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즈텍인들은 대규모 인신공양과 수천 명의 제물에서 심장을 적출하는 의식으로 악명 높은 문명이었다. 그러나 한 가지 면에서는 21세기 우리와 놀랍도록 닮았다. 바로 좋은 술을 즐겼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용설란 술의 매력과 역사상 가장 극단적인 금주법은 어떻게 공존할 수 있었을까?
아즈텍인들은 북미 원주민들과 달리 술을 만드는 기술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들이 즐기던 술은 옥틀리(octli), 즉 풀케(pulque)라 불리는 술로, 테킬라와 마찬가지로 용설란으로 만들었다.
성숙한 용설란의 중심부를 잘라내 즙이 고이는 공간을 만들고, 그 즙을 박(호리병박)에 모았다. 이후 큰 항아리에 부어 발효시켰는데, 이렇게 얻은 술의 도수는 맥주나 약한 와인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옥틀리에는 알코올 외에도 철, 인, 비타민 C 등 귀중한 미네랄과 비타민이 풍부하게 들어 있다. 그러나 앞서 언급했듯이 평범한 아즈텍인은 이 술의 맛을 마음껏 즐길 수 없었다. 그 이유는 옥틀리를 마신 사람들에게 아즈텍의 신들이 내린 몇 가지 무거운 경고 때문이었다.

보다시피 용설란은 상당히 큰 식물이다(사진: Palmarito Tochapán, CC BY-SA 3.0).
아즈텍 영웅들의 음주 스캔들
첫 번째 사례는 톨란(Tollan)의 통치자이자 사제였던 토플친 케찰코아틀이다. 테스카틀리포카가 마법과 거짓으로 왕을 무너뜨리려 나타나기 전까지는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테스카틀리포카의 속임수 중 하나는, 케찰코아틀이 심한 고통에 시달리고 있을 때 노인의 모습으로 궁전에 나타난 것이었다. 교활한 사기꾼은 그에게 옥틀리를 약으로 건넸다.
통치자는 이 술을 너무 좋아하게 되었고, 여동생이자 여사제이기도 한 그녀를 불러들였다. 두 사람은 만취 상태에서 종교적 의무를 다하지 못했고, 결국 신들의 분노를 샀다. 일부 연구자들은 이 이야기가 단순한 의무 소홀이 아니라 만취한 두 사람 사이의 근친상간을 암시한다고 주장한다.
음주로 화를 자초한 또 다른 인물은 멕시코만 연안에 살았던 우아스텍족의 전설적인 통치자다. 옥틀리를 발명하자마자 너무 과음한 나머지 함께 식사하던 사람들 앞에서 추태를 드러냈다. 그는 부끄러움에 견디지 못해 부족을 이끌고 해안까지 도망쳐야 했다. 우아스텍족은 실수에서 교훈을 얻지 못한 듯싶었고, 아즈텍인들은 그들을 극도로 방탕하고 술버릇 나쁜 민족으로 여겼다.

보르지아 코덱스에 그려진 테스카틀리포카(퍼블릭 도메인).
금지된 잔, 공개된 장소에서만이 아니었다
이처럼 옥틀리는 위험한 술로 간주되었다. 특히 오메 토치틀리(Ome Tochtli), 즉 '두 마리 토끼'라는 이름의 날에 태어난 사람은 알코올 중독에 빠질 위험이 크다고 여겨졌다. 그런 사람이 취하는 것은 누구에게도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그들은 말했다. 저것이 바로 그의 토끼다. 그것이 그의 태어난 날의 표시였으니, 이렇게 죄의 신들이 그에게 드러나는 것이다.”
음주를 경계하는 수많은 강연과 기록에서 술은 불행과 몰락의 원인으로 묘사되었다. 옥틀리의 소비는 명절이나 종교적 목적에 한정되었으며, 그런 자리에서는 환각 식물을 첨가한 '술'이 종종 만들어졌다. 이를 통해 '영혼의 여정'과 '신과의 접촉'이 가능해졌다고 한다.
절제 없이 마시면 무거운 대가가 따랐다. 사제나 고위 관리가 공개된 장소에서 취하면 사형에 처해졌다. 목격자가 많지 않다면 직위를 잃는 것으로 그칠 수도 있었다.

노인들은 옥틀리를 아무 제약 없이 마실 수 있었다(멘도사 코덱스 삽화, 퍼블릭 도메인).
평민에게는 조금 더 관대한 규정이 적용되었다. 첫 번째 만취는 공개적으로 머리를 깎고 집을 헐리는 형벌로 처벌되었고, 두 번째 적발 때에야 비로소 사형이 선고되었다. 처형은 시장 광장에서 돌에 맞혀 집행되었다. 반면 남녀 노인은 금지령에서 예외였는데, 술에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는 조건은 70세 이상이며 손주가 있는 경우였다.
흥미로운 점은, 기록들은 옥틀리 음주에 엄격한 제한이 있었다고 말하는 동시에 알코올 중독자와 그 폐해에 대한 생생한 묘사를 다수 남기고 있다는 것이다. 질 낮은 술에 대한 보고도 등장한다. 스페인 출신 연대기 작가 베르나르디노 데 사아군은 아즈텍의 폭음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그는 [풀케]에 대해 아무런 거부감도 느끼지 않는다. 실제로 흙 덩어리 같거나 모기가 드나드는 역하고 더러운 찌꺼기만 남았을 때에도 불쾌해하거나 메스꺼워하지 않는다. 그저 그것을 삼키고, 빨아들이고, 들이켠다. 마치 입술을 핥는 개처럼.
언제나 그렇듯이, 법과 도덕적 당위는 자신에게, 삶은 삶 자신에게 맡겨지는 법이다.

현대 멕시코의 풀케리아(pulquería)(사진: DavidGomezChiu, CC BY-SA 3.0).
전통은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
오늘날 옥틀리는 풀케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져 있으며, 멕시코에서 여전히 사랑받는 술이다. 이 술을 전문으로 판매하는 풀케리아(pulquerías)라는 특별한 술집도 존재한다. 안타깝게도 풀케는 변질이 빨라 운송이 어렵고, 다른 주류에 밀려 소비량이 점차 줄어들고 있으며, 수출 역시 수지가 맞지 않는다. 콜럼버스 이전의 멕시코를 한 모금으로 맛볼 수 있는 기회가 사라져 간다는 점이 아쉬울 따름이다.
참고 문헌
- Frances Frei Berdan, Patricia Rieff Anawalt, The Essential Codex Mendoza,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Berkeley 1997.
- Frances Frei Berdan, The Aztecs of Central Mexico. An Imperial Society, Wadsworth, Belmont, California 2005.
- Henry B. Nicholson, Topiltzin Quetzalcoatl: The Once and Future Lord of the Toltecs, University Press of Colorado, Boulder 2001.
- Justyna Olko, Aztecs, series Mythologies of the world, New Media Concept, Warsaw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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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ichael E. Smith, The Aztecs, Blackwell, Malden – Oxford 19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