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 교정기, 턱살 제거기, 전기 안면 마스크까지. 과거의 미용 도구들은 마치 공포 영화 속 소품처럼 생겼습니다.
여성의 미(美)에 대한 이상은 수백 년 동안 끊임없이 변화해 왔지만, 한 가지는 늘 그대로였습니다. 바로 '완벽한 모습'을 향한 열망입니다. 여성들은 피부를 밝게 빛내고, 볼에 붉은기를 더하고, 머리카락 색을 바꾸기 위해 자연이 주는 다양한 혜택을 아낌없이 활용했습니다. 완벽한 외모를 향한 인간의 욕망은 발명가들의 부지런한 연구를 불러일으켰고, 그 결과물은 때때로 기괴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할머니 세대가 머리를 말리거나 곱슬하게 만들고, 주름을 없애려고 사용했던 일부 기기들을 보면 고문 기구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이런 '기적의 과학'만 있다면 코가 납작하더라도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출처: 퍼블릭 도메인)
가장 섬뜩한 발명품, 맥스 팩터의 '뷰티 캘리브레이터'
대량생산 컬러 화장품 분야의 선구자인 맥스 팩터(Max Factor)의 작업은 '가장 무서운 발명품'이라는 타이틀을 받아도 손색이 없습니다. 메이크업 아티스트였던 그는 1930년대 초, 얼굴의 윤곽과 비율을 분석하기 위한 '뷰티 캘리브레이터(beauty calibrator)'를 만들어냈는데, 그 모양은 못이 촘촘히 박힌 금속 우리와 흡사했습니다.

전기의 기적과 신비가 아름다움을 위해 동원되던 시절. 증조모와 고조 할머니 세대는 이 장치에 매료되어 있었습니다. 막시밀리안 파크토로비치(Maksymilian Faktorowicz)와 그의 뷰티 캘리브레이터.
여성의 머리에 이 장치를 씌우면 메이크업 담당자가 얼굴 구조를 파악하고, 그에 맞는 화장품을 선택할 수 있었습니다. 할리우드 황금기 스타들과 함께 작업했던 예술가 팩터는 휘어진 코나 지나치게 낮은 이마 같은 미용상의 결점이라면 무엇이든 화장으로 보완할 수 있음을 입증했습니다. 그가 만든 캘리브레이터, 즉 수많은 나사로 지지되는 금속 구조물은 무척 유연한 도구였고, 얼굴형에 따라 무려 325가지 조절이 가능했습니다.
머리를 말리는 것도 목숨을 걸어야 했다?
매력적인 외모란 얼굴의 완벽한 비율과 매끄럽고 윤기 있는 피부만으로 완성되지 않습니다. 유행하는 헤어스타일도 필수죠. 그리고 전쟁 이전에는 곱슬머리가 유행했기 때문에 '파마(permanent wave)'는 필수 코스였습니다. 직모를 섹시한 웨이브로 바꾸기 위해, 머리카락을 클램프가 달린 뜨거운 롤러에 감고, 케이블로 거대한 드라이기와 연결하는 특이한 기계를 사용해 시술을 진행했습니다.
손님은 몇 시간씩 미용실 의자에 앉아 거대한 드라이기 아래에서, 머리 위로 어지럽게 얽힌 케이블 더미를 이고 있어야 했습니다. 안타깝게도 피부 화상이나 머리카락이 타버리는 사고도 종종 있었다고 합니다.

