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이야기

불상 대신 마오쩌둥? 1600년 된 막고굴에 새기려던 사회주의의 꿈

무장한 당, 당은 길을 인도하며, 당은 결코 당신을 배신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 당의 수뇌에는 국부이자 모든 중국인의 벗인 경애하는 마오 주석이 계신다. 값나가는 고대 예술로 가득한 이곳에서 이를 어떻게 기념할까? 물론 웅장하게!

중국 간쑤성 민사산(鳴沙山) 기슭에는 세계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독특한 암굴 사원군이 자리하고 있다. 바로 '막고굴(莫高窟)', 즉 둔황 석굴이다. 서기 4세기경 시작된 이 공사는 오랜 세월에 걸쳐 총 492개의 동굴을 탄생시켰고, 당대의 예술가들은 그 내부를 기이하고 아름다운 벽화로 가득 채웠다. 이곳에서는 불상과 고문서 등 귀중한 유물들도 발견되었다. 이 동굴들은 현지 사람들에게 사원 역할을 했다. 여기까지가 배경 설명이다. 그런데 대체 이것이 당과 마오 주석과 무슨 상관일까? 사실 아주 큰 상관이 있다.

1966년, 당나라 시대 비석에 새겨진 연대를 기준으로 첫 번째 동굴이 조성된 지 1600주년을 맞이했다. 이곳에서 활동하던 연구소는 세계문화유산의 한 축을 이루는 곳의 '생일'을 기념하기 위해 가장 성대한 행사를 준비하고자 했다. 당 지도부, 저명한 학자들, 그리고 막고굴 예술 속에 얽혀 있는 여러 종교의 대표들이 참석을 예고했다. 그리고 행사를 더욱 격조 있게 만들기 위해, 동굴에 새로운… 사회주의적 차원을 부여하기로 결정한다.

이 기념 행사를 계기로 '유일하게 옳은 당'의 지지자들은 벽화가 그려져 있지 않은 동굴 하나를 개조하기로 했다. 혁명 예술가들은 사회주의 시대의 위대함—아니, 다소 의심스러운 영광의 시대를 기념하는 작업을 맡았다. 과연 실제로는 어떻게 진행되었을까?

불상 대신 마오쩌둥? 1600년 된 막고굴에 새기려던 사회주의의 꿈

"전통적으로 불상이 안치되던 자리에는 새로 조각된 마오 주석 동상이 세워질 예정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역시 전통적인 버전이 좋다!

불교 미술의 사회주의적 꿈?

막고굴의 개별 동굴들은 직사각형 또는 정방형 평면 위에 풍성하게 장식된 천장을 얹은 구조였다. 중앙에는 불상이 안치되고 그 주위로 작은 조각들이 둘러섰으며, 벽면은 먼저 점토와 일종의 시멘트로 덮은 뒤 다양한 종교 벽화로 장식되었다. 그렇다면 이 전형적인 사원 구조를 당의 필요에 맞게 어떻게 바꿀 수 있었을까? 불상 자리에는 갓 조각한 마오쩌둥 주석 동상을 세우고, 벽에는 노동하는 인민들의 모습을 그리면 되는 것이다.

『조국을 찾아서』의 저자 가오얼타이(高爾泰)는 이 프로젝트의 구체적인 계획을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전통적으로 불상이 안치되던 자리에는 새로 조성한 마오 주석 동상이 세워졌고, 동상 뒤편 서쪽 벽에는 '험준한 절벽과 거센 물살 사이에서의 우리의 승리한 진군'이라는 제목의 중국공산당 역사가 그려질 예정이었다. 남쪽 벽에는 '승리하는 인민의 전쟁 만세'라는 제목 아래 항일전쟁과 해방전쟁의 역사를 담으려 했다. 북쪽 벽에는 신중국의 성과, 즉 '신성한 땅에 사는 6억 인민은 옛 성현만큼이나 위대하다'는 내용을 전시하고자 했다. 천장에는 '부용꽃이 만발하고 아침 햇살에 빛나는 땅'이라는 제목의 공산주의 낙원의 황홀한 풍경이 펼쳐질 예정이었다."
불상 대신 마오쩌둥? 1600년 된 막고굴에 새기려던 사회주의의 꿈

이 글은 가오얼타이의 『조국을 찾아서』(Czarne 출판사, 보워비에츠, 2012)를 바탕으로 작성되었다.

결의안이 통과되면서 프로젝트 준비는 '울창한 잎사귀 사이에 붉은 꽃을 심는다'는 구호 아래 시작되었다. 가오는 (어쩌면 반어적으로?) 이 작업이 영광스러운 정치 임무라고 기록했다. 창작 활동을 통해 당의 역사를 연구하고 그 이념에 대한 이해를 깊이 하는 것은 우리의 사상을 개조하기에 좋은 기회라는 것이었다.

모든 것이 완벽하게 진행될 뻔했다. 단 하나의 사소한 문제가 있었을 뿐이다. 권력 정점에서 정치의 방향타가 살짝 옆으로 틀어졌고, 예술을 포함한 모든 이념이 그 뒤를 따랐다. 한마디로, 막고굴의 대계획은 순식간에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 되어버렸다. 당내에서는 이 프로젝트가 곧 '인민의 손에 든 붉은 깃발에 맞서 붉은 깃발을 흔드는 행위', 즉 반역 행위로 규정되었다.

사업은 중단되었고, 발기인과 실행자들은 정치적 박해에 직면했다. 하룻밤 사이에 그들은 사회주의 미술의 선구자에서 소위 '우파 분자'로 전락했고, 당시 '올바른' 당 이념에 열성적인 이들에게 구타와 굴욕을 당했다. 그리고 분명 아름답게 될 뻔했는데 말이다…

출처

가오얼타이, 『조국을 찾아서: 중국 노동수용소의 기억』, 율리타 그로데크 옮김, Czarne, 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