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이야기

유럽인에게 패션을 가르친 것은 훈족과 게르만족이었나? 키질 벽화가 밝히는 동서양의 놀라운 유사성

1905년, 키질에서의 충격적인 발견

1905년, 알베르트 폰 르 코크(Albert von Le Coq)가 이끄는 독일 탐사대가 당시 ‘중국령 투르키스탄’이라 불리던 지역의 키질(Kyzyl)에서 6~7세기경에 그려진 프레스코 벽화를 발견했습니다. 벽화에는 당시 이 지역에 살던 토하르인(Tocharians)의 모습이 담겨 있었는데, 특별할 것이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인물들의 복장이 중세는 물론 근대 유럽인의 복장과 놀랍도록 흡사했다는 사실이 문제를 완전히 바꿔놓습니다.

베를린 국립민족학박물관의 교수였던 르 코크는 발굴된 불교 사원에 들어선 순간을 다음과 같이 회고했습니다.

“기증자들을 그린 그림은 첫눈에 고딕 양식의 묘지 예배당 벽화를 연상시켰다. 남자들은 다리를 넓게 벌리고 서 있었다(…). 비단직물이나 화려한 자수로 만든 긴 카프탄에는 삼각형 모양의 옷깃이 달려 있었다. 그들은 금속 원판으로 장식된 귀족풍의 허리띠를 두르고, 거기에 매달린 십자형 자루와 둥근 또는 납작한 칼머리를 가진 길고 곧은 검을 차고 있었는데, 이는 카롤링거 시대와 초기 고딕 시대 유럽의 검과 놀랄 만큼 흡사했다. 반대쪽 허리에는 스키타이식 단검을 찰 수 있었다(…).”

“왕공족 곁에는 여인들이 서 있었다. 그들은 앞부분이 깊게 파인 몸에 딱 붙는 상의에 종 모양으로 퍼지는 소매를 입고 있었다(…). 자락이 끌리는 긴 치마를 입은 그들의 자세는, 팔을 뒤로 젖히고 몸을 앞으로 기울인 채 움직이는 듯한 포즈로, 홀바인에서 반 다이크에 이르는 유럽 회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여인상을 떠올리게 했다. (…) 남성의 무구와 여성의 의상에서 드러나는 이러한 조합은 놀랍고도 현저한 유사성을 보여준다.”

해석의 여지, 그리고 스스로 확인해 볼 것

물론 보는 사람에 따라 해석은 분분합니다. 어떤 이는 유럽식 카프탄이라고 보겠지만, 또 다른 이는 평범한 초원 복장이라고 여길 수 있습니다. 직접 눈으로 확인해 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알렉산드라 카이다니스카와 에드워드 카이다니스키 부부의 저서 『실크 – 상선과 상단의 길』에 실린 키질 벽화 재구성 이미지를 살펴보면, 과연 그렇게 큰 유사성이 느껴지는지 스스로 판단할 수 있습니다.

유럽인에게 패션을 가르친 것은 훈족과 게르만족이었나? 키질 벽화가 밝히는 동서양의 놀라운 유사성

키질에서 발견된 또 다른 벽화의 일부. 더 많은 예시는 카이다니스키 부부의 책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패션은 어떻게 세계 반대편까지 전해졌을까?

만약 단순한 우연의 일치를 넘어 실제 연관이 있다면, 중국식 복장과 디자인 문양은 대체 어떤 경로로 머나먼 유럽 땅까지 도달했을까요?

카이다니스키 부부에 따르면, 그 답은 초원의 유목민들에게 있습니다. 훈족, 게르만족, 스키타이인, 심지어 켈트인과 같은 여러 ‘야만족’들이 새로운 유행을 유럽에 가져왔다는 것입니다. 르 코크가 언급했듯이, 메로빙거 왕조 시대의 프랑크족이나 카롤링거 왕조는 바로 이들로부터 아시아풍 스타일을 받아들였다는 설명입니다.

참고 자료

  • A. 카이다니스카, E. 카이다니스키, 『실크 – 상선과 상단의 길』(Jedwab. Szlaki dżonek i karawan), Book and Knowledge,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