아니요, 이 숙녀는 다이너마이트 묶음을 쓰고 있는 게 아닙니다. 파마를 하는 중입니다.(출처: Bundesarchiv, Bild 102-08896, CC-BY-SA 3.0)
머리를 말리는 것 같은 평범한 일조차 심장을 덜컥거리게 만들 수 있었습니다. 알렉산드라 자프루트코-야니차(Aleksandra Zaprutko-Janicka)는 저서 『방부제 없는 아름다움』에서 이렇게 적습니다. "드라이기는 이미 1890년에 발명되었다. 하지만 오늘날 거의 모든 욕실에서 찾아볼 수 있는 기기와는 매우 달랐다. 현대의 것에 비하면 거대한 기계로, 앉아서 머리를 특별히 뚫린 구멍에 넣어야 했다."
1930년대 증조모들은 이미 크기를 줄인, 지금의 드라이기와 비슷한 형태의 모델을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전쟁 이전까지는 기기의 금속 외피 때문에 머리를 말리다가 감전될 위험도 있었습니다.
미용실 방문이 등산 같았던 시절
일부 미용 시술은 어지럼증을 유발하기도 했습니다. 문자 그대로요.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의도된 효과였을지도 모릅니다. 1940년대 캘리포니아의 D.M. 애커먼(D.M. Ackerman) 여사는 '글래머 보닛(Glamor Bonnet)'이라 부르는 특별한 헬멧을 만들어냈습니다. 잠수부의 마스크처럼 생긴 이 도구를 여성의 머리에 쓴 뒤 기압을 낮추는 방식이었습니다.
이 치료법의 창시자는 기압을 낮추면 혈액순환이 촉진되어 피부에 좋다고 주장했습니다. 시술 중에는 헬멧 앞면에 설치된 특수 투명 창 덕분에 잡지를 읽으며 시간을 보낼 수도 있었죠. 하지만 글래머 보닛의 사용이 최고봉 산악 지대를 걷는 것과 비슷한 신체 자극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독서하기에 적합한 분위기는 아니었을 겁니다. 그래도 그 효과는 분명 '숨이 멎을 듯'했을 겁니다!
아름다움을 위한 '과학'
매끈한 피부를 위해 호흡 곤란을 유발하는 시술도 마다하지 않던 용감한 여성들이라면, 주름을 전기로 없애는 일도 망설이지 않았을 것입니다. 1930년대 초 빈의 의사 요제프 브루크(Joseph Brueck)는 내부에 특수 히터를 넣은 전기 안면 마스크를 발명했습니다. 시술 중 발생하는 열이 주름을 줄이고 처진 피부에 탄력을 되찾아 준다는 것이었습니다.

1923년의 파마 기계.
시술 중 환자는 마스크에 뚫린 입구멍에 연결된 튜브를 통해 호흡할 수 있었습니다. 전기 세션 후 주름이 실제로 사라졌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볼에는 붉은 기가 올랐을 것입니다.
메스 없이 곧게 펴는 코
오늘날 코 성형은 가장 많이 시행되는 성형수술 중 하나입니다. 하지만 옛날에는 이 콤플렉스를 훨씬 덜 침습적인 방법으로 해결하려 했습니다. 전쟁 이전에는 코를 곧게 펴주는 도구가 유행했습니다.
1924년 『포퓰러 메커닉스(Popular Mechanics)』 잡지에서는 "빠르고, 통증 없이, 확실하게 작동한다"는 트라도스(Trados) 코 확장기 25호 모델 광고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전 세계 8만 7천 명의 만족한 고객이 그 효능을 보증한다고 했죠. 이 기기는 코에 씌우고 끈으로 얼굴에 고정하는 금속 집게 형태였습니다.
턱살은 식이요법과 운동으로만 없앨 수 있을까요? 전쟁 이전에는 더 간단한 방법이 있다고 믿어졌습니다. 바로 끈을 당기는 것이죠. 그 끈은 '더블 친 리듀서(double chin reducer)', 즉 턱살 제거기라고 불리는 기기의 일부였습니다. 이 도구는 1890년 유진 맥(Eugene Mack) 교수가 고안했습니다.
얼굴 윤곽을 감싸는 특수 구조로 되어 있어, 끈을 조작하면 턱 마사지 기능이 작동하도록 설계되었습니다. 이 시술은 턱을 줄이고 볼에 탄력을 주며, 피부가 처지는 것을 예방해 준다고 여겨졌습니다.
참고 자료
- Basten Fred E., Max Factor, the man who gave a woman a new face, Letters 2013
- Wisconsin Historical Society, 1930s Permanent Wave Machine, 2007년 9월 20일
- "Popular Science", 1941
- "Popular Mechanics", 1924
- Rance Caroline, What the Apothecary Ordered. Questionable Cures Through Ages, Old House Books 2015
- Zaprutko-Janicka Aleksandra, Beauty without preservatives, Horizon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