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이야기

고대 그리스·로마인들은 몇 살에 '첫 경험'을 했을까? [18+]

바른 교양을 갖춘 그리스 남성은 성년이 된 뒤에야 성생활을 시작해야 했다. 덕망 있는 로마 여성은 결혼 시점 혹은 그 직전에. 하지만 고대인들이 실제로 몇 살이었는지, 그리고 그들의 '첫 경험'은 어떤 모습이었는지 짐작할 수 있겠는가? 이 이야기들은 당신을 놀라게 할 것이다...

그리스 신랑은 자신이 택한 신부보다 훨씬 나이가 많았지만, 결혼할 때까지 정조를 지켰을 리 없다. 전혀 아니다. 아무도 그에게 그런 것을 요구하지 않았다. 결혼식 날까지 순결을 지켰으리라고 상상하기는 어렵다.

그 전에 그는 고대 그리스·로마 세계에서 만연했던 두 가지 현상, 즉 매춘과 소년애(페데라스티)를 경험해야 했다. 이 두 현상은 훗날 그의 인생 내내 곁에 따라붙었다. 그러므로 그의 첫 경험은 매춘부와 함께하거나, 혹은 연상 애인의 품에서 이루어졌을 수 있다. 노예 소녀였거나, 일화에 전해지듯 늙은 이웃—대개 저항 없이 굴복하는 외지인—이었을 가능성도 있다.

허용된 것과 금지된 것

당대 의사들과 철학자들은 성생활을 너무 일찍 시작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젊은이의 활력을 소진시켜 육체의 성장과 정신의 발달을 멈추게 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심지어 이를 '소아 간질'에 비유하기도 했다. 오르가스모스(orgasmos)는 팽창을, 엑스타시스(extasis)는 제정신을 잃음을 뜻하는 단어였다.

그래서 기원전 5~4세기에 활동한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무엇보다 절제를 권했다. 기원후 2세기의 그리스계 로마 의사 갈레노스는 많은 청년들이 육체의 쾌락을 너무 일찍 알게 되어 중병에 시달렸다고 진단했다. 그리고 성숙기, 즉 열네 살이 지난 뒤에야 비로소 시작해야 한다고 보았다.

고대 그리스·로마인들은 몇 살에  첫 경험 을 했을까? [18+]

결혼 전 그리스 청년들에게는 유혹이 넘쳤다. 여성 매춘부뿐 아니라, 소년애적 사랑의 이념에 따라 청년들을 성의 세계로 인도하던 연장자들도 있었다. 사진은 그리스 도기에 그려진 그림으로, 제우스의 신화적 애인 가니메데스를 묘사하고 있다.

기원후 2~3세기 교차기의 나우크라티스 출신 학자 아테나이오스는 소년들이 이 나이에도 섹스보다는 운동에 매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렇게 썼다.

(...) 이 나이부터 정자 생성이 시작되고 격렬한 욕망이 청년들을 성교로 몰아넣으므로, 육체와 정신을 충분히 지치게 하는 신체 단련이 이루어져야 젊은이의 욕망을 싹트기 전에 억누를 수 있다.

흥미롭게도 고대 세계에서 현대 도덕주의자들이 큰 관심을 쏟는 문제, 즉 청소년기의 자위행위는 거의 완전히 무시되었다. 그리스인들은 이 행위를 음탕한 사티로스(산신)의 발명품—사티로스가 인간에게 그 '발견'을 나누어 준 것—으로 여겼지만, 당시에는 특별히 부정적인 함의가 없었다. 물론 정액의 낭비는 비난받았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위하는 소녀들이 장차 더 방종해질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많은 철학자들은 자위를 긴장과 불편함을 몸에서 위생적으로 씻어내는 행위로 간주했다.

고대 그리스·로마인들은 몇 살에  첫 경험 을 했을까? [18+]

디오게네스(쥘 바스티앙-르파주, 1873)는 고대에서 가장 유명한 인물 중 하나가 된 그리스 철학자다. 그는 결혼 제도의 폐지를 주장했을 뿐 아니라, '모두가 하는 일은 공공연히 해도 된다'는 소위 무치(無恥)의 원칙을 대담하게 설파했다.

