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이야기

12년간 방치된 에페르농 공작 성(Château du Duc d'Epernon), 프랑스 위기 유산을 구하려는 20세 청년의 기록

훌륭하게 갖춰진 성을 발견해 다음 여행을 준비하도록 돕는 것이 저의 주된 일이지만, 그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소중한 유산을 지키는 일 역시 제가 관심을 기울이는 영역입니다. 프랑스에는 다행히도 30,000개가 넘는 성이 남아 있지만, 그중 600개는 붕괴 위기에 처해 있으며 방치될 경우 시간과 함께 사라질 운명에 놓여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특별히 마음을 사로잡은 곳이 바로 에페르농 공작 성(Château du Duc d'Epernon)입니다. 이 성은 일드프랑스(Île-de-France) 지역 센에마른(Siene-et-Marne) 데파르트망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정확히 말씀드리자면, 이 성의 열렬한 지지자인 앙토냉 그르니에(Antonin Grenier)로부터 인스타그램을 통해 연락을 받았고, 그는 이곳이 역사기념물로 지정되어 있음에도 훼손된 상태라는 사실을 알려주었습니다. 에페르농 공작 성은 놀라운 역사를 지닌 곳으로, 여러 왕들이 머문 것으로 유명합니다. 몇 가지 조사를 거친 끝에, 이 위기에 처한 장소를 반드시 알리고 안토냉처럼 성의 보존을 목표로 하는 사람들과 함께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자세한 이야기는 2016년부터 이 기념물을 구하기 위해 노력해 온 앙토냉 그르니에에게 직접 들어보겠습니다.

에페르농 공작 성 재건 ©Sauve mon château

12년간 방치된 에페르농 공작 성(Château du Duc d Epernon), 프랑스 위기 유산을 구하려는 20세 청년의 기록

앙토냉 그르니에 인터뷰

앙토냉 님, Carnet d'Histoire 독자들에게 자신을 소개해 주시겠어요?

안녕하세요 여러분! Carnet d'Histoire 덕분에 말씀드릴 기회를 얻었습니다. 저는 앙토냉 그르니에, 스무 살입니다. 어린 시절부터 오래된 돌과 역사에 깊은 열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현재는 차체 도장공으로 일하고 있으며, 유산 분야로 진로를 전환하는 것도 고려 중입니다. 호기심이 많아 박물관, 성, 교회 등을 찾아다니는 것을 늘 좋아했습니다. 기회가 될 때마다 성을 방문하고, 브리(Brie) 지역 비비(Vivier) 왕립저택에서 석재 절단, 가이드 투어 등 복원 작업을 돕며 많은 시간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또 페이스북, 트위터, 인스타그램 같은 소셜 네트워크에서도 활발히 활동하며 에페르농 공작 성 전용 계정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역사 관련 게시물, 사진과 영상 편집물, 기사를 올리고 프랑스인, 영국인, 미국인 등 성에 대해 궁금해하는 사람들과 소통합니다. 이 모든 활동은 자발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에페르농 공작 성과 특별한 인연이 있으신가요?

15년 전, 아버지가 이 성의 이전 소유주와 친분이 있어 여름마다 바비큐를 즐기러 자주 다녔습니다. 정원에서 신나게 뛰어놀던 기억(기사 놀이), 쿼드바이크를 타고 정원을 누비던 순간들, 해자에서 낚시하던 추억들이 생생합니다. 그렇게 아름다운 건축물을 보며 감탄했던 기억이 특히 남아 있는데, 성 내부 천장에 그려진 아름다운 벽화가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2016년, 저는 이 성을 알리고 사진·추억·일화를 나누기 위해 페이스북 그룹을 만들기로 했습니다. 무엇보다 마음에 가까운 이곳 유산에 대한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긴 역사를 지닌 이곳이 사라진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폐허로 방치하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이 성은 역사기념물로 지정되어 있으며, 여러 왕이 머문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12년간 방치된 에페르농 공작 성(Château du Duc d Epernon), 프랑스 위기 유산을 구하려는 20세 청년의 기록

뛰어난 건축미 외에도 이 성은 매우 특별한 역사를 지니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간단히 소개해 주시겠어요?

