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이야기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가짜 전염병을 일으킨 폴란드 의사

전쟁 중 생명을 구하는 것은 가치 있는 목표입니다. 특히 자신뿐 아니라 타인의 목숨까지 구한다면 더욱 그렇습니다. 첸스토호바 출신의 젊은 의사 유게니우시 와조프스키(Eugeniusz Łazowski)는 침략자를 막아낼 놀랍도록 효과적인 방법을 찾아냈습니다.

유게니우시 와조프스키가 학업을 마무리하던 시기에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했습니다. 그는 국경수비군 대대에 배속되어 위생 열차로 지정되어 부크 강변의 브레스트로 파견되었습니다. 그는 먼저 독일군과 싸웠고, 이후에는 소련군과도 싸웠습니다. 포로로 잡혔지만 시베리아행 수송열차에서 탈출하는 데 성공했으며, 이후 독일군에게 다시 체포되어 포로수용소에 수감되었지만 거기서도 탈출했습니다. 와조프스키는 그만큼 뛰어난 탈출 능력을 지닌 인물이었습니다. 1939년 11월 그는 약혼녀 마리아 톨윈스카와 결혼한 뒤 스타워바 볼라 근처 로즈바두프로 떠나 전쟁이 끝나기를 기다리려 했습니다. 하지만 젊은 의사에게 이곳은 전쟁의 격랑이 시작되는 장소에 불과했습니다.

독일 점령군이 두려워한 발진티푸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군인들은 총알보다 발진티푸스를 더 두려워했습니다. 폴란드에서 비교적 흔했던 이 질병은 자연 면역이 없는 서유럽 출신 병사들을 무차별적으로 공격했습니다. 리케치아 프로와제키(Rickettsia prowazekii) 세균에 의해 발생하는 발진티푸스는 이를 매개체로 전파되며, 위생 상태가 나쁠수록 더 쉽게 번집니다. 전쟁은 이런 세균에게는 천국과 같았고, 감염된 부대는 아무런 전력도 되지 못했습니다.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가짜 전염병을 일으킨 폴란드 의사

발진티푸스는 점령군을 공포에 떨게 했습니다

당시에는 1916년에 개발된 바일-펠릭스 검사(Weil-Felix test)가 발진티푸스 감염 여부를 확인하는 데 사용되었습니다. 이 검사는 리케치아 프로와제키 세균이 무해한 프로테우스 불가리스(Proteus vulgaris) 세균, 즉 OX19 항원에서 얻은 항원과 반응한다는 원리를 이용합니다. 이 방법은 더 정밀한 검사법이 개발된 지금도 경제적인 이유로 필요한 곳에서는 여전히 활용되고 있습니다.

와조프스키의 동료였던 스타니스와프 마툴레비치(Stanisław Matulewicz) 박사는 전쟁 발발 전부터 바일-펠릭스 검사법을 쉽게 속일 수 있다는 사실을 눈치챘습니다. 프로테우스 불가리스 세균이 환자의 혈류에 들어가면 검사 결과는 양성으로 나오지만, 환자는 실제로 건강한 상태를 유지합니다. 와조프스키는 이 사실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여우 사냥꾼 방식의 저항

와조프스키는 마툴레비치와 함께 스타워바 볼라 주변 주민들에게 프로테우스 불가리스 '백신'을 접종하기 시작했습니다. 속임수를 믿음직스럽게 만들기 위해 질병의 어떤 증상이라도 보이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삼았습니다. 들킬 것을 두려워한 그는 환자들 본인에게조차 자신의 의도를 알리지 않았습니다! 또한 점령군의 과도한 관심을 피하기 위해 신중한 의사들은 접종받은 일부 사람들을 다른 지역 의사들에게 분산 배정했습니다.

