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크레인은 어떻게 작동했을까요? 호출사는 왜 고용되었을까요? 박람회 주최자가 되는 것이 왜 그토록 가치 있었을까요? 중세 시대 사람들은 정말 다양한 방법으로 돈을 벌었습니다. 그중 일부는 오늘날에는 상상하기 어려운 것들입니다. 아니면 단지 이름만 바뀌었을지도 모르죠.
옛 도시에는 중세 세계를 대표하는 직업들이 있었지만, 현대인을 놀라게 할 만한 것들이 많았습니다. 이들 대부분은 오늘날에는 사라졌습니다. 그렇다면 가장 특이한 직업은 무엇일까요?
인간 크레인(물레바퀴 운전사)
이 직업은 무척 특이할 뿐만 아니라 아마도 중세 노동 중 가장 고된 일 중 하나였습니다. 간단한 두레박부터 점점 더 정교해진 기계까지, 사람들이 크레인을 직접 조작하지 않았더라면 중세 광업의 발전은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물레바퀴에 달린 수많은 기어와 도르래 덕분에 한 사람이 무려 2톤에 달하는 무게를 들어올릴 수 있었습니다! 반면 높이가 몇 미터에 달하는 원뿔형 물레 구조물은 한 번에 몇 톤씩이나 짐을 들어올릴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13세기 프랑스 세밀화에 등장하는 크레인.
상상해 보시겠지만, 이 작업은 극도로 힘들고 지치며 단조로웠습니다. 때로는 사람 대신 동물이 이 일을 대신했습니다. 물레바퀴 노동자들의 고단한 삶이 끝난 것은 훨씬 후대, 증기기관이 발명되면서였습니다.
호출사(부고 전달인)
호출사는 무슨 일을 했을까요? 이들은 중세 도시의 삶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맡은 특별한 심부름꾼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도시 주민 중 한 명이 세상을 떠나면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중세 도시의 삶』의 저자 프랜시스 기스와 조지프 기스는 "임무는 사망 소식을 알리고 장례식의 장소와 시간을 알리는 것이었다"고 설명합니다.
옷 수선공
오늘날에도 흔한 재단사와 혼동해서는 안 되는, 중세 특유의 직업입니다. 이 직업은 장인 길드가 도입한 극도로 세분화된 내부 규정에서 비롯된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재단사가 이미 중세에 존재했다는 사실은 놀랍지 않습니다. 하지만 왜 헌 옷을 수선하는 일은 허락되지 않았을까요?
이름 그대로 옷 수선공은 오직 옷을 수선하는 일만 했습니다. 새 드레스나 튜닉, 바지를 만드는 것은 완전히 금지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중세 재단사는 헌 옷을 수선할 수 없었습니다. 게다가 옷뿐 아니라 가구와 의류를 수선하던 이들은 끊임없이 이곳저곳을 돌아다녔기 때문에, 낡은 외투를 손보려면 그들이 동네에 나타나기를 기다려야 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박람회 주최자
딱딱한 사무직처럼 들리나요? 전혀 아닙니다! 겉모습과는 달리 매우 명망 있는 자리였습니다. 예를 들어 프랑스 트루아에서는 "박람회 주최자의 직위는 연봉 200파운드(리브르)의 훌륭한 급여와 30파운드의 공비, 그리고 평생 모든 수수료와 세금 면제라는 혜택을 가져다주었다"고 조지프 기스와 프랜시스 기스가 『중세 도시의 삶』에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특권에 대한 보상으로 주최자들은 인장 감독관이나 박람회 부관 같은 관료 군단의 도움을 받아 행사 전체를 감독했습니다. 트루아에는 두 명의 주최자가 있었으며, 현지 백작이 도시민과 귀족들 가운데서 선발했습니다.
곰 조련사
중세 사람들의 덜 영광스러운 오락거리 중 하나는 동물 싸움 구경이었습니다. 이 공연의 한 장면은 포획된 곰에게 개들이 달려드는 것이었습니다. 곰들은 주인, 즉 '조련사'와 함께 마을에서 마을로 이동했습니다.

포획된 곰들은 마을을 돌며 싸움에 동원되거나 여러 묘기를 배웠습니다. 15세기 세밀화.
때로는 곰들이 서커스 공연에도 동원되었습니다. 1911년판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에 따르면, 이런 행사는 20세기 초까지도 열렸으며 동물들은 주로 프랑스인과 이탈리아인이 돌보았다고 합니다. 흥미롭게도 이 직업의 이름(영어로 bear-leader, 곰 인도자)은 영국에서 누군가의 여행에 동행하는 보호자나 감독자를 가리키는 일상 용어로 자리 잡았습니다.
소변 의사(혹은… 소변 예언자)
중세에는 치료사가 분명히 많았지만, 이런 종류의 '의사'는 단연 돋보입니다. 소변 의사는 오직 소변만으로 환자의 건강 상태를 판단했습니다. 소변의 색깔과 외관, 냄새를 살피고, 심지어 맛을 보기도 했습니다. 때로는 실제로 유용하기도 했습니다. 고대부터 이어져 온 소변 검사는 여성의 임신 여부 확인 등에 사용되었고, 이 방법으로 당뇨병을 발견할 수도 있었습니다.
문제는 환자의 소변만으로 성격이나 장래를 점치려던 전문가였습니다. 그럴 때야말로 '소변 예언자'라 불릴 자격이 충분했겠죠.

소변 의사는 오직 소변만으로 환자의 건강을 판단했습니다.
이 직업은 유난히 오래 지속되었습니다. 18세기 철학자 버나드 맨더빌이 언급한 바 있으며, 1875년 서식스 방언 사전에도 등장합니다. 거기에는 당시 서식스 카운티에서 자신의 소변을 담은 병을 '소변 의사'에게 검사받으러 보내는 것이 흔한 관행이었다는 언급까지 있습니다.
와인 홍보원
중세 도시 사람들은 어떤 선술집이 맛있는 와인을 파는지 어떻게 알았을까요? 그 비결은 홍보 역할을 겸한 특별한 검사관 덕분이었습니다. 프랜시스 기스와 조지프 기스는 이들의 직업을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와인과 관련된 흥미로운 직책이 있었는데, 특별한 전령이자 검사관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매일 아침 이 남자는 아직 이런 종류의 '찬사가'를 고용하지 않은 첫 번째 선술집으로 가서, 그곳에 고용되어야 했다. 그는 술을 따르는 과정을 감독하거나 직접 따른 뒤 맛을 보았다.
마침내 잔과 삼베 조각을 채운 가죽 부대를 들고 나와 와인을 알리고 지나가는 행인에게 무료 시음을 제공했다. 가격 통제를 위해 출발하기 전 선술집 손님들에게 얼마를 지불했는지도 물었다.
참고 문헌
- Joseph Gies, Frances Gies, 『Life in a Medieval City』, Horizon 2018.
- Joyce E. Salisbury, 『The Greenwood Encyclopedia of Global Medieval Life and Culture』, Greenwood Press 2008.
- 'Walking circle' 및 'Kierat', Medieval Mining Village 웹사이트.
- Bernard Mandeville, 『A Treatise of the Hypochondriack and Hysterick Diseases』, Sylvie Kleiman-Lafon 편집, Springer 2017.
- William Douglas Parish, 『A dictionary of the Sussex dialect and collection of provincialisms in use in the county of Sussex』, Oxford University 1875.
- Henryk Samsonowicz, 『The Life of a Medieval Town』, PWN 19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