원래 이곳은 루이 6세 르 그로(Louis VI le Gros) 치세인 12세기에 세워진 요새화된 성이었습니다. 1389년 샤를 6세는 특허장을 통해 퐁트네(Fontenay) 땅에 대한 권리를 자신의 고문이자 기사, 노비앙(Nobian)·라누빌(La Neuville)·루글(Rugles)의 영주였던 장 르 메르시에(Jean le Mercier)에게 하사하고, 폐허가 된 옛 성을 재건할 수 있도록 허가했습니다. 2년 후 새 성은 재판소와 감옥을 갖춘 모습으로 완공되었습니다. 당시 성은 내부 안뜰을 둘러싼 벽과 해자로 보호받았고, 북쪽은 교회를 향했으며 남쪽에는 두 개의 개선문이 있었습니다. 현재 건물 역시 원형 탑들로 둘러싸인 직사각형 평면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후 성은 상속을 통해 드 쿠트(de Coutes) 가문에 넘어갔습니다. 1446년경에는 잔 다르크의 종자였던 루이 드 쿠트(Louis de Coutes, dit Minguet, 장 드 쿠트의 아들)가 당시 시종장이자 성주, 퐁트네앙브리(Fontenay-en-Brie)·비리(Viry)·넬라질베르드(Nelle-la-Gilleberde)의 영주로서 이곳을 소유했습니다.

성은 여러 차례 개축을 거쳐 17세기 전반 쾌락의 성(château de plaisance)으로 탈바꿈했습니다. 당시 소유주는 에페르농 공작으로 알려진 장 노가레 드 라 발레트(Jean Nogaret de La Valette)로, 이곳에서 카트린 드 메디시스(Catherine de Médicis), 샤를 9세(Charles IX), 결혼 축하 연회를 연 앙리 3세(Henri III), 그리고 리슐리외(Richelieu) 같은 저명 인사들을 맞이했습니다.

1877년부터 1880년까지 퐁트네 성은 전 스페인 여왕 이사벨라 2세(Isabelle II)에게 임대되었는데, 그녀는 이곳에서 연인 라미로 데 라 푸엔테(Ramiro de la Puente)를 만나 사냥을 즐겼다고 전해집니다.

1940년대에는 젊은이들을 위한 노동 캠프로 사용되었습니다. 이후 소유주가 더 편리하고 저렴한 별관을 선호하면서 본관은 오랫동안 창고로 방치되었습니다. 1936년 공인회계사 루시앙 타스(Lucien Tasse) 씨가 이 부동산을 매입했고, 2006년에는 그의 아들 사뮈엘 타스(Samuel Tasse) 씨가 역사기념물 전문 부동산 회사에 성을 매각했습니다. 본관 아파트 12개와 별관 아파트 48개로 구성된 개발 계획은 2014년 부동산 개발업체의 강제청산으로 미완으로 끝났습니다.

성이 이제 황폐해졌습니다. 정말 안타까운 일입니다! 어떻게 이 지경에 이르렀나요?

모든 것은 2006년 고급 아파트 건설을 목표로 한 부동산 개발업체가 성을 인수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2008년 이 개발업체는 슬레이트 지붕을 걷어내고 플라스틱 시트로 대체했을 뿐만 아니라, 지붕틀마저 철거해 건물 전체를 그대로 풍우에 내버려 두었습니다. 이후 성은 약탈, 도난, 낙서, 화재 등 온갖 피해를 입었습니다. 성은 12년 넘게 사방이 트인 채 방치되었습니다. 바닥은 무너지고 내부로 빗물이 스며들며 자연이 서식지를 되찾고, 성벽에는 담쟁이덩굴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습니다. 게다가 2014년의 강제청산조차 상황을 바꾸지 못했습니다.

역사기념물로 지정된 성이 왜 국가에 의해 방치된 건가요?

