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문을 통째로 옮겨놓고 수레를 헛간 지붕 위로 올려두기… 이것은 다소 기발하지만 지금은 잊혀진 옛 풍습이자 새해 전야의 장난들입니다. 일 년 중 단 하루밤의 신비로운 분위기는 우리 조상들에게 가장 엉뚱한 아이디어를 떠올리게 했습니다.
새해 전야는 어디서 왔을까?
모든 것은 꽤 오래전, 지난 천년기가 바뀌던 무렵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유럽 사람들은 그리스의 신탁자 시빌(Sibyl)의 예언을 믿으며 999년의 마지막 날에 세상이 끝날 것이라 확신했습니다. 예언에 따르면 세계의 멸망은 서기 4세기에 교황 실베스테르 1세가 바티칸 지하에 가둬놓은 용 리바이어던(Leviathan)에 의해 일어날 예정이었습니다. 그래서 999년의 새해 전야가 되면 그 치명적인 짐승이 풀려날 것이라 믿었습니다. 오랜 기다림에 분노한 리바이어던은 길목에 있는 모든 것을 파괴하고 불태워버릴 것이었습니다.

구스타브 도레(Gustave Doré)의 1865년 판화 「리바이어던의 파멸」
그런데 기다려온 999년의 마지막 날이 지나갔는데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자, 사람들은 크게 기뻐하며 춤추고 노래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행복한 구원을 기념하기 위해 매년 낡은 해의 끝과 새로운 해의 시작을 성대하게 경축하게 된 것입니다. 당시 바티칸 거리에 모인 군중 앞에 나선 교황 실베스테르 2세가 역사상 처음으로 '우르비 에트 오르비(Urbi et Orbi)', 즉 도시와 세계를 향한 축복을 내렸다고 전해집니다. 훗날 이 사건을 기념하여 12월 31일은 성 실베스테르 축일이 되었고, 폴란드어로 '실베스테르'는 곧 새해 전야를 뜻하는 말이 되었습니다.
폴란드 땅에서
새해 시작을 함께 경축하는 풍습은 폴란드에는 비교적 늦게, 19세기와 20세기가 교차하는 무렵에야 등장했습니다. 그 전까지는 부유한 귀족 가문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었습니다. 흥미롭게도 중세에는 새해가 성탄절에 시작되는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새해 전야의 관습은 사회 전반으로 퍼져나갔고, 20세기 초는 유럽 전역에서 지역과 국가 특유의 풍습과 전통이 형성된 시기였습니다.
폴란드에서 이 특별한 밤은 특히 도시 밖에서 더욱 뜨겁고 즐겁게 보내졌습니다. 젊은이들은 온 마을 사람들을 상대로 가장 기발한 장난을 일삼았습니다. 물론 가장 인기 있는 농가는 미혼 처녀들이 사는 집이었습니다.
각양각색의 장난들
주인들이 새해 전야의 흥겨움에 취해 있거나 깊은 잠에 빠져 있을 때, 새해 장난꾸러기들이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레퍼토리 중 가장 간단한 장난은 그을음이나 물감으로 창문에 낙서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나뭇가지, 마른 잎사귀 등 보기 좋은 자연물로 만든 장식물을 울타리와 대문에 걸어두기도 했는데… 새해 전야의 소동이 지나고 나면 그 자리에 남아 있지 않은 경우가 많았습니다.
대문을 경첩에서 분리해 엉뚱한 곳에 옮겨놓는 것도 인기 있는 장난이었습니다. 아침에 주인은 마을을 돌아다니며 자신의 대문을 찾아 헤매야 했습니다. 덕분에 이웃들에게 직접 새해 인사를 전할 수 있었으니, 일석이조였습니다. 대문을 통째로 옮기기 어려울 때는 작은 출입문이나 문짝이 근처 도랑, 밭, 숲가 같은 뜻밖의 장소에 놓이곤 했습니다.

