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이야기

무솔리니가 그린 로마의 지도: 파시즘이 꿈꾼 '새로운 로마 제국'

2014년 5월 24일부터 6월 2일까지는 '로만 위크(Romans Week)', 즉 로마의 역사와 유산, 고고학 전반을 조명하는 특별 기획 주간이었다. 케닐링크(Kennislink)는 이 기간 동안 로마의 풍요로운 유산뿐 아니라 그 화려함 이면에 숨겨진 어두운 면도 함께 다룬다. 그 어두운 면은 베니토 무솔리니(1883~1945)의 파시스트 정권 아래에서 본격적으로 형성되었다.

현대 로마 곳곳에는 고대 로마를 향한 파시즘의 참조가 넘쳐난다. 막센티우스 바실리카(Basilica di Massenzio) 벽면에 부착된 거대한 지도들도 그 대표적인 예다. 많은 관광객이 콜로세움으로 향하는 길에 이 지도들을 그저 평범한 안내판 정도로 여기고 스쳐 지나간다. 그러나 실제로 이것들은 무솔리니와 그의 파시스트 정권이 품었던 야망과 포부를 드러내는 중요한 상징물이다. 대체 왜 무솔리니는 고대 로마에 그토록 매료되었던 것일까? 그 답을 찾으려면 훨씬 먼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18세기 말, 계몽주의 이상에 고취된 혁명의 물결이 이탈리아에도 일었다. 이탈리아 혁명가들은 낡은 로마 공화정의 부활을 시도했다. 비록 그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지만, 로마 고대 문명은 근대의 정치적 이념을 위해 매우 직접적인 방식으로 동원되었다. 이것이 바로 로마니타(Romanità), 즉 '로마주의'의 탄생이다. 로마 공화정을 구체적인 정치 이상으로 삼았던 지성 운동이었다. 19세기 이탈리아 통일 이후에도 로마니타는 정치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쳤다. 이탈리아 정치인들은 식민지 확장을 정당화할 때 로마 공화정의 팽창주의를 자주 인용했다.

무솔리니와 로마니타

로마니타가 정치에 동원된 것은 무솔리니 이전부터였다. 그러나 20세기 초에 들어서면서 로마니타 사상에는 변화가 찾아왔다. 더 이상 로마 공화정이 아니라 전제적인 로마 제국이 중심에 자리 잡은 것이다. 1922년 10월 무솔리니가 집권하자 로마니타는 그의 정치·문화 프로그램의 핵심 개념이 되었다. 로마가 공화정에서 제정으로 넘어갔듯이, 무솔리니 역시 자신의 파시즘으로 안정된 정치와 새로운 정복을 이루어 내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무솔리니는 이탈리아를 영광의 시대로 이끌 새로운 황제 아우구스투스로 자신을 내세웠다. 그의 정권은 로물루스와 레무스(로마 건국 신화의 주인공)의 신화, 로마 군인, 개선문과 기둥 등 고대 로마를 연상시키는 상징들을 광범위하게 활용했다.

로마의 과거와의 연결은 대규모 사업에서도 뚜렷하게 드러났다. 1938년 열린 모스트라 아우구스테아 델라 로마니타(Mostra Augustea della Romanità) 전시회가 대표적이다. 이 전시는 아우구스투스 황제 탄생 2000주년과 무솔리니의 최근 에티오피아 정복을 기념하여 개최되었다. 로마 양식의 웅장한 기념물들도 세워졌는데, 로마 EUR 지구의 건축물들이 그 예이다. 백미는 빌라 델임페로(Via dell'Impero) 도로였다. 오늘날 임페리알리 대로(Via dei Fori Imperiali)로 알려진 이 길은 이제 로마 관광 코스의 필수 경로가 되었다.

이 도로는 1932년, 파시스트 정권 수립 10주년을 기념해 건설되었다. 콜로세움, 로마 포룸, 여러 황제들의 포룸 등 고대의 위대한 기념물들을 하나로 잇는 통로였다. 또한 무솔리니가 새로 제정한 각종 기념일 행사의 중심 무대이기도 했다. 10월 28일의 '로마 진군' 기념행사와 4월 21일의 로마 건국 기념일이 그것이다. 바로 후자의 기념일이던 1934년, 무솔리니는 성대한 행사와 함께 네 개의 거대한 지도를 공개했다.

네 개의 지도, 그리고 숨겨진 다섯 번째 지도

이 지도들은 로마를 중심으로 한 고대의 네 시기를 보여준다. 기원전 8세기 로마 건국부터 서기 117년 트라야누스 황제 시절 제국의 '전성기'까지다. 지도에는 정복되어 '문명화된' 영토를 나타내는 흰색과, 아직 정복되지 않은 '야만인의' 영토를 나타내는 검은색이 선명하게 대비되어 있다.

색채와 대리석의 사용에 상징적 가치가 담겨 있을 뿐 아니라, 지도에 새겨진 비문과 로마 독수리 역시 과거와 현재를 동시에 가리킨다. 로마 독수리는 고대 로마에서 처음에는 로마 군단이, 나중에는 황제가 사용한 상징으로, 힘을 상징하며 유피테르 신을 연상시켰다. 무솔리니 시대에는 새로운 파시스트 제국의 정복과 파시즘 전체의 권력을 상징하는 기호로 활용되었다.

그러나 이 지도들은 다섯 번째 지도까지 더해져야 비로소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 무솔리니는 1936년 10월 28일, 기존 지도보다 더 큰 지도 한 장을 추가했다. 이탈리아, 중동, 아프리카를 담은 이 지도에는 '제국의 건설(Fondazione dell'impero)'이라는 제목이 붙었다. 그 아래에는 무솔리니가 서명하고 이탈리아 국왕을 에티오피아의 황제로 선포한 1936년 법령의 일부가 새겨져 있었다. 이 지도는 무솔리니의 아프리카 정복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따라서 이 지도들은 단순히 과거를 회고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현재를 드러내며 나아가 추가적인 식민지 팽창 가능성을 주장하는 선언이기도 했다. 무솔리니는 연설에서 이렇게 말했다. '로마는 세계 모든 민족 앞에 기적처럼 나타나야 한다. 아우구스투스의 첫 제국 시절처럼 위대하고, 질서 있으며, 강력한 모습으로.' (다섯 번째 지도는 이미 벽에서 걷어냈다.)

이 지도들은 파시즘 정치의 중대한 전환점을 보여준다. 1936년경 파시스트들은 안정되고 견고한 제국을 건설했다고 선언했고, 새로운 목표는 나머지 세계의 정복이었다. 1930년대 중반부터 이탈리아, 아니 정확히는 '새로운' 로마 제국의 팽창에 정치가 점점 더 집중되었다.

다행히 그 야망은 실현되지 않았다. 1943년 7월 파시스트 정권이 붕괴한 후, 다섯 번째 지도는 붉은 페인트로 훼손되었고 마침내 1945년 철거되어 지하 창고로 사라졌다. 1998년에야 이 지도는 발견되어 복원되었고, 로마 문명 박물관(Museo della Civiltà Romana)에 걸렸지만 대중에게 공개되지 않는 장소에 보관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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