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항 없이 무너진 영국 영토, 나치 선전의 완벽한 무대가 되다
1940년, 독일군이 프랑스를 정복하자 해협에 자리한 채널제도(Channel Islands) 역시 순식간에 독일의 수중에 들어갔다. 이 제도는 명목상 영국 영토였지만 군사적 가치는 거의 없었다. 그럼에도 독일이 이곳을 점령한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 바로 괴벨스의 선전 전선에 완벽한 소재를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채널제도는 나치가 대영제국으로부터 손에 넣은 유일한(그리고 마지막) 영토였다. 이제 남은 일은 하나뿐이었다. 섬 주민들이 나치를 두 팔 벌려 맞이했다는 사실을 온 세상에 보여주는 것.
그러나 그렇게 간단한 일은 아니었다. 채널제도 주민들은 독일인을 극도로 경계하고 있었고, 이미 수천 명이 전쟁이 닥치기 전에 잉글랜드로 피신한 상태였다. 섬에 남은 사람들 역시 힘겨운 점령에 수동적으로 버티며 하루하루를 넘길 뿐, 대륙에서 건너온 이른바 '초인(超人)'들과 협력할 생각을 하는 이는 거의 없었다. 시간을 낭비하기 싫었던 독일 점령 당국은 상륙한 지 며칠 만에 한 가지 기지를 발휘한다.
게른지(Guernsey) 섬에서 펼쳐진 그 유명한 장면이다.
손 들기 한 번으로 만들어낸 '히틀러 환영' 사진
게른지에서 잉글랜드로 탈출하는 데 성공한 프레드 호키(Fred Hockey)라는 남자가 있었다. 그는 데일리 헤럴드(Daily Herald) 기자에게 다음과 같은 증언을 남겼다.
"점령 사령관은 짧은 연설을 마친 뒤, 프랑스 국적자들은 왼손을 들라고 지시했습니다. 해당되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했죠. 그다음에는 영국 국적자들은 오른손을 들라고 명령했습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 손을 높이 치켜들었습니다."
"그때는 뭔가 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었는지 깨달은 것은 훨씬 나중이었습니다. 우리가 손을 드는 순간 사진사가 셔터를 눌렀던 겁니다. 이 사진은 훗날 독일 신문에 게른지 주민들이 '나치식 경례를 하며 히틀러를 환호하는 모습'이라는 캡션과 함께 실렸습니다. 오래된 수법이라더군요. 독일인들은 그보다 앞서 파리에서도 똑같은 짓을 했다고 들었습니다."
게른지 세인트피터포트(St Peter Port)의 대로를 행진하는 독일군 병사들. 이윽고 현지 주민들은 선전 속 '충성스러운 나치'로 둔갑한다.
독일군의 '재치'에 어쩌면 박수를 보내게 될지도 모르는 순간이다. 아쉽게도 이 조작된 사진은 현재까지 전해지지 않는다. 점령기의 불명예스러운 흔적이라 전쟁 중에 소실되었거나, 아니면 방대한 기록 더미 속 깊숙이 묻혀 있는 것일 수도 있다.
참고 자료
Barry Turner, Outpost of Occupation: How the Channel Islands Survived Nazi Rule 1940–1945, Aurum 2010, p. 1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