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세기에도 이어지는 악마 이야기
21세기를 이야기할 때 많은 사람들은 곧바로 '이성'과 '지식의 광범위한 유통'에서 비롯된 기술의 시대를 떠올립니다. 이러한 틀 안에서는 신화적 존재인 악마가 세계를 설명하거나 사람들의 상상력 속에 자리 잡기 어렵다고 여겨집니다. 그러나 최근 연구에 따르면 가톨릭 교회로부터 공인받은 엑소시스트(구마 사제), 즉 악마를 쫓아내는 임무를 맡은 성직자의 수가 놀라울 정도로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선과 악의 이원론에서 출발한 악마 개념
사실 인류 역사의 시작 이래 서양과 동양 문화는 우리를 괴롭히는 각종 재앙을 설명하는 방식을 발전시켜 왔습니다. 이 과정에서 악의 존재에 대한 상은 우리 문화에서 낮은 평가를 받는 도덕적 가치와 행동을 구체화하는 형태로 자리 잡았습니다.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교에서 악은 하나님께 반역하며 이 종교들의 추종자들의 삶을 괴롭히려 하는 존재로 구현됩니다.
많은 전문가들은 악마적 존재의 발달이 인간의 일상을 관통하는 다양한 이원성의 결과라고 봅니다. 아름다움과 추함, 행운과 불운, 옳음과 그름, 삶과 죽음은 한쪽이 긍정적 의미를, 다른 한쪽이 필연적으로 완전히 부정적 위치를 차지하는 대비 구도를 이룹니다. 따라서 악마의 세계가 앞서 언급한 세 종교에만 고유한 것이라고 믿는다면 그것은 착각일 수 있습니다.
조로아스터와 '어둠의 군주' 아리만
기원전 6세기, 페르시아의 예언자 조로아스터는 아리만(Ahriman)이라 불리는 존재를 묘사했습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아리만은 '어둠의 군주'로서 '빛의 군주' 마즈다(Mazda)와 영원한 투쟁을 벌였습니다. 역사가들에 따르면 페르시아 종교의 이러한 가치관은 유명한 바빌론 유수 기간 동안 히브리인들에게 흡수되었습니다. 바로 이 시기에 이질적 문화와의 접촉이 '사탄(satan)'이라는 개념을 낳았으며, 이 단어를 문자 그대로 번역하면 '고발자' 또는 '대적자'를 의미합니다.
구약성경 속 사탄: 하나님의 시험자
처음에 히브리의 악마는 오늘날 우리가 기독교에서 인식하는 무시무시한 모습을 취하지 않았습니다. 구약성경의 여러 구절에서 그는 야훼의 충실한 백성을 벌하거나 시험할 신적 권위를 부여받은 일종의 협력자로 등장합니다. 모든 재산을 잃고 병들었던 욥의 고난이 성경 본문에서 악마가 초기에 취했던 이러한 역할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입니다.
기원전 2세기경, 악마의 모습이 유대 종교 전통의 일부 외경 텍스트에 등장합니다. 이제 비교적 뚜렷한 특징을 지닌 채, 악마들은 개인을 혼란에 빠뜨리고 치욕적인 행위를 저지르도록 부추기는 악한 존재로 제시됩니다. 결국 유대 종교 상상력의 더 어두운 면은 종말에 대한 묘사에 집중되었습니다. 악마의 명성은 그 후 기독교의 등장과 함께 본격적으로 드러났습니다.
신약성경: 하나님과 대결하는 악마 군단
신약성경에 이르면 성 요한과 성 바울로 같은 저자들이 악마가 하나님과 격렬한 전쟁을 벌이는 처절한 전투에 수없이 많은 지면을 할애했습니다. 이 순간부터 피상적이고 불분명한 존재였던 악마들은 최고 지도자가 이끄는 악한 영적 존재들의 군단의 일원이 됩니다. 이러한 전투 중에서는 루시퍼(Lucifer)와 천사의 3분의 1이 하늘에서 쫓겨나는 장면이 특히 두드러지게 묘사됩니다.
