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이야기

옛 폴란드에서 교회에 가지 않으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옛 폴란드에서 교회에 가지 않으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오늘날 폴란드에서도 가톨릭교회는 주일 미사 참석률 저조라는 고민에 시달리고 있다. 그러나 겉보기와 달리 이 문제는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다. 단지 중세와 근대 초기의 성직자들은 이 문제에 훨씬 더 강경하게 대응했을 뿐이다. 시대가 시대였던 만큼, 방법도 방법이었던 것이다.

고해성사와 성탄 목가로 잡아낸 '결석생'

기본적인 통제 수단은 오늘날에도 상당 부분 남아 있어 별로 놀랍지 않다. 과거에는 보통 1년에 한 번 고해성사를 보았는데, 이때 사제는 참회자에게 의무 미사와 예배에 얼마나 자주 참석했는지, 몇 번이나 빠졌는지를 철저하게 캐물었다.

또한 성탄절 목가(본당 방문) 기간에는 신자들에게 지난 1년간 들은 설교의 내용을 직접 물어 확인하기도 했다. 여기까지는 오늘날과 비슷하지만, 옛 폴란드에서 '미사 의무'는 훨씬 엄격하게 여겨졌다. 의무라면 위반 시 반드시 처벌받아야 했고, 그 처벌은 가차 없이 무거웠다.

옛 폴란드에서 교회에 가지 않으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아마 많은 농민들은 교회 대신 이런 곳에서 일요일을 보내고 싶어 했겠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오웰적 통제 시스템, '데시엥트니크'

교회 소유 마을과 도시의 주민들은 가장 열악한 처지에 놓였다. 그곳에서는 선택의 자유 따위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모두가 성실하게 새벽 미사에 참석하도록 만들기 위해, 문자 그대로 '오웰적'인 통제 시스템이 만들어졌다.

『중세 폴란드의 미사 의무』의 저자 이자벨라 스키에르스카(Izabela Skierska)는 크라쿠프 성직회가 1600년과 1604년에 파비아니체(Pabianice)와 즈구프(Rzgów) 영지에 도입한 규정을 예로 든다. 규정에 따르면 모든 마을 주민과 시민은 일요일과 축일에 미사에 참석하고 설교를 들어야 했다. 이 규칙은 거리마다, 시장 광장마다, 시골 곳곳에 배치된 특별한 감독관 '데시엥트니크(dziesiętnik, 열 가구 단위 담당자)'가 집행했다. 이들은 교회에 가지 않은 사람의 이름을 적어 명단을 지역 관청에 넘겼고, 적발된 사람마다 1그로슈의 벌금이 부과되었다.

옛 폴란드에서 교회에 가지 않으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누구나 이런 풍경 속에서 시간을 보내고 싶어 하지는 않았다...

벌금은 밀랍 1파운드에서 10그로슈까지

스키에르스카에 따르면 비슷한 제도가 마워폴스카 지방의 시비우치체(Świlcza)와 볼리치카(Woliczka) 마을, 그리고 크라쿠프 주교들의 영지에서도 운영되었다. 후자에서는 감독관의 명칭이 조금 달랐지만 맡은 일은 같았다. 그곳에서 미사를 빼먹으면 벌금으로 밀랍 1파운드를 내야 했다. 벌금 총액은 대개 1~10그로슈 수준이었으며, 이는 14세기 말 바르미아(Warmia) 교구의 교령집에서도 확인된다.

이 글은 주로 이자벨라 스키에르스카의 『중세 폴란드의 미사 의무』(폴란드 과학원 역사연구소, 2003)를 바탕으로 작성되었다.

교회 소속이 아니어도 예외는 없었다

또 다른 역사가 토마시 비슬리치(Tomasz Wiślicz, 『땀으로 얻는 구원—농민의 종교성』)는 교회 소속이 전혀 아닌 지역과 마을에서도 유사한 사례를 발견했다. 17세기 말 웽코르스키(Łękorski) 성주 관할 지역에서는 오르가니스트가 미사 출석을 확인하고 순순히 따르지 않는 '양들'에게 10그로슈를 걷었다. 같은 세기 중반에는 칼리시(Kalisz) 인근 마을에서 배심원들이 미사 집행에 관여했다.

흥미롭게도 종교에 비교적 자유로운 태도를 취하던 귀족들조차 자기 농민들을 교회로 내몰았다. 스키에르스카는 칼뱅파였던 고를리체(Gorlice)의 여성 영주가, 신하들이 자기 교회에 가길 원하지 않으면 매주 가톨릭 교회에 다니도록 강요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굴복하지 않는 자에게는 채찍이

그렇다면 끝까지 버틴 사람은 어떻게 되었을까? 교회에 갈 생각도 없고 벌금을 낼 생각도 없는 사람이라면? 세속 당국은 이런 경우를 엄중히 처벌하겠다고 경고했고, 실제로 그 말을 실행에 옮겼다. 토마시 비슬리치는 성탄 미사 결석에 대해 채찍질형에 처해진 사례들을 소개한다. 적어도 교회가 가까이 있고 본당 신부가 동향을 빈틈없이 살피던 곳에서는 미사 참석률이 기록을 경신한 것도 당연한 일이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