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이야기

워터게이트 스캔들: 닉슨 대통령을 무너뜨린 미국 역사상 최대 정치 스캔들

워터게이트(Watergate)는 1970년대 초 미국 정치를 뒤흔든 정치 스캔들로, 결국 리처드 닉슨(Richard Nixon) 정권의 종말을 가져온 사건입니다. 1972년 워싱턴에 위치한 민주당 본부에 침입하려다 체포된 다섯 명의 남성에서 시작된 이 사건은, 곧 닉슨 대통령과 연결된 첩보 음모로 밝혀지며 거대한 파문을 일으켰습니다.

닉슨에 대한 혐의는 언론을 통해 대대적으로 보도되었으며, 특히 워싱턴 포스트(The Washington Post)의 두 기자가 핵심적인 취재를 담당했습니다. 이후 닉슨이 FBI의 수사를 고의적으로 방해한 사실이 드러나자 탄핵 절차가 개시되었고, 이는 1974년 그의 사임으로 이어졌습니다.

워터게이트 스캔들이란?

스캔들의 시작은 1972년 6월 17일, 미국의 수도 워싱턴에 있는 워터게이트 호텔에서 다섯 명의 남성이 체포되면서였습니다. 이들은 민주당 본부에 침입해 현장의 전화기를 도청하려다 붙잡혔으며, 체포 작업은 현지 경찰에 의해 수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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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롭게도 이 모든 사건은 평범한 순찰 중에 발견되었습니다. 경비원 프랭크 윌스(Frank Wills)는 건물 복도를 순찰하던 중 한 문에 잠금장치가 걸리지 않도록 테이프가 붙어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는 테이프를 떼어내고 순찰을 계속했지만, 다시 그 자리로 돌아왔을 때 테이프가 되어 있는 것을 보고 수상함을 느꼈습니다.

윌스는 즉시 경찰에 신고했고, 경찰은 다섯 명의 남성을 체포했습니다. 체포된 인물은 프랭크 스타기스, 비르히오 곤살레스, 버나드 바커, 제임스 맥코드, 유지니오 마르티네스였으며, 이들은 도청 장치 설치에 사용할 자금과 도구들을 소지하고 있었습니다. 이 사건은 워싱턴 포스트의 두 기자가 본격적으로 취재에 나서면서 국가적 스캔들로 확대되었습니다.

두 기자는 밥 우드워드(Bob Woodward)와 칼 번스타인(Carl Bernstein)이었습니다. 이들은 '딥 스로트(Deep Throat)'라 불리는 비밀 정보원의 도움을 받아 취재를 진행했으며, 이 정보원은 취재 과정에서 확보된 정보의 진위 여부를 확인해 주는 역할을 했습니다.

워터게이트 스캔들: 닉슨 대통령을 무너뜨린 미국 역사상 최대 정치 스캔들

경찰 수사가 진행되면서 체포된 남성들이 소지한 자금이 대통령 재선 위원회(Committee for the Re-Election of the President, CREEP)에서 나온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CREEP은 당시 미국 대통령 리처드 닉슨의 재선을 위해 활동하던 조직으로, 워터게이트 침입 사건으로 체포된 버나드 바커의 계좌에 25,000달러를 입금한 사실도 확인되었습니다.

침입의 목적은 첩보 활동과 직결되어 있었습니다. 다섯 명은 '수배공(The Plumbers)'이라 불리는 그룹의 일원으로, 닉슨 행정부를 위해 유사한 임무를 수행해 왔습니다. 체포 당일 그들은 1972년 5월 28일에 설치된 도청 장치를 수리하려던 참이었습니다.

이번이 민주당 사무실에 대한 첫 번째 침입은 아니었습니다. 닉슨 행정부는 1972년 대선에서 잠재적 경쟁자에 관한 민주당의 정보를 확보하는 데 깊은 관심을 두고 있었습니다. 이 사건의 수사는 두 기자와 미국의 수사기관인 FBI에 의해 동시에 진행되었습니다.

수사 과정에서 놀라운 사실이 하나 더 밝혀졌습니다. 닉슨이 백악관 오힐스 오피스에서 열린 모든 대화와 회의를 녹음해 왔다는 것입니다. 법원의 명령에 따라 그는 녹음 테이프를 제출해야 했고, 그 안에서 그가 워터게이트 사건의 수사를 고의적으로 방해하려 했다는 결정적 증거가 확인되었습니다.