2014년 성을 매입한 개발업체가 부도를 내면서 성은 버려졌고, 이후 강제청산 절차에 들어갔지만 법적 사건이 지나치게 복잡합니다. '유산 코드(Code du patrimoine)'와 '건축 및 주거 코드(Code de la construction et de l'habitation)'가 제대로 준수되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는 시장, DRAC(지역문화청), 지역 자치단체에 여러 차례 서한을 보내 현행법 적용을 요청했습니다. 그러나 성 관련 안건에 대해 시청은 늘 침묵을 지켜왔습니다. 성의 일부는 역사기념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1층 파사드, 지붕, 채색 패널로 장식된 방이 해당됩니다. 그런데 지붕은 이미 사라졌고 나머지 요소들도 하나둘 없어지고 있는데, DRAC이 유산 감독 업무를 수행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은 믿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성 부지에는 현재 공사 중인 건물이 있습니다. 개발업체는 이 건물을 짓는 조건으로 성 복원에 동의했지만, 이 합의는 결실을 맺지 못했습니다.

12년간 방치된 에페르농 공작 성(Château du Duc d Epernon), 프랑스 위기 유산을 구하려는 20세 청년의 기록

보존을 위해 어떤 조치들이 진행되고 있나요?

4년 동안 우리는 다양한 움직임을 이어왔습니다. 시장, DRAC, 지역 자치단체에 수차례 서한을 보냈습니다. 2019년 말, 지역 역사기념물 보존 책임자에게 이메일을 보냈더니, 국가가 불성실한 소유주를 대신해 보존·보호 작업을 집행하는 '자동 집행 절차'를 시작하겠다는 회신을 받았습니다. 다만 법적 절차가 길고 복잡하다는 단서도 붙었습니다. 스테판 베른(Stéphane Bern)도 이 성에 큰 관심을 보이며 최근 코뮌 시장에게 '책임을 물었다'고 합니다. 통화 끝에 봉쇄 조치가 해제되면 문화부 장관 프랑크 리에스터(Franck Riester)와 상원의원 뱅상 에블레(Vincent Eblé)와의 회의를 주선하기로 합의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어떻게 이 운동에 힘을 보태고 계신가요? 지금까지 어떤 성과가 있었나요?

무엇보다 주변 사람들과 인터넷을 통해 이 성에 대해 이야기를 퍼뜨리는 데 집중하고 있습니다. 이 성은 일본에서 TV 보도로 알려졌고, 미국에서도 성으로서 인정받고 있습니다. 프랑스에서는 알려지지 않은 위기 유산의 실체를 세계에 보여주는 것이 의미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성은 국가 교육 교과서에도 실린 적이 있습니다! 스테판 베른의 최근 저서 『우리 유산을 지키자(Sauvons nos monuments)』에도 등장합니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시장, DRAC, 지역 자치단체에 여러 차례 이메일을 보냈고, 일드프랑스 현(prefecture)과의 약속도 잡았습니다. 정기적으로 소셜 네트워크에 성의 사진을 올리고, 사진과 영상을 편집하며, 건축부터 방치까지의 역사를 되짚는 출판물도 제작하고 있습니다.

12년간 방치된 에페르농 공작 성(Château du Duc d Epernon), 프랑스 위기 유산을 구하려는 20세 청년의 기록

인터뷰에 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앙토냉! 마지막 질문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요?

소셜 네트워크에서 저희를 팔로우해 주세요. 단결은 힘입니다. 어디에서든 성 관련 그룹을 공유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이 성에 대해 이야기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인터뷰에 응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소셜 네트워크에서 앙토냉을 응원하세요

페이스북에서 팔로우 · 인스타그램에서 팔로우 · 트위터에서 팔로우

모든 사진의 저작권: ©Antonin Grenier

성에 관한 다른 글도 만나보세요

12년간 방치된 에페르농 공작 성(Château du Duc d Epernon), 프랑스 위기 유산을 구하려는 20세 청년의 기록

퓌뒤푸 성(Puy-du-Fou)의 역사란 무엇일까?

2021년 8월 18일 자세히 알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