20세기 초는 유럽 전역에서 지역과 국가 특유의 풍습과 전통이 발전한 시기였습니다
또 하나 무차별적으로 벌어진 짓은 가축 바꿔치기였습니다. 아침에 일어난 소 주인은 우리 안에서 이웃의 가축이나 완전히 다른 종류의 동물을 발견하기도 했습니다. 문자 그대로 '상급' 장난도 존재했습니다. 폴란드의 일부 지역에서는 가장 용감한 자들을 위한 새해 전야 전통으로, 나무 사다리 수레를 재빨리 분해했다가 잠시 후 헛간 지붕 위 같은 터무니없이 높은 곳에서 다시 조립하는 것이 있었습니다.
완전히 잊혀진 풍습, '새해 깡패'
저명한 폴란드 민족지학자이자 민속학자인 오스카르 콜베르크(Oskar Kolberg)는 폴란드 옛 풍습에 관한 연구에서 흥미롭지만 안타깝게도 이미 완전히 잊혀진 전통, 바로 '새해 깡패(Noworocznicy)'에 몇 페이지를 할애했습니다. 사실 이는 캐롤을 부르며 집집마다 찾아다니는 풍습과 비슷했지만, 훨씬 더 거칠고 활동적이었습니다.
젊은이들은 몸에 짚을 두르고 같은 재료로 만든 높은 모자를 썼습니다. 나무 검이나 막대기를 든 채 새해 전야나 새해 첫날에 시골을 돌아다니며 예고 없이 집으로 뛰어들었습니다. 노래를 입술에 담은 채 작은 장난을 치곤했습니다. 의자를 넘어뜨리고, 쓰레기나 재를 뒤집어놓고, 때로는 주부들 앞에서 바닥에 더러운 물을 쏟아붓기도 했습니다.

우치의 일루스트로바니 쿠리에르 코지엔니(Ilustrowany Kurier Codzienny) 편집국을 찾은 캐롤 손님들
다행히도 이런 말썽에 대해 아무도 그들을 탓하지 않았습니다. 새해 소년들의 집 방문은 다가오는 한 해 가족 전체의 행복과 성공을 예고하는 길조로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집에 총각이 들면 집에 행복이 들고, 소는 송아지를 낳으며, 처녀는 시집간다"는 말도 전해졌습니다. 그들의 활약에 대한 보상으로 소년들은 종종 달콤한 간식이나 신선한 달걀, 우유를 받았습니다.
샴페인 거품으로 보는 점
1920년대, 샴페인이 점점 유행하던 새해 전야 파티 살롱에 등장하면서 잔으로 점을 보는 것이 하나의 유행이 되었습니다. 반짝이는 거품이 배열되는 방식에 따라 번영이나 시련을 점칠 수 있다고 믿었던 것입니다.

1931년 바르샤바의 새해 전야 무도회
거품이 바닥에서 위로 꾸준하고 느리게 올라가면 좋은 징조로, 평온한 한 해를 의미했습니다. 반면 잔 속에서 격렬하게 일렁이는 거품은 모험이나 문제, 삶의 변화를 예고하는 것으로 해석되었습니다. 거품 줄기가 서로 교차하면 마시는 사람에게 건강에 유의하고 집안 재정을 잘 살피라는 경고였습니다.
유럽 각국의 새해 풍습
많은 오래된 새해 전야 풍습이 유럽에서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스페인에서는 1909년부터 변함없이 행복과 번영을 기원하기 위해 정확히 자정에 시계 종이 울릴 때마다 포도 한 알씩 먹습니다. 열두 알의 포도는 일 년 열두 달을 상징합니다. 다른 버전에 따르면 포도를 삼킬 때마다 소원을 하나씩 빌어야 한다고도 합니다.
파나마 사람들은 오랫동안 새해 전야에 인형을 태워왔습니다. 인형은 곧 저물어가는 한 해에 닥쳤던 문제와 불행을 상징하며, 불은 그것들을 잊혀지게 몰아내는 역할을 합니다. 이 전통은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해마다 더 대담한 형태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파나마 사람들이 만든 인형에 싫어하는 정치인의 가면이나 얼굴 인쇄물을 추가로 '장식'하기도 합니다.

옛 속담에 "나라마다 풍습이 있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또 하나의 오래된 폴란드 전통을 활용해 서로에게 새해 복을 빌어주는 것뿐입니다!
소수의 사람만 알지만, 이 축원은 수백 년 전, 아직 새해나 새해 전야를 경축하지 않던 시절부터 전해집니다. 성탄 전야에 사람들은 '시에고 로쿠(siego roku)', 즉 '이 해까지'라는 축원을 건넸습니다. 여기서 '시에고'는 고대 폴란드어 지시 대명사 '시에(sie)', '시아(sia)'(오늘날의 '텐(ten)', '타(ta)', 즉 '이것')의 속격 형태입니다. 따라서 이 축원은 '이 해의 끝까지 행복과 번영 속에 살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은 인사였던 것입니다.
참고 문헌
1. 『중세부터 현대까지 폴란드의 풍습』, 안제이 흐발바(Andrzej Chwalba) 편, 바르샤바, 2015.
2. 레나타 흐린-쿠시미에렉(Renata Hryń-Kuśmierek), 『폴란드의 해, 풍습과 의례』, 2010.
3. 오스카르 콜베르크(Oskar Kolberg), 『루크(Lud), 그의 풍습·생활 방식·언어·전설·속담·의례·주술·놀이·노래·음악과 춤』, 크라쿠프, 18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