이 발견은 닉슨에 대한 탄핵 절차를 촉발시켰고, 그를 당선시킨 공화당으로부터조차 정치적 지지를 잃게 만들었습니다. 이 모든 과정은 1972년부터 1974년 사이에 진행되었습니다. 1974년 당시 닉슨은 이미 두 번째 임기를 수행 중이었는데, 1972년 선거에서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었던 터였습니다. 심각한 고립감을 느낀 닉슨은 1974년 8월 8일 사임을 결심했고, 그의 사임은 다음 날인 8월 9일에 공식화되었습니다.

침입의 배경과 목적

워터게이트 침입의 목표는 민주당의 내부 정치 정보를 확보하는 것이었습니다. 첩보 활동은 닉슨이 정적들을 무력화하기 위해 선택한 방식이었으며, 그는 정적들과 언론을 적(enemies)으로 간주하는 왜곡된 정치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마치 전쟁 중에 있다고 여긴 닉슨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면 어떤 수단도 정당하다고 믿었습니다. 이러한 성격의 활동은 1971년 정부 기밀 문서가 유출된 후 닉슨 행정부에 의해 본격화되었습니다. 이 사건은 '펜타곤 페이퍼스(Pentagon Papers)'로 알려지게 되었으며, 군 분석가 대니얼 엘즈버그(Daniel Ellsberg), 뉴욕 타임스(The New York Times), 그리고 닉슨 행정부가 연루되었습니다.

펜타곤 페이퍼스에는 1947년 이후 미국 정부의 베트남 관련 활동에 대한 상세한 내용이 담겨 있었습니다. 당시 미국이 베트남 전쟁에 깊이 관여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 문서들은 대중의 큰 주목을 받았습니다. 닉슨 행정부 자체는 직접적으로 연루되지 않았지만, 추가적인 정보 유출이 발생할 것을 크게 우려했습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닉슨 행정부는 '수배공(The Plumbers)'이라 불리는 그룹의 창설을 주도했습니다. 이 그룹은 정부 반대 세력의 감시와 특권 정보의 확보에 집중했습니다. 이 그룹이 정확히 몇 건의 첩보 활동을 수행했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CREEP으로부터 자금을 지원받았다는 사실은 확인되었습니다.

수배공의 핵심 멤버로는 하워드 헌트(Howard Hunt)와 고든 리디(Gordon Liddy)가 있었으며, 이들은 이 첩보 그룹의 운영을 총괄했습니다. 두 사람은 CREEP의 일원이기도 했고 동시에 닉슨 행정부의 구성원이기도 했습니다.

스캔들의 결과

FBI가 수행한 수사는 1972년부터 1974년까지 진행되었습니다. 이 기간 동안 수사가 깊어질수록 닉슨 행정부와 직접적으로 연결된 더 많은 인물들이 연루되었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대통령과 민주당 사무실 침입 사건 사이의 연결고리가 명확해졌습니다.

워터게이트 스캔들: 닉슨 대통령을 무너뜨린 미국 역사상 최대 정치 스캔들

워터게이트 침입으로 체포된 남성들은 1973년 1월에 재판을 받았습니다. 이후 몇 달 동안 상원이 사건을 조사하기 위한 청문회가 열리고, 정부 관료들의 사임이 잇달았으며, 결정적인 닉슨의 녹음 테이프가 발견되었습니다. 정치적으로 완전히 고립된 닉슨은 결국 대통령직에서 물러나기로 결정했습니다.

닉슨은 미국 역사상 유일하게 사임한 대통령으로 기록되었습니다. 부통령 제럴드 포드(Gerald Ford)가 대통령직을 승계했으며, 1974년 9월 닉슨을 임기 중 저지른 모든 범죄에 대해 사면했습니다.

한편, 이 사건의 취재를 이끈 기자들의 정보원의 신원은 무려 2005년에야 밝혀졌습니다. 전설적인 '딥 스로트'의 정체는 당시 FBI 부국장이었던 윌리엄 마크 펠트(William Mark Felt)였습니다.

이미지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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