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상에서 10억 명이 넘는 사람들이 깨끗한 식수를 구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폴란드 크라쿠프에는 이미 중세 시대에 상수도가 등장했습니다. 17세기에는 부유한 시민들이 자신의 집에서 직접 물을 쓸 수 있었죠. 하지만 하수도 사정은 형편없었습니다. 도대체 그 방대한 오물은 어디로 갔을까요?
집으로 들어오는 수돗물, 하수도, 욕실 사용까지. 겉보기에는 지난 몇 세기에 이루어진 문명의 성과처럼 보이며, 그 이전 시대에 살던 사람들은 이런 것 없이 어떻게든 버텨야 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전혀 사실이 아닙니다!
『17세기 전반 크라쿠프의 주택과 아파트』의 저자 스타니스와프 톰코비치(Stanisław Tomkowicz)에 따르면, 크라쿠프 도시 상수도에 관한 최초의 기록은 14세기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야기워 대학교 콜레기움 마이우스(Collegium Maius) 안뜰의 우물 (사진: Jan Mehlich, CC BY-SA 3.0)
중세 폴란드의 수도였던 크라쿠프에는 상수도망이 갖춰져 있어, 시장 광장에 세워진 세 개의 도시 우물('크시슈토포리' 궁전 근처의 서쪽 우물, 성모마리아 교회 앞 우물 등)에 먹는 물을 공급했습니다.

현재 크라쿠프의 하수도 관로가 15세기 목제 수도관을 가로지르는 모습. 크라쿠프 고고학 박물관 소장 자료.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생명수는 루다바(Rudawa) 강에서 시작되어 나무로 만든 파이프를 따라 도심 한복판으로 흘러들었습니다. 참고로 당시 크라쿠프 사람들이 고대 로마에서 검증된 첨단 기술인 납 파이프 제작을 시도하지 않은 것은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이웃집에서 빌려 쓴 수도관, 계량기는 없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도시 상수도 분야에서 눈에 띄는 발전이 이루어졌습니다. 17세기 전반에 이르면 모든 것이 현대와 놀랍도록 비슷해집니다. 관청에 허가를 신청하고, 허가를 받으면 부지 개발이나 상하수도 연결 공사를 시작하는 식이죠.

중세 도시가 결코 깨끗하고 정돈된 곳은 아니었습니다…
1623년 도시 기록부에는 마테우시 실린스키(Mateusz Siliński)라는 인물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하수도나 지하 파이프를 통해 흐르는 물을 […] 벽돌 상점 아래 지하실을 지나 […] 예전부터 크시슈토포리에 있는 자신의 연립주택까지 […] 자비로 끌어들이도록 했다.'

참고로 비교하자면, 16세기 토룬(Toruń)의 상수도 모습입니다 (사진: 토룬 시청 『가제타 메이스카』 2000년 5월 18일자 제10호(53호)).
즉, 실린스키 씨는 자신만이 사용할 수 있는 취수 시설을 갖춘 셈입니다. 물론 그뿐만이 아니었습니다.
1607년에는 법학 박사 아담 체른코비치(Adam Czernkowic)가 물을 확보할 방법을 찾다가, 이웃인 도로타 자그렙스카(Dorota Zagrebska)라는 여성에게서 수도관을 끌어올 수 있도록 영리한 거래를 꾸몄습니다.
여기저기 조금씩 손보고 함께 관리하기로 하면 모두가 만족하는 거죠. 어쨌든 이 건에 관한 도시 기록부의 기록을 통해 우리는 상수도가 지하로 운영되었고, 취수 시설은 집 뒤편에 위치했으며, 그곳에는 생명수를 저장하기 위한 특별한 저수조가 보통 설치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미국 시애틀의 초기 하수관 역시 나무로 만들어졌습니다… (사진: Karen Neoh, CC BY-SA 2.0)
또한 집에 상수도를 갖춘 사람은 이웃들이 자신의 배관에 연결하는 것을 허락할 수 있었고, 필요하다면 기존 파이프를 연장해 다른 집들에 물을 공급할 수도 있었습니다.
악취의 세계!
자, 이제 집에 상수도가 들어왔으니 흐르는 물을 마음껏 즐길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다 쓴 후 남은 것들은 처리해야겠죠. 크라쿠프에 하수도가 정비되기 전에는 여러 가지 방식으로 처리되었습니다. 아마도 가장 널리 쓰인 방법은 (공중화장실에 가고 싶지 않은 사람도 많았기에) 오물과 배설물을 홈통을 통해 밖으로 흘려보내는 것이었습니다.
집 밖으로 버려진 더러운 것들이 길바닥에 그대로 떨어지거나 집 바로 옆 구덩이와 도랑에 쌓이던 때도 있었습니다. 썩어가는 쓰레기, 배설물, 죽은 쥐의 악취를 상상해 보세요. 여기에 불법으로 운영되던 도축장의 역겨운 냄새, 맥주 양조장의 냄새, 그리고 도시의 각종 매연까지 더한다면, 중세와 근대의 크라쿠프가 어떤 냄새를 풍기던지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거리 골목에 흐르는 게 전부 오물이라니? 이것이 중세의 일상이었습니다… (사진: Hugo Clément, CC BY-ND 2.0)
이제 "출발!"을 외치며 지표면 아래로 내려가 볼 차례입니다. 사실 그리 오래되지 않은 2010년 9월, 현대적인 관광 코스로 탈바꿈한 크라쿠프 시장 광장 지하가 화려하게 문을 열었습니다.
우리에게는 화려한 행사나 언론 보도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바로 그곳에서 옛 도시 상수도의 잘 보존된 유구를 직접 볼 수 있다는 점입니다. 이제 '흥미로운' 탐사 임무를 준비해 스타니스와프 톰코비치가 전하는 정보를 과거의 유물과 직접 비교해 보는 일만 남았습니다…
출처:
- Stanisław Tomkowicz, 『17세기 전반 크라쿠프의 주택과 아파트』, 리비우(Lwów), 192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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