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이야기

전쟁 전 폴란드의 항공권 가격 – 증조할아버지도 비행기를 탔을까?

터무니없이 비쌌을까, 아니면 놀랍도록 저렴했을까? 제2차 폴란드 공화국 시절 비행기 표값은 얼마였을까요? 누가 탈 수 있었고, 어떤 노선이 있었으며, 비행기는 어디에 착륙했을까요?

폴란드 여객 항공의 역사는 1921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프랑스 국제항공교통협회가 프라하–바르샤바 노선 운항 허가를 받으면서였죠. 이듬해인 1922년에는 폴란드 석유 산업계 인사들이 리비우를 경유해 바르샤바와 그단스크를 잇는 노선 개설 허가를 교통부로부터 받았습니다. 이렇게 탄생한 회사가 바로 아에로로이드(Aerolloyd)이며, 훗날 이름을 아에로로트(Aerolot)로 바꾸게 됩니다.

전쟁 전 폴란드의 항공권 가격 – 증조할아버지도 비행기를 탔을까?

시간표 앞에 선 승객들. 바르샤바, 1933년.

하늘 위를 나는 여행에 대한 관심은 상당했습니다. 1923년에는 바르샤바–크라쿠프 노선이 개설되었고, 1925년부터는 크라쿠프에서 리비우까지 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같은 시기, 최초의 국제선인 크라쿠프–빈 노선도 등장했습니다.

도로 사정이 처참했던 나라에서 빠른 이동에 대한 수요가 커지면서 1925년에는 또 다른 항공사가 등장합니다. 포즈난 지방정부의 주도로 설립된 아에로(Aero)입니다. 이로써 대폴란드의 수도와 바르샤바를 잇는 항공로가 열렸습니다. 물론 독일 정부와 합의만 이루어진다면 베를린까지 운항하는 것도 가능했지만, 그 합의는 1934년에야 비로소 이루어졌습니다.

전쟁 전 폴란드의 항공권 가격 – 증조할아버지도 비행기를 탔을까?

포즈난발 바르샤바행 비행기 이륙을 앞둔 승객들. 1931년.

그러나 새로운 회사가 또 생겨나기 전에, 바르샤바 정부는 민간 항공사들을 통합하기로 결정합니다. 국가와 자치단체가 함께 출자한 LOT 폴란드 항공이 1929년 1월 1일부터 운항을 시작하면서, 아에로로트와 아에로는 해산되었습니다.

국영 자본이 투입되면서 막대한 자금이 유입되었고, 이는 현대적인 항공기 구매와 새로운 노선 개설로 이어졌습니다. 그 결과 1930년대 중반에는 LOT 승객들이 바르샤바에서 그단스크, 카토비체, 크라쿠프, 포즈난, 빌뉴스, 리비우까지 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국제선 역시 예외가 아니어서, 꼬리에 두루미 마크를 단 LOT 항공기들이 베를린, 브르노, 부쿠레슈티, 리가, 테살로니키, 소피아, 탈린, 빈에 착륙했습니다.

전쟁 전 항공권 가격

그렇다면 하늘 나그네는 얼마를 지불해야 했을까요? 답은 1934년 발행된 『폴란드 항공 교통 안내 및 비행 시간표』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요금표에 따르면 바르샤바–크라쿠프 구간의 항공권은 35즐로티였습니다. 수도에서 포즈난까지는 11즐로티를 더 내야 했으니 46즐로티입니다. 빌뉴스에서 카토비체까지 날려면 70즐로티가 들었고, 리비우 주민이 빌레이카를 방문하려면 85즐로티가 필요했습니다. 같은 금액으로 그단스크까지 갈 수 있었습니다.

전쟁 전 폴란드의 항공권 가격 – 증조할아버지도 비행기를 탔을까?

1934년 항공 노선도. 붉은색으로 표시된 노선이 LOT이 운항하는 구간입니다.

폴란드 하늘만 나는 것으로 만족하지 못하는 분들을 위해 국제선 요금도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크라쿠프에서 브르노까지는 40즐로티(바르샤바 발은 75즐로티), 폴란드 수도에서 독일 수도 베를린까지는 105즐로티가 들었습니다. 바르샤바 시민이 테살로니키까지 가려면 280즐로티를 지불해야 했고, 그리스의 태양을 꿈꾸던 포즈난 시민은 주머니를 더 깊숙이 파야 했습니다. 무려 325즐로티였으니까요.

유럽에서 가장 저렴한 항공권?

LOT 경영진은 폴란드의 항공 운임이 유럽에서 가장 저렴하다고 자랑했습니다. 하지만 평범한 코발스키 씨에게 감당할 수 있는 가격이었을까요? 이 질문에 답하려면 당시 임금 통계를 살펴봐야 합니다. 통계에 따르면 1934년 광부는 평균 시간당 1.01즐로티를 받았는데, 이는 당시 기준으로 잘 받는 편이었습니다. 반면 섬유 공업 노동자의 시급은 겨우 66그로시였고, 목재 산업은 말할 것도 없이 평균 시급이 38그로시에 불과해 일주일에 겨우 18즐로티 남짓을 벌었습니다.

노동자가 어렵다면 적어도 사무직 종사자들은 빠른 이동의 혜택을 누릴 수 있었을까요? 이들 대다수 역시 형편에 맞춰 살아야 했습니다. 45% 이상이 월 180즐로티 미만을 받았고, 거의 80%가 월 360즐로티 미만을 벌었으니까요.

전쟁 전 폴란드의 항공권 가격 – 증조할아버지도 비행기를 탔을까?

바르샤바–탈린 신규 노선에 투입될 비행기를 시찰하는 이그나치 모시치츠키 대통령. 1932년.

정확한 환산 기준은 없지만, 전쟁 전 즐로티 1즐로티는 오늘날의 10~15즐로티에 해당한다고 보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렇게 계산하면 오늘날 화폐 가치로 단거리 국내선은 350~690즐로티, 가장 긴 국제선 노선은 2,800~4,875즐로티 정도였던 셈입니다.

비싸다고 할 수 있을까요? 폴란드 산업 협회 중앙위원회 레비아탄(Lewiatan)의 회장에게는 결코 그렇지 않았습니다. 전쟁 전 안제이 비에르비츠키는 월급으로 32,000즐로티를 받았으니, 오늘날 가치로 환산하면 대략 32~48만 즐로티에 달하는 금액입니다...

참고 문헌

  1. 『재건 폴란드의 교통 20주년』, 스타니스와프 파헤르·스타니스와프 페테르스 편, 크라쿠프 1939.
  2. 즈비그니에프 란다우, 예지 토마셰프스키, 『전간기 폴란드 경제』 제3권 『1930–1935』, 바르샤바 1982.
  3. 『요약 통계 연보 1938』.
  4. 『항공 교통 안내 및 비행 시간표. 1934년 여름』, 바르샤바 19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