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이야기

중세 사람들은 정말 지옥을 믿었을까? 심지어 교황마저 의심했다

악마가 죄인을 불태우는 곳, 중세의 지옥

뿔 달린 악마, 산 채로 죄인을 태우는 살아 있는 불꽃, 수천 가지 비인간적인 고문, 유황의 악취…… 중세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가 바로 지옥입니다. 그런데 만약 그 '암흑시대'에조차 지옥의 존재를 부정한 신학자들과 성인, 심지어 한 명의 교황이 있었다고 말한다면 어떨까요?

우리는 광막하고 끝없이 긴 거대한 계곡 위를 지나고 있었다. 계곡의 왼쪽 기슭은 무서운 화염으로 타오르고 있었고, 반대편 기슭에서는 마찬가지로 혹독한 우박과 눈보라가 사방으로 흩날렸다. 두 기슭은 사나운 폭풍에 이리저리 휩쓸리는 인간의 영혼들로 가득했다. 불행한 작은 영혼들이 더 이상 열기를 견디지 못하고 서리의 심연으로 몸을 던져도 아무런 안도를 얻지 못한 채, 다시 꺼지지 않는 불길 속으로 되돌아갔다.

이것은 중세 시대의 수많은 지옥 묘사 중 하나입니다. 제시된 장면들의 극단적인 잔혹함에 놀랄 필요는 없습니다. 지옥의 고문에 대한 환상은 당연히 중세인의 상상력에 깊이 각인되어 있어야 했습니다. 전쟁, 살인, 강간, 억압, 기근, 질병, 자연재해가 일상처럼 펼쳐지던 삶을 살아낸 사람들을 진짜로 겁주기 위해서는 평범한 이야기로는 부족했으니까요.

우리는 이러한 지옥의 모습을 천 년 전쯤의 그림들과 연결 지어 생각합니다. 그러나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위 이미지는 1180년경 란츠베르크의 헤라다(Herrada of Landsberg)가 집필한 필사본 『기쁨의 정원(Hortus deliciarum)』에 나오는 중세 삽화입니다.

당시 교회의 가르침에서 지옥은 극도로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신자들을 규율하고 복종으로 이끌며 죄를 짓지 못하게 막았습니다. 무시무시한 악마들이 가하는 비인간적인 고통의 전망만큼 신자들의 올바른 행동을 이끄는 것은 없었습니다. 게다가 그것이 영원히 지속된다니 말입니다…

지옥은 영원하지 않다!

그러나 중세의 설교자들은 지옥 선전으로 양떼들을 너무 심하게 겁주다가 역효과를 낼 때도 있었습니다. 어떤 선전이든 머릿속에 지나치게 밀어붙이면 방어 반응을 일으키기 마련입니다.

이러한 '공포 목회'에 대한 반응으로, 교회 내부—더 넓게는 기독교 전반에서—때때로 등장한 것이 바로 '지옥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견해였습니다. 심지어 기독교 학자들조차 불타는 심연 속 영원한 고통이라는 그림을 완화할 빈틈을 찾아 나섰습니다.

서기 3세기에는 알렉산드리아의 한 무리의 신학자들이 지옥이 영원하지 않다고 주장했습니다. 영원한 지옥은 하나님의 선함과 정의에 어긋난다는 것이었습니다. 자비로운 하나님이 자신이 창조한 피조물들을 끝없는 고문에 내던질 리 없다는 논리였습니다.

한편 영지주의자(노스티시스트)들은 지옥이 저 세상 어딘가 먼 곳이 아니라 바로 이 땅 위에 있다고 선포했습니다. 인간은 필멸성, 자연적 한계, 실존적 두려움에 시달리며 현세에서 지옥을 경험한다는 것입니다. 지상의 지옥이란 바로 우리 각자이며, 우리의 삶, 곧 우리 자신입니다. 그리고 이 지옥은 선의 최종적이고 결정적인 승리와 함께 끝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지옥은 우리 안에 있다

지옥을 다른 방식으로 '길들인' 인물은 초대 기독교 신학자이자 교부, 성인인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Clement of Alexandria)입니다. 그는 지옥 묘사에 등장하는 불길은 사실 죄인을 괴롭히는 양심의 가책, 즉 지은 죄에 대한 후회와 슬픔, 그리고 타인의 행복을 지켜보면서 느끼는 고통이라고 보았습니다.

또한 그는 이러한 고문이 영원하지 않다고 주장했습니다. 하나님은 복수를 위해 벌하는 것이 아니라 죄인에게 새롭게 개선될 기회를 주기 위해 벌하기 때문입니다. 이 해석은 오히려 연옥의 묘사와 더 닮았으며, 연예라는 개념은 11세기에 이르러서야 완전히 발전하게 됩니다.

이 사상은 클레멘스의 제자인 오리게네스(Origen)—역시 교부로 꼽히는 철학자이자 신학자—에게로 이어졌습니다. 오리게네스 역시 지옥의 불은 양심의 가책에 대한 은유이며, 죄인은 죽음 이후 내면의 눈물로 인해 고통받는다고 재차 강조했습니다. 영혼은 하나님이 창조한 질서와 조화로부터 스스로 벗어나 있기 때문에 아파한다는 것입니다.

다만 오리게네스는 이러한 지옥 해석은 교양 있는 지식인들에게만 국한되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소박한 대중에게는 육체적·정신적 고문, 타오르는 화염, 끝없는 고문이라는 전통적인 내세의 형상이 더 적합하다고 본 것입니다.

