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이야기

제23장 고대 인도의 교육 성격과 주요 교육 센터(D): 자이나교 교육의 중심지

제23장 고대 인도의 교육 성격과 주요 교육 센터(D): 자이나교 교육의 중심지

고대 인도에서 자이나교는 힌두교 및 불교와 함께 교육과 학문 발전에 크게 기여한 종교였습니다. 자이나교 사원과 비하라(수도원)는 단순한 종교 공간을 넘어 경전 연구와 학문 활동이 이루어지는 주요 교육 중심지로 기능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고대 인도 자이나교 교육의 대표적인 중심지였던 안힐파탄, 잘로르, 칸치를 살펴봅니다.

1. 안힐파탄(Anhilpatan, Anhilwara)

안힐파탄은 구자라트를 통치한 찰루키아(Chalukya) 왕조의 수도로, 중세 이전 시기 학문의 중심지로서 명성이 높았습니다. 이곳에서는 힌두교의 종교와 철학뿐 아니라 자이나교의 종교와 철학도 함께 가르쳤습니다.

찰루키아 왕조의 많은 국왕들은 학문과 지식의 발전에 깊은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솜프라바차리야(Somprabhacharya), 헴찬드라(Hemchandra), 람찬드라(Ramchandra), 우다이찬드라(Udaychandra), 자이 싱(Jai Singh), 야슈팔(Yashpal), 바차라지(Vatsaraj), 메루퉁(Merutung)과 같은 저술가들은 안힐파탄 궁정의 보호 아래 산스크리트어, 프라크리트어, 아파브람사어 등 다양한 언어로 중요한 문헌들을 집필했습니다.

그중에서도 헴찬드라는 가장 유명한 학자로 자리매김했습니다. 그는 문법, 운문, 어휘, 문학, 사전 편찬, 역사, 철학 등 폭넓은 분야에 걸쳐 방대한 저작을 남겼으며, 그의 학문적 업적은 이후 자이나교 문헌 연구의 기틀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무슬림 세력이 구자라트를 침공하면서 안힐파탄은 교육적·종교적 중요성을 잃게 되었습니다.

2. 잘로르(Jalore)

잘로르는 서기 7~8세기경 자이나교의 주요 거점이었습니다. 8세기에는 우디오탄 수리(Udyotan Suri)가 『쿠발라야말라(Kuvalayamala)』라는 유명한 논저를 집필하여 이곳 학문 전통의 토대를 마련했습니다.

1164년에는 당대 최고의 자이나교 학자 헴찬드라의 영향을 받은 쿠마르팔 찰루키아(Kumarpal Chaulukya)가 잘로르에 쿠바르 비하라 지날라야(Kuvar Vihara Jinalaya)를 건설했습니다. 이후 1185년에는 라자 사마르 싱(Raja Samar Singh)의 대신 야쇼비르(Yashovir)가 이 사원을 개보수하였습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잘로르는 자이나교 경전 연구의 핵심 중심지로 성장했습니다. 인도 독립 이후에는 무니 진 비자이(Muni Jin Vijay)가 잘로르 지날라야에 소장된 귀중한 경전들을 아메다바드로 옮겨 보존했습니다.

3. 칸치(Kanchi)

칸치에서는 서기 1세기경 쿤드 쿤다차리야(Kund Kundacharya)가 자이나교를 전파했습니다. 이어 3세기에는 아칼랑크(Akalank)가 자이나교 확산에 크게 기여하며 그 입지를 더욱 굳건히 했습니다.

팔라바(Pallava) 왕조의 전신인 칼라브라(Kalabhra) 왕국의 왕들은 자이나교를 받아들였습니다. 이러한 왕실의 후원 덕분에 칸치에서는 자이나교가 크게 번성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팔라바 왕조의 심하비슈누(Simhavishnu), 마헨드라 바르만(Mahendra Varman), 심하바르만(Simhavarman, 서기 550~560년경) 등의 왕들 역시 자이나교를 신봉하며 종교와 학문의 발전을 적극적으로 뒷받침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