4세기 톨레도 회의: 악마의 시각적 형상 확립
초기 기독교 시대에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악마가 로마 투기장에서 자신들을 학살한 검투사와 사자의 모습을 취했다고 믿었습니다. 4세기에 이르러서야 톨레도에서 열린 회의가 악마를 뿔을 지녔고 검거나 붉은 피부를 가졌으며 꼬리가 있고 삼지창을 든 존재로 상세히 묘사했습니다. 그때부터 악마적 경험에 대한 목격담이 새로운 서사의 물결 속에서 힘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악마는 구체적인 형태를 갖추게 되었고 곧 개별화된 기원을 지닌 존재가 되었습니다. 1215년, 라테란 공의회는 악마와 악령들이 하나님이 창조한 피조물이며, 그들 스스로의 선택으로 신적 권위에서 이탈했다고 규정했습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적이 명확히 인식되는 동시에, 두려운 어둠의 편에 자신을 바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들도 퍼져나갔습니다.
14세기, 악마 숭배의 확산
가장 최근의 연구에 따르면 악마 숭배의 확산은 격동의 시기였던 14세기에 본격적으로 나타납니다. 유럽의 일부 국가에서는 루시페리안(Luciferians)이라 불리는 집단이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자가 루시퍼라고 설파했습니다. 그는 처음부터 '빛의 천사'로 지정된 존재였기 때문입니다. 이탈리아에서는 '라 베키아 렐리지오네(La Vecchia Religione, 옛 종교)'로 알려진 분파가 축성된 빵을 쥐와 돼지에게 바치는 미사를 조직하기도 했습니다.
근세: 종교재판과 엑소시즘의 시대
근세에 들어서자 악마는 성직자들에 의한 종교재판(Inquisition)이 몰아낸 이단적 행위를 사람들이 저지르도록 이끈 최대의 배후 세력으로 지목되었습니다. 엑소시즘 매뉴얼은 악마의 현현 양상과 그를 쫓아내는 방법을 매우 상세히 기술했습니다. 여러 사례에서 여성의 나약함이라는 당대의 통념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수녀들이 악마에게 홀린 채 공개적으로 나타나 하나님과 교회가 성화한 인물들에 대한 모욕적인 발언을 내뱉는 모습이 목격되었다고 전해집니다.
계몽주의 이후: 과학과 낭만주의 속의 악마
계몽주의 이후, 특히 의학 분야를 중심으로 과학적 설명이 확산되면서 악마에 대한 관심은 상대적으로 약해지는 모습을 보입니다. 19세기 말에는 낭만주의 문학이 악마를 인간이 자유롭게 이성을 발휘할 수 있는 능력을 상징하는 존재로 받아들이기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새로운 의미의 가장 잘 알려진 예는 독일의 요한 볼프강 폰 괴테가 쓴 작품 '파우스트(Faust)'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20세기: 대중문화 속 악마의 상업화
지난 세기에는 악마와 성공·권력 획득 능력 사이의 관계가 음악계 아티스트와 유명인에 대한 소문을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체계적으로 활용되었습니다. 언론의 폭발적 확산 속에서 특정 음악 그룹과 아티스트에 대한 악마화(demonization)는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확실한 명성으로 이어지는 지름길이 되었습니다. 결국 악마의 존재를 가장 위협하는 것은 그 이미지의 평범화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악마에 대한 믿음은 윤리를 지키는 장치인가
현재 악마에 대한 불신은 문화 사상가들 사이에서 흥미로운 논쟁을 촉발하고 있습니다. 일부 학자들에게 악마를 믿는 것은 사회가 윤리적 한계와 도덕을 강화하는 데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악의 이미지를 해체하면 사람들이 단순히 흉악한 행동을 외면하게 될 수 있다는 우려도 함께 제기됩니다. 결국 악의 세력을 믿는 것은 여전히 개인 안의 긍정적 자질을 강화하는 하나의 방식인 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