지옥은 악마만을 위한 곳

1250년경에는 이탈리아의 카타리파(Cathars)가 지옥의 존재를 부정했다고 주장하는 익명의 문헌이 등장했습니다. 세계가 루시펠에 의해 창조되었다면, 그가 어째서 하필 자신과 자신의 추종자들을 위한 고문처를 만들겠는가라는 논리였습니다.

프랑스 카타리파 마을 몽타이유(Montaillou) 출신의 아르놀드 젤리(Arnold Gelis)라는 인물은 지옥은 분명 존재하지만 오직 악마들의 집일 뿐이라고 설교했습니다. 인간의 영혼은 죽음 후 한동안 땅 위를 배회하다가 '휴식의 장소'로 들어가며, 최후의 심판 이후 구원을 받게 되고 멸망받는 자는 아예 없을 것이라는 주장이었습니다. 일부 카타리파는 아마도 지옥이 특정한 장소가 아니라 육체에 의해 영혼이 오염된 결과, 즉 현세 생활의 상태 그 자체라고 믿었을 것입니다.

클레르보의 성 베르나르도(St. Bernard of Clairvaux, 1090~1153) 역시 신학자이자 교회박사로서, 한 저작에서 지옥은 현세에 존재하며 특정 장소가 아니라 하나의 상태라고 주장했습니다. 현세의 고통 속에서 죄의 정화가 이루어지므로, 이를 통해 다가올 지옥으로부터 구원받을 수 있다는 견해였습니다.

개혁가이자 수정주의자였던 교황

그런데 이것으로 끝이 아닙니다. 14세기에는 교황 본인이 고통받는 죄인들로 가득한 지옥의 존재를 의심했습니다! 바로 요한 22세(John XXII)입니다. 그는 교양 있고 세련되며 야심 찬 인물이었고, 늙었음에도 불구하고 활기가 넘쳤습니다. 오늘날까지 남아 있는 여러 개혁과 관습을 도입했으며, 뛰어난 조직력 덕분에 교회의 재정 상황을 크게 개선하고 세속 권력으로부터 독립시켰습니다.

그렇다면 그의 지옥관은 어땠을까요? 요한 22세는 교회박사들의 가르침—즉 의로운 자의 영혼은 죽음 직후 하나님 앞에 나아가 경건한 삶의 보상으로 그분과 교제할 수 있고, 죄인은 지옥에 떨어져 마땅한 고문을 받는다는 교리—에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교황은 이것이 신앙의 진리라기보다는 말도 안 되는 망상에 가깝다고 믿은 것입니다.

지옥은 없다!

성경은 분명히 세상 끝날에 영혼들이 육체와 다시 결합하여, 오직 그 상태로 인류가 최후의 심판에 직면하게 된다고 말했습니다. 요한 22세에게 이것은 모순이었습니다. 변호사 출신이었던 교황은 이렇게 추론했습니다. 전지하신 하나님이 모든 죽은 자의 사안을 심판대 앞에서 두 번씩이나 다룰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하나님은 자신이 이미 내린 판결을 번복할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무오류하신 존재이며, 재심토록 하는 것은 잘못 가능성을 시사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신성모독처럼 들립니다.

이 논리에 따르면 교회박사들이 틀렸던 것입니다. 죽음 후 의로운 자의 영혼은 하나님의 임재로 가지 않고, 죄인의 영혼은 지옥으로 가지 않습니다. 최후의 심판 이전에는 천국도 지옥도 존재하지 않는다! 하나님과의 교제는 역사의 종말에 이루어집니다.

그렇다면 마지막 날까지 영혼들은 어디에 있는 걸까요? 성부(敎皇)는 성 요한의 묵시록의 기록을 근거로 들며, 영혼들이 하나님의 제단 앞(sub altare Dei)에서 역사의 종말을 기다린다고 주장했습니다.

최후의 심판 전에는 천국도 지옥도 없으며, 영혼들은 하나님의 제단에서 심판을 기다린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교황의 추론은 내적으로 일관성이 있었음에도 교회 안에서 깊은 반발에 부딪혔습니다.

교황, 자신의 견해를 철회하다

그러나 이 교황의 가르침은 큰 논란을 일으켰고, 그를 부정교설의 혐의로 고발하는 빌미가 되었습니다. 요한 22세는 죽기 직전, 추기경단 앞에서 이러한 견해를 철회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주받은 왕들』 시리즈의 작가 모리스 드뤼옹(Maurice Druon)은 그의 소설에서 엘리야 탈레이랑 드 페리고르 추기경의 입을 빌려 이렇게 말하게 합니다.

내 은인이자 나의 첫 교황이었던 요한 22세는 지옥을 믿지 않았고, 오히려 지옥은 텅 비어 있다고 선언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너무 멀리 나아갔습니다. 사람들이 지옥의 불길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어떻게 그들로 하여금 자선 헌금을 바치고 죄의 속죄를 하도록 강요할 수 있겠습니까? 지옥이 없다면 교회는 문을 닫아야 할 것입니다. 그것은 탁월한 노인의 환상이었습니다. 그는 임종의 침대에서 자신의 주장을 철회해야만 했습니다. 그래야 했던 것입니다.

1336년, 요한 22세의 후계자인 베네딕토 12세(Benedict XII)는 칙령 『Benedictus Deus』를 반포하며, 죄인의 영혼이 죽음 직후 지옥으로 간다는 것을 명확히 천명했습니다. 이로써 지옥에 대한 교황의 이단적 실험은 공식적으로 막을 내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