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트케 다리, 슈프레 강 위에 남긴 독일 근대사
독일 베를린 티어가르텐(Tiergarten) 지구의 슈프레 강(River Spree) 두 강둑을 잇는 몰트케 다리(Moltkebrücke)는 1888년부터 1891년까지 약 3년에 걸쳐 건설된 석조 아치교입니다. 독일 연방의회 건물에서 불과 600m 떨어진 위치에 있어, 다리의 운명은 늘 독일 정부의 흥망성쇠와 함께해 왔습니다.

다리의 이름은 1870~71년 프랑스-프로이센 전쟁에서 프로이센군 총사령관을 맡았던 헬무트 폰 몰트케(Helmuth von Moltke) 장군에게서 유래했습니다. 이 전쟁에서 프랑스는 1870년 스당 전투에서 굴욕적인 패배를 겪었고, 그 결과 독일은 통일을 이루게 됩니다. 다리 자체는 19세기 말 독일에서 크게 유행한 빌헬름 시대(Wilhelmine) 양식으로 지어져, 화려한 조각 장식과 웅장한 석재 구조가 특징입니다.
1945년 베를린 전투, 다리를 건넌 붉은 군대
건축적으로는 눈에 잘 띄지 않는 이 다리가 세계사의 무대가 된 것은 바로 1945년 베를린 전투였습니다. 수 주간의 치열한 시가전 끝에 독일 수도에 진입한 소련군은 모아비트(Moabit) 지역을 통해 도심으로 진격했습니다. 이때 수도를 방어하던 독일군은 후퇴하는 부대들이 정부 구역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일부러 다리 기슭을 열어두었습니다.
당시 다리는 국민돌격대(Volksturm) 소속 약 5,000명의 병력과 무장친위대(Waffen-SS)의 마지막 부대가 함께 방어하고 있었습니다. 소련군의 진격에 대비해 다리에는 이미 바리케이드가 설치되어 있었고, 공병들은 명령이 떨어지는 즉시 파괴할 수 있도록 폭발물을 설치해 둔 상태였습니다.

1945년 4월 28일, 페레베르트킨(Perervetkin) 장군이 지휘하는 소련 제3충격군(3rd Shock Army) 부대가 다리를 기습 공격하여 단 몇 시간 만에 점령했습니다. 독일 공병들은 소련군의 진입을 차단하기 위해 폭발물을 기폭했지만, 폭발력이 부족하여 견고한 석조 구조물은 무사히 버텼습니다.
같은 날 오후, 붉은 군대의 제150보병사단과 제171보병사단이 다리를 완전히 확보했습니다. 이로써 소련군 병력과 차량은 스탈린의 명령에 따라 5월 1일 함락될 독일 의사당(Reichstag) 방면으로 계속 진격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게 됩니다. 몰트케 다리는 나치 독일의 종언을 고하는 마지막 관문이었던 셈입니다.

몰트케 다리 방문 방법 및 교통 안내
몰트케 다리는 베를린 정부 청사 인근 티어가르텐 지구에 위치해 있어 도보 관광 동선에 넣기 좋습니다. 대중교통을 이용한다면 다음 두 가지 방법을 추천합니다.
- S-Bahn(도철): S3, S5, S7, S9 노선을 타고 베를린 중앙역(Berlin Hauptbahnhof)에서 하차 후 도보 이동
- U-Bahn(지하철): U55 노선을 타고 분데스탁(Bundestag) 역에서 하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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