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이야기

들라투르의 '퐁파두르 후작 부인 초상화' - 파스텔화의 걸작이 된 권력과 지성의 초상

1704년생의 초상화가이자 파스텔 화가인 캉탱 드 라 투르(Quentin de La Tour)가 퐁파두르 후작 부인의 초상을 그리기 전, 그는 이미 1735년 볼테르의 초상화로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이후 루소, 루이 15세, 왕비, 도팽 등의 초상을 연이어 제작하며 1746년 왕립 회화 조각 아카데미에 '파스텔 초상화가' 자격으로 입회했고, 1750년에는 고문으로 임명되었다. 초상화 전문가였던 그는 인물들을 너무나 생생하고, 미소 지으며, 감성적으로 표현해내어 마치 인물이 눈앞에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고향 생캉탱에서는 1782년 소묘 학교를 설립했으며, 오늘날에도 앙투안 레퀴에 미술관에 그의 작품 다수가 소장되어 있다.

들라투르의 퐁파두르 후작 부인 초상화

1749년 어느 날, 루이 15세의 전 왕실 애인이자 실질적인 권력자였던 퐁파두르 후작 부인은 캉탱 드 라 투르에게 자신의 초상화를 의뢰했다. 화가는 파스텔 연필에 과슈를 약간 가미한 기법을 사용했으나, 완성까지 무려 5년이 걸렸다. 화가가 정기적으로 '귀찮은 일'을 핑계로 베르사유행을 거절했기 때문이다. "도시에 그림 그리러 가지 않겠소"라거나 "다른 캔버스에 급한 수선이 필요해서"라며 미루기를 반복했다. 결국 후작 부인의 얼굴은 베르사유에서 스케치하고, 초상화 본작은 파리 아틀리에에서 그려졌다. 완성된 작품은 1755년 살롱전에 출품되었고, 1803년 루브르 박물관이 소장하게 되었다.

들라투르의  퐁파두르 후작 부인 초상화  - 파스텔화의 걸작이 된 권력과 지성의 초상

서른넷의 후작 부인: 친구이자 조언자, 우아함의 화신

초상화 속 후작 부인은 서른넷. 왕의 친구이자 조언자로서 절정의 권위를 누리던 시기다. 그녀는 금빛 장식이 더해진 청록색 판넬로 장식된 자신의 내각에서 여왕처럼 앉아 있다. 몸에 걸친 것은 호화로운 새틴 소재의 '프랑스식 드레스(robe à la française)'. 루브르 박물관 전시실에서 마주하는 이 초상화는 당대 최고 권력 여성의 품위와 지성을 고스란히 담아낸다.

패니에와 앙가장트: 18세기 패션의 디테일

양옆으로 퍼진 스커트 라인, 즉 '패니에(panniers)'가 달린 프랑스식 드레스는 1750년경 등장해 여성들에게 더 큰 편안함과 활동성을 주었다. 흥미롭게도 이 패니에가 현대 핸드백의 기원이 되었다는 사실을 아는가? 레이스 페티코트 아래 숨겨진 이 공간에 여성들은 필수품을 보관할 수 있었다.

소매 끝의 탈착식 레이스 커프스, 일명 '앙가장트(engageantes)'는 후작 부인의 여성미와 세련됨을 한층 돋보이게 한다. 가슴 앞의 리본 매듭과 발밑의 작은 뮬(mule) 신발은 새로운 연분홍 톤, 곧 '퐁파두르 핑크'로 맞춰져 있다. 이 화려한 드레스와 달리 헤어스타일은 모자나 장식 없이 단정한데, 이는 그녀가 사적인 공간에 있음을 암시한다.

지성과 예술의 수호자: 초상화 속 상징물들

그녀 주변에는 지구본, 책들, 악보, 몽테스키외의 『법의 정신』, 『백과전서』, 비올라, 데생 상자 등 지적 삶의 모든 요소가 배치되어 있다. 퐁파두르 후작 부인은 명실상부 '모든 예술의 수호자'였다. 1765년경 세브르 도자기 공방이 새로운 전성기를 맞이한 것도 그녀의 후원 덕분이었으며, 이로써 장식 미술사에 '퐁파두르 양식'이 탄생했다.

취향 있고 교양 있으며, 여성적이고 우아하고 품위 있는 여인. 그녀는 파리의 철학적·정치적·도덕적 진화에 열려 있었던, 진정한 의미에서 '18세기의 여성(La Femme)'이었다.

파스텔화의 새로운 지평, 그리고 초상화의 종언

세로 1.70m, 가로 1.30m에 이르는 이 대작으로 캉탱 드 라 투르는 파스텔화가 유화에 필적할 수 있음을 입증했다. 동시에 이 작품은 공식 초상화의 유행이 막을 내리는 전환점이 되기도 했다.

퐁파두르 후작 부인 초상화, 캉탱 드 라 투르 작. 루브르 박물관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