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프스 피라미드, 알렉산드리아의 등대, 아르테미스 신전까지 — 이 유산들은 세계 7대 불가사의로 손꼽히는 문화유산의 보석들입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신비로운 존재로 꼽히는 것이 바로 로도스의 거상입니다. 지금부터 높이 31m의 청동 거상이 태어나고 소멸하기까지, 로도스 거상의 흥미로운 역사를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로도스 섬을 덮친 포위공격
로도스 섬 항구에 도착하는 선원들에게는 가장 인상적인 환영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바로 높이 31m에 달하는 거상, 로도스의 거상입니다. 당시 기준으로는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크기의 이 조각상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먼저 로도스 섬의 역사를 짚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스 군도는 평화와 번영을 누리며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는 폭풍 전야의 고요함이었습니다. 알렉산더 대왕 휘하의 장군 출신이자 안티고노스 왕조(안티고니데스)의 창시자인 '단안왕 안티고노스(Antigone le Borgne)'의 아들 데메트리오스는 기원전 305~304년, 로도스 섬 포위공격을 감행합니다. 거의 1년간 이어진 로도스 포위공격은 투입된 전력의 규모 면에서 고대 최고의 유명 전투 중 하나로 기록됩니다. 各종 공성 무기와 약 400척의 함선, 4만 명이 넘는 병력까지 동원하며 데메트리오스는 함락을 위해 만반의 준비를 갖추었습니다. 이렇게 막대한 전력은 로도스인들에게 깊은 충격을 주기에 충분했지만, 섬 주민들은 끝내 항복하지 않았습니다. '헬레폴리스'라 불리는 초대형 공성 무기가 동원되었음에도 군도는 굳건히 버텼고, 로도스는 결국 굴복하지 않습니다.
아버지의 명을 받아 그리스 전선을 이끌던 데메트리오스는 결국 로도스에서 철수하고, 로도스 주민들과 강화 조약을 체결합니다. 이후 로도스 섬은 안티고노스의 동맹이 되어, 침략이 발생할 경우 안티고노스 편에서 함께 싸울 것을 약속합니다. 다만 이미 로도스의 동맹국이었던 프톨레마이오스 관련 사안은 이 계약의 유일한 예외로 남았습니다. 흥미롭게도 데메트리오스는 이 싸움에서 승리하지 못했음에도, '도시 정복자'를 뜻하는 '폴리오르케테스'라는 별명을 얻게 됩니다.
기념비가 된 로도스의 거상
특이한 크기의 거대 조각상
로도스의 입장은 전혀 달랐습니다. 주민들은 침략자에 대한 저항과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특이할 만큼 거대한 조각상을 세우고자 했고, 이것이 바로 세계 6대 불가사의로 불리는 로도스의 거상입니다. 이러한 기념물 건축의 전통은 그리스 문화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 로도스 주민들이 추진한 프로젝트의 규모는 남다르았습니다. 당시 기준으로 로도스의 거상은 존재할 수 있는 가장 높은 조각상이었습니다.
늦어진 공사
로도스 항구에서 거상 건설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기원전 292년이었습니다. 이 파라오급 프로젝트는 로도스인들의 진정한 의지가 담긴 사업이었습니다. 당시 로도스 섬은 민주주의 국가였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즉, 거상을 짓고자 한 것은 통치자가 아닌 주민들 자신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로도스 주민들은 왜 거상 건설 착공까지 그토록 오랜 시간을 기다렸을까요? 거상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을 무렵에는 이미 데메트리오스의 포위공격 이후 12년의 세월이 흘러 있었습니다. 승리를 기념하고 싶은 마음은 컸지만, 포위공격의 상처에서 회복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1년간의 공방전 동안 로도스 섬은 극심한 피해를 입었고 상업 활동도 완전히 멈추었습니다. 공사에 나서기 전 먼저 모든 것을 복구해야 과거의 번영을 되찾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로도스 거상의 재원 조달과 건설 방식
이 위대한 걸작을 완성하기 위해 주민들은 포위공격 동안 데메트리오스가 남기고 간 무기와 공성 무기를 모두 처분했습니다. 이 매각 대금으로 건설에 필요한 청동을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로도스의 거상은 목재 골조 위에 청동판을 덮어 완성한 구조였습니다. 다만 많은 역사학자들은 이 건설 방식에 의문을 품습니다. 단순한 나무 뼈대만으로 이런 규모의 구조물을 세운다는 것이 그들에게는 불가능해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로도스의 거상이 세계 6대 불가사의의 반열에 오른 것은 바로 이 독특한 건축 방식 덕분이라 할 수 있습니다. 건축 방법과 사용된 재료가 여전히 수수께끼로 남아 있지만, 제작자의 이름만큼은 분명하게 알려져 있습니다. 바로 그리스의 조각가, 린도스 출신 카레스(Charès of Lindos)입니다. 그의 삶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진 바가 없지만, 그의 예술적 스타일은 세계적으로 유명합니다. 카레스는 사실주의를 추구한 조각가였습니다. 기록에 따르면 로도스의 거상은 태양신 헬리오스를 형상화한 것입니다. 헬리오스는 태양의 신이자 로도스 섬의 수호신으로, 매일 전차를 몰고 하늘을 가로질러 세상을 밝혔다고 전해집니다.
