. 스튜디오에서 촬영된 가족 초상이야말로 사진의 성공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순회 사진사들이 등장하면서 누구나 자기 초상을 벽난로 위에 자랑스럽게 걸어둘 수 있게 되었고, 이로써 새로운 직업이 탄생했습니다. 기술 과정이 실제로 복잡하고 번거로웠기 때문입니다. 카메라를 설치하고 조율하며, 노출을 조절하고, 네거티브로 쓰일 유리판을 현상·정착한 뒤, 마지막으로 사진 이미지를 인화·정착해야 했습니다.
그럼에도 귀족적 전통이었던 가족 초상의 관습을 이어받은 산업·상업 부르주아지의 요구는 매우 컸습니다. 1841년에는 유럽 최초의 초상 스튜디오가 런던에 문을 열었고, 가족의 역사를 기록하는 스크랩북이 등장했습니다. 미국의 시골에서는 순회 사진사들이 농부들에게 가장(家長)의 초상을 거실 벽에 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습니다. 1850년대부터는 '명함판 사진'이 세계의 유력 인사들에게 인기를 끌며 교류의 수단으로 오갔고, 나다르(Nadar)나 디스데리(Disdéri) 같은 파리의 대형 스튜디오들은 유명인 초상 사업에 뛰어들었습니다.
새로운 직업, 사진가
새로운 직업, 즉 사진가가 등장했습니다. 이 직업은 오직 전문가만이 숙달할 수 있는 복잡한 기술 과정에 기반했습니다. 사진가는 카메라를 준비하고 조율하며, 노출과 현상을 거쳐 네거티브로 쓰일 유리판을 정착시킨 뒤, 포지티브 인화를 인화하고 정착해야 했습니다. 첫 세대의 사진가들은 1860년부터 1880년 사이에 등장했으며, 아마추어 사진이 발전하기까지는 1890년대를 기다려야 했습니다.
초상이 다게레오타입, 그다음에는 칼로타입의 주요 응용 분야였지만, 사진이 초상에 국한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건축과 풍경 사진이 주제의 폭을 넓혔고, 과학적 활용 역시 확산되었습니다. 불과 수십 년 만에 사진은 일정한 기술적 성숙에 도달했습니다. 사진은 그동안 사용되던 모든 복제 기법을 서서히 대체해 나갔고, 점차 예술로서의 지위를 획득해 갔습니다. 대중 사진으로의 전환은 그보다 뒤에 일어났으며, 그 공은 미국의 실업가 조지 이스트먼(George Eastman)에게 돌아갑니다.
이스트먼 코닥, 모든 이를 위한 사진
19세기 말, 이 미국의 실업가는 은염 사진 기술의 발전을 통해 사진을 대중화했습니다. 셀룰로이드 필름이 유리판을 대체하면서 여러 장의 연속 촬영이 가능해졌습니다. 이미 1884년 그는 유연한 감광면과, 카메라 내부 저장 장치에 여러 이미지를 담을 수 있는 셀룰로이드 필름을 완성했습니다. 필름은 되감기 장치와 결합되어 다루기 쉽다는 이유로 유리판을 대체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런 개선에도 불구하고 상업적으로는 성공하지 못했고, 그는 새로운 고객층을 개발해야 했습니다.
이를 위해 이스트먼은 제품을 손쉽게 다룰 수 있는 기기로 변모시켰고, 1888년 필름을 장착한 휴대용 카메라 '코닥(Kodak)'을 출시했습니다. 고객이 100장의 사진을 모두 찍으면 기기 전체를 공장으로 되돌려 보내면 되었습니다. 공장에서는 필름을 현상하고 카메라에 새 필름을 장전한 뒤, 현상된 사진과 함께 되돌려 보냈습니다. 그 비용도 부담 없는 수준이었습니다. 이는 사용 편의성에 기반한 통합 시스템이었으며, 슬로건이 강조했듯이 “당신은 버튼만 누르세요. 나머지는 우리가 합니다.” 이로써 아마추어 사진이 탄생했습니다.
그 이후 사진은 과학, 언론 매체, 예술 등 다방면에서 활용되고 있습니다. 나다르에서 두아노(Doisneau)에 이르기까지, 카파(Capa)와 카르티에브레송(Cartier-Bresson) 같은 위대한 포토저널리스트들, 그리고 브라사이(Brassaï), 부바(Boubat)처럼 사회의 기억을 사진으로 남긴 이들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사진가가 역사에 이름을 남겼습니다. 1930년 이후 독립된 예술로 자리 잡은 사진은 스트랜드(Strand), 웨스턴(Weston), 모홀리너기(Moholy-Nagy), 맨 레이(Man Ray), 로트첸코(Rodchenko) 등의 작품을 통해 자신만의 고유한 특성을 탐구해 나갔습니다.
20세기 사진 분야의 혁신
- 1913년: 독일의 오스카 바르낙(Oskar Barnack)이 라이카(Leica)를 제작합니다.
- 1930년: 독일의 요한 오스터마이어(Johann Ostermeyer)가 플래시 전구 특허를 출원합니다.
- 1948년: 즉석 현상이 가능한 폴라로이드(Polaroid)가 개발됩니다.
- 1990년: 소비자용 디지털 카메라가 처음 상업화됩니다.
더 읽을거리
- 『사진: 역사와 반(反)역사』, 프랑수아 브뤼네, PUF, 2017.
- 『사진의 역사』, 피에르장 아마르, Que sais-je, 2020.
- 『모든 이를 위한 사진의 역사』, 이안 제프리스, Hazan, 2021.
함께 알아보기
- 프랑스 사진 박물관(비에브르, 에손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