"스토아 학파에 따르면 자위는 부부간 성교와 마찬가지로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행해져야 했다. 자기 자신과의 섹스는 다른 사람과의 섹스보다 이 틀에 더 잘 들어맞는다"라고 미국의 역사가이자 섹슐로지스트 토머스 월터 라커는 설명한다. 우디 앨런의 말대로 자위란 정말 사랑하는 사람과 하는 섹스인 셈이다!

물론 성인이 되어 존경받는 시민이라면 철학자 디오게네스가 시장에서 했듯 대중 앞에서 자위하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 일이었다. 반면 그토록 많은 육체적 기회가 널려 있는데 누가 굳이 자위에 의존하겠는가? 철학자들의 절제 호소를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한 말이다. 실제로 기원전 4세기의 플라톤은 우리가 지향해야 할 완벽한 세계에서 자연에 조화로운 결혼이 낳는 자녀만으로 충분하고, 매춘이나 자위, 심지어 고대 헬라스에서 그토록 높이 평가되던 소년애조차 필요하지 않으리라고 상상했다...

충격적인 희생자

반면 로마에서 성적 개시는 대개 결혼 첫날밤에 이루어졌다. 적어도 이론상으로는. 특히 로마인들은 십 살짜리 어린 소녀와도 결혼하는 경우가 있었기 때문에(제정 시대에 실제로 그랬다) 결혼 전 연애를 하기가 어려웠다.

그러나 신랑신부의 어린 나이는 로마 여성의 '첫 경험'이 실제로 어떤 모습이었을지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로마 건국 초기에는 신부의 처녀 상실을 신랑이 아니라 그의 친구들이 대신 맡는 경우도 있었다고 전해진다! 신랑이 그들에게 우선권을 내준 것일까? 지나치게 후한 사람이었는가, 아니면 무언가 두려워하는 바가 있었는가? 이 관습이 실제로 존재했는지, 아니면 오늘날에는 전설에 불과한지는 알 수 없다.

더욱 충격적이면서 확인은 별반 더 되지 않는 것이 결혼 의식 하나다. 무투누스 투투누스(Mutunus Tutunus)라는 신을 기리는 의식으로, 이 신은 남근의 형상으로 표현되었고 침실에 보관되었다. 신부들은 이 남근상 위에 앉아 신에게 자신의 처녀성을 바쳤다고 한다. 여기서 즉각 떠오르는 의문들: 순전히 상징적인 행위였는가? 어쩌면 남자에 의한 처녀 상실에 대한 고대인의 두려움, 혹은 동료들이 신랑을 돕던 습관과 연관된 것일까? 여성의 처녀성을 빼앗는 일이 초자연적 존재의 분노를 불러일 위험을 지니고 있었을까?

고대 그리스·로마인들은 몇 살에  첫 경험 을 했을까? [18+]

다산과 연관된 로마의 신 무투누스 투투누스(삽화는 폼페이 프레스코화의 일부로 추정). 역사학자들은 그의 신역이 웰리아 언덕에 신-남근 조각상과 함께 자리했을 것으로 추측한다.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신부들은 결혼식 날 그의 상 위에 앉아 처녀성을 바쳤다고 한다...

확신은 없다. 무투누스 투투누스에 관한 기록은 거의 남아 있지 않으며, 공화정의 몰락과 제정의 탄생 무렵에는 이 기괴한 관습이 이미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카툴루스(기원전 1세기)의 결혼 축가 같은 데서는 그런 섬뜩한 내용을 찾아볼 수 없다. 때로는 오싹하기까지 하지만, 그곳에는 젊은이들의 장래 행복에 대한 믿음이 가득하다.

경솔한 아내도,
악한 첩도 없으리,
간통에 빠져
다른 이와 침상을 같이하고픈 마음은 없으리,
저 사랑스러운 가슴과도.
(...)
보라, 티레산 침상 위에
당신의 배우자는 이미 누웠노니
온몸이 목마르다.
(...)
가슴 깊은 곳에서 타오르는 불꽃은 당신 못지않다.
아니, 더 깊이 타오른다.

그리고 로마 결혼 침실에서 첫날밤에 어떤 일이 있었든, 그것은 분명 걱정 없고 억눌림 없는 섹스는 아니었다. 아내의 수치심은 벗어 던진 옷과 함께 떨어져서는 안 되었고, 어둠이 가능한 모든 장난을 허용해서는 안 된다고 여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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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필자가 최신 저서 '수치의 시대: 고대의 섹스와 에로티카'를 집필하는 과정에서 작성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