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르모필레의 레오니다스』는 프랑스 화가 자크루이 다비드(David)가 1814년에 완성한 작은 그림(약 20×28cm)으로, 현재 파리 루브르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습니다. 이 작품은 기원전 480년, 스파르타 왕 레오니다스 1세와 300명의 스파르타인을 포함한 1,400명의 병력이 페르시아의 대침공을 막아서다 영웅적인 죽음을 맞이한 대규모 전투를 기념합니다. 로코코 양식에 맞선 신고전주의의 새로운 물결을 특징으로 하는 이 그림은, 그리스·로마·고대 이집트 조각상처럼 표현된 전경의 누드 인물들 덕분에 ‘아름다운 이상’을 상징합니다. ‘아름다운 이상’은 곧 스파르타 왕의 용기와 애국심에 바치는 경의이기도 합니다.
테르모필레의 레오니다스 – 역사 속 영웅적 최후
스파르타 왕 레오니다스 1세(재위 기원전 490~480년경)는 페르시아 군대의 그리스 침입을 막는 관문인 테르모필레를 영웅적으로 방어하여 불멸의 영광을 얻었습니다. 기원전 480년, 크세르크세스 1세가 이끄는 페르시아군이 몰려왔을 때 레오니다스는 수적으로 열세인 부대의 선두에 서서 이틀 동안 적의 공격을 막아냈습니다. 이는 그리스 함대가 아르테미시온 곶에서 진영을 두 배로 늘릴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벌어준 결정적인 저항이었습니다. 그러나 에피알테스라는 테살리아인이 크세르크세스에게 산을 넘는 또 다른 길을 알려주면서 레오니다스를 배신합니다.
후방이 돌파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레오니다스는 대부분의 군대를 엄폐물 뒤로 물려 보냈고, 약 300명의 스파르타인과 함께 남았습니다. 일부 테스피아인과 테베인도 떠나기를 거부하고 곁을 지켰습니다. 레오니다스와 그의 병사들은 페르시아군에 맹렬한 저항을 펼쳤고, 목숨을 잃기 전까지 적에게 막대한 타격을 입혔습니다. 테르모필레 전투의 기록은 헤로도토스의 『역사(Historia)』에 남아 있습니다.
다비드의 그림
프랑수아 부셰(François Boucher)의 친척이기도 한 화가 자크루이 다비드는, 고대 예술에서 영감을 얻은 역사화 회귀의 선구자 조제프마리 비앙(Joseph Marie Vien)을 만나 사사했습니다. 그의 지도 아래 다비드는 1799년, 미술 애호가인 소마리바 백작을 위해 이 그림의 첫 번째 스케치를 제작했습니다. 이 초안에서 레오니다스 왕은 거대한 바위를 배경으로 한 측면 모습으로만 등장했습니다. 화가는 나폴레옹이 처음으로 퇴위한 해인 1814년 10월에 작품을 완성할 때까지 거의 15년에 가까운 세월을 들였습니다. 이 그림은 1826년 루브르 박물관이 인수했으며, 현재는 몽펠리에의 파브르 미술관에서도 관람할 수 있습니다.
이 그림은 스파르타 왕 레오니다스와 그의 호위병 300명의 희생을 담고 있습니다. 기원전 480년, 테르모필레 관문에서 그들은 그리스 북부를 침공한 수십만 명의 페르시아 군인들 앞에서 최후를 맞이합니다.
죽음이 다가온 것을 알면서도 병사들의 마음은 각기 달랐습니다. 어떤 이는 진지를 떠나기를 원했고, 어떤 이는 끝까지 싸우기를 원했습니다. 레오니다스는 그들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 귀환을 허락하고, 관문과 그리스를 지키기 위해 스스로 남았습니다. 자신을 희생함으로써 그는 가능한 모든 영광과 불멸의 명성을 후손에게 물려줍니다. 레오니다스는 그리스 조각상처럼 알몸으로 표현됩니다. 그림 왼편에서는 한 병사가 “지나가는 이여, 스파르타에 전하라. 300명의 영웅이 그녀를 위해 이곳에서 쓰러졌노라”는 유명한 문구를 바위에 새기고 있습니다. 이 전투는 군사적으로는 패배였지만 도덕적으로는 승리였으며, 침략자에 대한 그리스 저항의 상징이자 애국심의 상징으로 남았습니다.
더 읽어볼 자료
- Jacques-Louis David : 1748-1825, 저자: Antoine Schnapper 및 Arlette Serullaz. RNM, 1992.
- 『스파르타 실화와 테르모필레 전투』, 장 말예(Jean Malye) 지음. 벨 레트르(Belles Lettres),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