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 바르샤바 전투의 대승 이후, 폴란드에는 무엇이든 가능해 보였습니다. 핀스크, 슬로님, 바라노비치가 차례로 폴란드군의 손에 들어왔습니다. 그러나 공세는 곧 멈추었고, 볼셰비키와의 협상은 빈약한 성과만 남겼습니다. 안제이 노바크(Andrzej Nowak) 교수는 모스크바에서 발견한 문서들이 이 미스터리의 답을 마침내 밝혀준다고 주장합니다.
1920년 9월 21일, 폴란드-소련 강화 회담이 리가에서 시작되었습니다. 한 달도 지나지 않아 휴전이 체결되었고, 이로써 볼셰비키는 '백군' 장군 표트르 랑겔을 진압하는 데 온 힘을 쏟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러시아 내전은 종식되었고, 적군은 곧 소련으로 개편될 소비에트 러시아에 대한 완전한 권력을 장악했습니다.
1921년 3월 18일, 폴란드는 볼셰비키와 강화 조약에 서명했습니다. 소련 측 국경에는 민스크와 폴란드가 이전까지 권리를 주장해 온 벨라루스의 광대한 영토가 포함되었습니다. 지금까지의 지배적 견해는 국민민주당(엔데차)이 협상을 이런 식으로 마무리 지었다는 것이었습니다. 리가로 파견된 폴란드 강화 대표단을 엔데차 인사들이 주도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안제이 노바크 교수는 최근 저서에서 벨라루스에 대한 신비로운 '양보'에 대해 전혀 다른 설명을 제시합니다. 그가 발견한 문서는 유제프 피우수츠키(Józef Piłsudski)가 이 결정의 배후에 있었을 가능성을 시사합니다.

▲ 1919년 파리 강화 회의에서 로만 드모프스키가 제시한 폴란드 국경안 (그림: Halibutt & Mix321, CC BY-SA 3.0)
음모론이 사실로 확인된 것일까?
노바크 교수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위험할 정도로 음모론에 가까운 영역에 들어서고 있습니다. 그러나 때로는 역사가가 그러한 영역에서 연구에 쓸 광석을 찾아냅니다. 그것은 병든 상상력이 아니라 정치적 현실의 단편을 드러내는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광석입니다."
이번 사례에서 결정적인 실마리는 베를린 주재 소련 대표 빅토르 코프(Wiktor Kopp)가 외무인민위원 게오르기 치체린에게 보낸 편지였습니다. 1920년 9월 28일자 메시지에서 이 외교관은 폴란드 사회당(PPS) 활동가 리샤르드 쿠니츠키와 가진 회담을 상관에게 보고했습니다. 쿠니츠키는 피우수츠키의 최측근인 부총리 이그나치 다신스키(Ignacy Daszyński)의 지시에 따라 움직인 것으로 전해집니다.
쿠니츠키는 코프에게 다신스키와의 직접 회담을 제안했으며, 그 자리에서 강화 조건을 논의해 협정 체결을 앞당기려 했습니다. 이는 곧 리가의 공식 대표단의 등 뒤에서 진행되는 비밀 작업이라는 뜻이었습니다. 폴란드 측은 즉시 소련의 조건, 즉 러시아 내전에 개입하지 않고 우크라이나의 독립 요구를 지원하지 않겠다는 조건에 동의했습니다.
코프가 치체린(나아가 레닌)에게 거짓 보고를 했다고 보기 어렵듯이, 쿠니츠키가 독단적으로 움직였을 가능성도 낮습니다. 다신스키가 국가원수와 상의 없이 그런 중대한 구상을 내놓았을 수 있을까요? 노바크 교수는 이 질문에 명확한 답을 주지 않습니다. 그는 배후 협상이 실제로 계속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고 인정하면서도, 흥미로운 단서 하나를 지적합니다. 이전에는 거의 매일 보고를 올리던 코프가 11월 4일이 되어서야 다음 보고를 보냈다는 사실입니다. 그가 그동안 비밀 협상에 깊이 관여하고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요?

▲ 본 기사는 안제이 노바크의 저서 『서방의 첫 번째 배신 — 1920년, 잊혀진 유화정책』(Wydawnictwo Literackie, 2015)에 기반합니다.
백군과 적군, 누가 더 위험한가?
그렇다면 다신스키, 그리고 무엇보다 그 뒤에 있는 원수는 어떤 목적을 추구했던 걸까요? 이 문제에 대해 크라쿠프의 역사학자는 옝제이 기에르티히(Jędrzej Giertych)에게 발언권을 넘깁니다. 기에르티히는 유제프 막키에비치에게 보낸 서간에서 이렇게 적었습니다. "피우수츠키는 연방 프로그램을 잃고 '동부 영토의 폴란드 편입' 노선의 본질과 타협한 뒤, 의회 정치인들을 이용해 그 같은 노선을 스스로 실추시키고 제한하고자 했습니다."
이는 피우수츠키가 정적을 실추시키기 위해 벨라루스를 공산주의자들에게 넘겨주는 데 동의했다는 것, 즉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두 번째 동기는 볼셰비키가 랑겔과 싸우는 것을 용이하게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피우수츠키의 개인적 경험과 '백색 러시아가 붉은 러시아보다 실제로 더 위험하다'는 확신은 원수로 하여금 폴란드의 공세를 중단하게 만들었습니다. 그것이 자국에 더 이롭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하지만 과연 그의 판단이 옳았을까요?
출처
Andrzej Nowak, 『Pierwsza zdrada Zachodu. 1920 – zapomniana appeasement』(서방의 첫 번째 배신 — 1920년, 잊혀진 유화정책), Wydawnictwo Literackie, 크라쿠프,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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