로도스의 거상은 어디에 서 있었을까?
거상의 위치와 관련해서는 여러 가설이 제기되어 왔습니다. 수많은 묘사에서는 로도스 항구 입구에 거상이 세워져 있고, 그 다리 사이로 배가 드나드는 모습이 그려집니다. 그러나 이 가설은 현실적으로 실현 가능성이 낮습니다. 배가 통과하기에 필요한 간격에 비해 거상의 크기가 너무 작다는 분석 때문입니다.
이보다 설득력 있는 두 가지 가설이 존재합니다. 일부 역사학자들은 거상이 섬의 높은 지대, 아크로폴리스에서 멀지 않은 곳에 세워졌다고 봅니다. 군도와 주민들을 굽어보며 지켜보는 로도스의 거상이라는 상상이 가능한 위치입니다. 반면 저명한 건축가 볼프람 회프너(Wolfram Hoepfner)를 비롯한 일부 학자들은 거상을 로도스의 군사 항구에 배치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거상의 정확한 위치는 오늘날까지도 커다란 미스터리로 남아 있습니다. 여러분의 상상력을 마음껏 발휘해 볼 영역인 셈입니다.
역사가 가장 짧았던 불가사의, 로도스의 거상
붕괴의 원인
60여 년 동안 로도스의 거상은 군도의 이름을 널리 알리고 주민들에게 긍지를 안겨 주었습니다. 이 거상은 데메트리오스의 포위공격을 격퇴한 승리, 섬의 자유, 어려운 군사적 시련 속에서도 회복할 수 있었던 강인함, 나아가 높이 31m의 조각상을 완성해 낸 건축 기술의 정수를 모두 상징했습니다.
그러나 기원전 227~226년경, 로도스 사람들의 일상을 뒤흔드는 대지진이 닥쳐옵니다. 진동으로 인해 거상의 무릎 부분이 크게 약화되었고, 결국 거상은 완전히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땅에 쓰러진 거상을 마주했을 때 주민들이 느꼈을 충격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는 세계 불가사의 중에서도 가장 짧은 역사를 가진 사례로 기록됩니다. 골조의 목재와 청동판은 그대로 땅 위에 놓이게 됩니다. 그리고 신탁은 주민들에게 잔해를 그대로 두고 거상 재건의 생각을 접으라고 요청합니다.
세계 6대 불가사의 로도스의 거상, 그 후의 운명은?
무너진 로도스의 거상은 이후 수백 년 동안 원래 자리에 그대로 남아 있었습니다. 그러나 서기 654년, 칼리프 오스만 이븐 아판(Othmân ibn Afân) 휘하의 무아위야 1세(Muʿawiya I)가 이끄는 아랍 원정이 시작되면서 상황이 바뀝니다. 그는 남은 청동과 철을 팔아넘기기 위해 거상의 잔해를 걷어 갔습니다. — 오랜 세월에 걸쳐 목재는 이미 부패해 사라진 상태였습니다. 이렇게 거상의 유해는 시리아로 운반된 것으로 전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