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작스러운 죽음, 짧은 통치, 후계자 없는 왕들. 마지막 템플 기사단 총장의 처형 직후 프랑스에서 벌어진 일련의 사건들은 오늘날까지도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있습니다. 과연 그는 정말 저주를 내렸던 걸까요? 이 인포그래픽에서 그렇게 믿을 만한 근거들을 확인해 보세요.
1314년 3월 18일, 파리에서 마지막 템플 기사단 총장 자크 드 몰레(Jacques de Molay)는 화형에 처했습니다. 불길에 던져진 그 순간, 그는 필리프 4세 국왕과 교황 클레멘스 5세를 향해 신의 심판대 앞에서 1년 안에 재판장 앞에 설 것이라고 저주했다고 전해집니다. 우연일까요, 아니면 실제로 발효된 저주일까요? 숫자들이 흥미로운 답을 내려줍니다.

저주 이후의 기록: 시간표가 말해주는 것
자크 드 몰레의 처형 직후부터 카페 왕조의 몰락까지, 사건들은 놀랄 만큼 빠르게 이어졌습니다.
- 교황 클레멘스 5세: 저주를 받고 불과 한 달여 뒤인 1314년 4월 20일 급서했습니다.
- 필리프 4세(용모왕): 같은 해 11월 29일, 사냥 중 사고로 추정되는 뇌졸중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처형으로부터 겨우 8개월 만이었습니다.
- 루이 10세: 아버지의 뒤를 이었지만 1316년, 재위 약 1년 반 만에 원인 불명의 급사를 당했습니다. 일설에는 독살설도 제기됩니다.
- 장 1세(유복자): 루이 10세의 아들은 태어난 지 며칠 만에 요절하며 왕위를 잇지 못했습니다.
- 필리프 5세: 1322년, 역시 남계 후계자 없이 병으로 사망했습니다.
- 샤를 4세: 1328년 세자를 남기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나면서, 300년 가까운 카페 왕조 직계의 막을 내렸습니다.
'저주받은 왕들'이라 불린 이유
필리프 4세의 세 아들은 차례로 왕위에 올랐지만, 누구도 오래 통치하지 못했고 누구도 살아남은 아들을 남기지 못했습니다. 이 때문에 프랑스 역사학에서는 이들 형제를 '레 트루아 메디(Les Rois Maudits)', 즉 '저주받은 왕들'이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직계가 단절되면서 발루아 가문이 왕위를 계승했고, 영국 에드워드 3세가 자신의 계승권을 주장하면서 백년전쟁의 서막이 열리기도 했습니다.
역사적 관점: 저주인가, 우연인가?
물론 합리적인 역사가들은 초자연적 저주를 믿지 않습니다. 중세 왕족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의학이 발달하지 않았고 권력 다툼과 음모가 끊이지 않았던 시대의 비극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사람의 처형 이후 단 14년 만에 강대국 프랑스의 왕통이 통째로 소멸했다는 사실은 지금도 많은 이들에게 섬뜩한 미스터리로 남아 있습니다.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