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히포의 아우구스티누스(354~430)
히포의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e of Hippo, 354-430), 흔히 성 아우구스티누스로 알려진 그는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기독교 신학자이자 철학자 중 한 명이다. 그는 고대에서 중세로 넘어가는 과도기의 지적·교회 활동의 한복판에 서 있었으며, 여전히 고전적(그리스·로마) 지적 환경 속에서 교육을 받았다. 동시에 그는 로마 제국이 야만족의 침입, 행정 통제력의 상실, 로마 사회 전반에 만연한 도덕적 위기 등 여러 요인으로 무너져 가는 과정을 직접 목격했다.
그의 역사신학, 즉 기독교 전통과 교리에 근거하여 역사의 의미를 해석한 견해는, 기독교적 역사관이 고전적 역사관과 어떻게 다른지—그리고 지금까지도 어떻게 다른지—를 이해하는 데 핵심적인 열쇠가 된다.
『신국론』, 『고백록』, 『삼위일체론』에 담긴 역사관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신국론』, 『고백록』, 『삼위일체론』과 같은 저작 속에서 자신의 역사관을 폭넓게 드러냈다. 이 역사관은 교회의 교리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었지만, 동시에 플로티노스의 신플라톤주의 철학의 영향도 받았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역사신학은 본질적으로 이교도의 시간관에 대한 비판과 연결되어 있다. 고대 세계의 사상가들, 즉 그리스·라틴 고전 학자들에게 시간은 원(circle)으로 표현될 수 있었다. 세계가 그 자체로 영원하며 끊임없이 스스로를 반복한다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반면 아우구스티누스는 기독교의 입장을 따라 시간을 십자가(cross)로 표현했다. 즉, 영원한 존재가 시간 속으로 들어와 그리스도(하느님이 사람이 됨)의 강림을 통해 시간에 개입한다는 것이다.
창조된 시간과 구원의 역사
이 관점에서 보면 세계는 영원할 수 없다. 아우구스티누스에 따르면 시간, 곧 덧없이 지나가는 것은 세계와 함께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것이며, 하느님 자신은 시간 안에 있는 존재가 아니라 영원한 분이기 때문이다. 이 언어적 시간관에 대한 비판은 아우구스티누스가 흡수한 유대-기독교적 역사관과도 맞닿아 있다.
유대교와 기독교 전통 모두에서 역사는 창조주께서 창조 때부터 새겨 놓으신 의미를 지닌다. 창세기에서 요한계시록까지 이어지는 의미인 것이다. 기독교인들에게, 특히 아우구스티누스의 역사신학에서 이 운명은 구원의 역사(history of salvation), 곧 ‘구원사’로 이해될 수 있다.
따라서 아우구스티누스에 따르면 이교의 교리는 희망과 믿음이라는 기독교적 덕목이 결여되어 있었기 때문에 설 자리를 잃었다. 희망과 믿음은 미래의 시간, 그리고 다른 세계에서의 영생이라는 약속—인류의 구원을 위해 그리스도가 희생하심으로써 주어진 약속—에 대한 신뢰와 연결되어 있다. 아우구스티누스에게 이것은 결코 이 세상 안에 영원이 존재한다는 교리, 즉 시작도 끝도 없이 만사가 되풀이되는 순환적 ‘영원 회귀(eternal return)’의 세계를 믿는 것과 혼동되어서는 안 된다. 역사관 연구의 권위자인 카를 뢰비트(Karl Löwith)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성 아우구스티누스에 따르면 역사에서 정말로 중요한 것은 제국의 덧없는 영광이 아니라 오는 세계에서의 구원과 심판이다. [아우구스티누스]가 현재와 과거의 사건들을 이해하기 위해 출발한 확고한 관점은 미래의 최종 완성, 즉 마지막 심판과 부활이다. 이 궁극적 목표는 인류 역사의 첫 번째 시작인 창조와 원죄에 대한 짝이 된다. 기원과 종말이라는 이 초역사적 측면과 관련하여, 역사 그 자체는 거룩한 의미의 과거 계시와 그 미래의 실현 사이에 놓인 과도기이다.” (Löwith, Karl, 『역사의 의미』, 리스본: Editions 70, p. 169.)
하나님의 예정된 프로젝트로서의 역사
아우구스티누스는 역사적 과정, 즉 saeculum(세속적 세계)을 하나님께서 미리 정해 놓으신 프로젝트로 파악하고자 했다. 나아가 그는 ‘역사 안에서’ 하나님을 변호하고자 했으며, 세상에서 인류가 발전해 가는 과정을 구원의 역사가 완성되기 위한 필수적인 경험으로 보았다.
글: 클라우디오 페르난데스(Claudio Fernand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