예상대로 바일-펠릭스 검사 결과는 리케치아 프로와제키 감염에 특징적인 반응을 보였습니다. 와조프스키는 검체를 독일 관할 실험실로 보내 "전염병"의 규모를 직접 확인하게 만들었습니다. 덕분에 주변 12개 마을의 약 8,000명이 격리 조치되어 강제 노동 수용소로 끌려가는 참사를 피할 수 있었습니다.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가짜 전염병을 일으킨 폴란드 의사

유게니우시 와조프스키는 수많은 사람의 생명을 구했습니다

하지만 와조프스키의 활동은 영원히 지속될 수 없었습니다. 결국 1943년 스타워바 볼라 지역의 사망률이 평소 수준 그대로 유지되자 독일군은 속임수를 의심하기 시작했습니다. 현지 게슈타포 책임자가 관련 당국에 보고했고, 조사위원회와 군대가 마을로 향했습니다.

독일군을 위한 완벽한 연극

와조프스키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가장 병약해 보이는 노환자들을 한곳에 모았습니다. 동시에 로즈바두프에서는 화려한 파티가 준비되었습니다. 조사위원회가 도착하자 의사는 독일 전문가들에게 환자들을 보여주겠다고 초대하면서, 환자들이 몹시 더럽고 이가 많다고 경고했습니다. 위원회의 고위 인사들은 감염이 두려워 직접 검사를 진행하지 않기로 하고 대신 연회에 합류했습니다. 결국 더 어리고 경험이 적은 의사들만 "환자"들을 살펴보았습니다.

독일군은 서둘러 검체를 채취하고 "고통받는" 환자들을 확인한 뒤 급히 자리를 떠났습니다. 그들의 검사 역시 발진티푸스 세균 감염 양성 반응을 보였습니다. 로즈바두프는 더 이상 괴롭힘을 받지 않았고, 격리 조치는 계속 유지되었습니다.

선량한 의사의 또 다른 저항

안타깝게도 와조프스키의 가짜 전염병 계획은 너무 늦었습니다. 마툴레비치와 함께 검사를 속이는 데 성공하기 전에 나치는 이미 유대인 주민들을 수용소로 추방한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와조프스키가 유대인 문제에 무관심했다는 의미는 결코 아닙니다. 그는 할 수 있는 한 게토 주민들을 도왔습니다.

그는 유대인을 도운 죄로 사형을 피하면서도 비밀리에 환자를 만날 수 있는 기발한 계획을 고안했습니다. 의사와 "약속을 잡기" 위해 선정된 유대인 대표들은 게토와 인접한 자신의 집 울타리에 흰 천 조각을 걸어야 했습니다. 이런 표식을 발견한 와조프스키는 밤에 몰래 외출하여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찾아가 진료했습니다. 곧 그의 서비스에 대한 수요가 엄청나다는 사실이 드러났고, 울타리 앞에는 진료를 기다리는 줄이 늘어섰습니다.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가짜 전염병을 일으킨 폴란드 의사

와조프스키는 회고록 『개인의 전쟁』에 자신의 이야기를 남겼습니다

와조프스키의 재치는 또 한번 빛을 발했습니다. 독일군은 그에게 의료 기구와 의약품에 대한 엄격한 기록을 요구했는데, 그중 상당 부분이 유대인 치료에 사용될 예정이었습니다. 다행히도 의사는 근처 기차역에 정차하는 열차의 승객들을 치료하러 자주 불려갔습니다. 바로 이런 기회에 와조프스키는 실제보다 훨씬 많은 의료 물품 사용량을 기록하여 장부의 균형을 맞추었습니다.

재능 있는 이 의사는 1958년 미국으로 이민하여 시카고에 정착했습니다. 그곳에서 소아과 의사이자 일리노이 대학교 강사로 활동했습니다. 그는 1970년 출판된 일기에서 전쟁 중의 속임수에 대해 처음 언급했고, 이후 1990년 저서 『개인의 전쟁(Private War)』에서 그 이야기를 상세히 담아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