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펠탑과 검은 베레모만큼이나 프랑스를 대표하는 상징, 바로 바게트다. 프랑스인들은 그 유래를 자랑스럽게 되풀이한다. 나폴레옹의 제빵사들이 군인들을 위해 만들었다는 것 — 길고 가느다란 빵이 바지 주머니에 딱 들어맞는다는 이유에서였다고 한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전설일 뿐이다. 진실은 자존심 강한 파리 시민들의 입맛에는 맞지 않을지도 모른다.
공식적인 이야기에는 결정적인 모순이 있다. 군용 식량이라면 오랫동안 신선함을 유지해야 마땅한데, 제대로 구운 바게트는 몇 시간만 지나도 돌처럼 딱딱하게 굳어버린다.
게다가 어떤 사료에도 긴 빵을 주머니에 넣고 다닌 대육군 병사에 대한 기록은 단 한 건도 없다. 애초에 병사들이 지금까지 그래왔듯 배낭이 아니라 주머니에 빵을 넣고 다녔겠는가? 그렇다면 프랑스의 미식 상징은 대체 어디서 온 것일까?
실제 역사는 이렇다
공은 특수 화덕을 발명한 오스트리아인들에게 돌아간다. 205°C에 달하는 열기를 내는 이 화덕에서 발생한 뜨거운 김은 빵 껍질이 더 오랫동안 팽창하도록 만들었고, 내부의 높은 공기 함량 덕분에 속살은 폭신하고 가벼워졌다.
'오스트리아 롤'이라 불리던 이 별미는 1815년 파리에 전해졌다. 당시 나폴레옹은 이미 세인트헬레나 섬으로 유배된 뒤였고, 합스부르크 군인들이 프랑스 수도의 거리를 순찰하고 있었다. 그리고 파리 거리에서 긴 빵을 처음 먹은 것도 바로 이 오스트리아인들이었다.
바삭한 이 별미가 긴 전쟁 행군에 어울리는 주식으로는 보이지 않는다(사진: Nicola, CC BY 2.0).
빵과 제1차 세계대전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프랑스 전역이 하루아침에 오스트리아식 빵을 찾기 시작한 것은 아니다. 샹젤리제 거리에서 아침마다 바삭한 바게트를 즐기는 전통은 의외로 젊은 문화로, 1920년대에 비로소 자리 잡았다. 아마도 제1차 세계대전의 발발이 없었다면 긴 빵은 결코 대중적인 인기를 얻지 못했을 것이다.
전쟁으로 인한 막대한 인명 피해는 수많은 제빵 조합에도 큰 타격을 주었고, 그 결과 숙련도가 떨어지는 사람들이 제빵장에 고용되기 시작했다. 가장 간단하고 빠르게 만들 수 있는 긴 빵이 프랑스 거리를 휩쓸었는데, 여기에는 프랑스 정부의 우연한 후원도 한몫했다.
정부의 결정 — 모든 식탁 위에 바게트를!
1920년, 제빵소가 아침 4시 이전에는 영업을 개시할 수 없다는 법령이 반포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아침 식사 시간까지 갓 구운 상태로 준비될 수 있는 빵은 바게트가 유일했다.
프랑스의 바삭한 상징은 사실 이 도시에서 탄생했다. 사진: 빈 쇤브룬 궁전(Thomas Wolf, CC BY-SA 3.0 de).
프랑스의 부랑주리(boulangerie)들은 재빨리 이 매력적인 빵에서 황금맥을 발견했다. 손님들이 관심을 두는 것은 오직 갓 구운 지 1시간이 채 되지 않은 신선하고 바삭한 '바게트 드 트라디시옹(baguette de tradition)'뿐이었다.
진짜 신선한 빵을 원하는 소비자는 '묵은' 빵을 내려놓고 새 바게트를 사러 다시 빵집으로 향한다. 폭신하고 바삭하며 황금빛 껍질을 지닌 빵 말이다. 바로 빈에서 발명된 그대로의 모습이다...
참고 문헌
- Stephen Clarke, 『프랑스인을 화나게 한 1000년』, 바르샤바, 2010
- 마들렌 투생-사마(Maguelonne Toussaint-Samat), 『음식의 자연사·문화사』, 바르샤바, 2015
- Armand Husson, 『Consommations de Paris』, 파리, 18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