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이야기

왕을 죽인 의사들: 잉글랜드 찰스 2세의 비참한 최후

몸이 좋지 않은 기분으로 눈을 뜬 찰스 2세 국왕은 자신이 곧 죽게 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습니다. 그것도 무려 궁정 의사들의 손에 의해서 말입니다. 중세뿐 아니라 그 이후에도 의사를 맹신해서는 안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잉글랜드·스코틀랜드·아일랜드의 국왕 찰스 2세의 비극적인 최후는 1685년 2월 2일 아침 시작되었습니다. 이날 아침 국왕은 병기어린 상태로 눈을 떴습니다. 현대의 역사학자와 의학자들은 그의 증상이 뇌졸중과 일치한다고 보지만, 보다 면밀한 분석에서는 요독증을 동반한 신장 질환이었다는 견해도 제시됩니다.

진실이 어느 쪽이든, 나흘간의 고초 끝에 찾아온 국왕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백성들을 경악시켰고, 온갖 음모론이 난무하게 만들었습니다. 찰스는 독살당했는가? 물론 일부 사람들은 궁정 의사들의 처치 탓으로 돌렸는데… 아마 그들이 옳았을 것입니다!

위험천만했던 르네상스

앙브루아즈 파레가 외과술을 발전시키고, 윌리엄 하비가 혈액순환을 규명하고, 베살리우스가 마침내 완전한 해부학 도감을 편찬하는 등 계몽주의 시대의 획기적인 발견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환자들은 여전히 의사를 두려워할 이유가 있었습니다. 대부분의 경우 여전히 중세식 방법이 사용되었고, 그 방법들은 간단히 말해 대개 고통스러울 뿐 아니라 전혀 효과가 없었습니다. 동시에 자신이 사용하는 술기를 확신하지 못하는 의사는 진지하게 받아들여지지 않았기에, 모두가 제멋대로 병자를 괴롭혔습니다.

왕을 죽인 의사들: 잉글랜드 찰스 2세의 비참한 최후

찰스 2세의 임종 과정에 대한 기록은 지금 읽어도 소름이 돋습니다.

극작가 몰리에르는 당시 의술의 실태에 대해 이렇게 적었습니다.

"의사들은 라틴어를 구사하고 질병의 옛 그리스 이름을 모두 알고 있다. 하지만 정작 치료하는 방법은 모른다." 당시 연극에서는 농담 삼아 "아픈 사람이 몸이 편하다고 주장할 수는 없다", "걸어 다니는 사람은 죽은 게 아니다"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광범위한 불신과 전혀 만족스럽지 못한 의사들의 성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는 병을 고쳐야 했고, 실질적인 과학적 결론을 내리려는 시도는 대부분 미리 과거로 회귀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호기심 많은 왕

찰스 2세는 납을 금으로 바꾸겠다는 생각에 사로잡힌 연금술사들의 시대에 살았습니다. 국왕 역시 이 문제에 관심을 가졌고(아마도 정치적 이유 때문이었을 것), 1669년 궁정 의사에게 "약품을 개발하고 조제하는" 일을 맡긴 뒤 취미는 더욱 깊어졌습니다. 그는 화학 작업을 너무 좋아해서 곧 작은 개인 실험실을 차렸습니다. 거의 매일 아침 그곳에서 시간을 보내며 다양한 물질을 활발히 섞고, 가열하고, 증류하고, 냉각했습니다. 한마디로 자신이 실제로 무엇을 하는지 전혀 모른 채 말입니다.

왕을 죽인 의사들: 잉글랜드 찰스 2세의 비참한 최후

찰스 2세 스튜어트는 의학에 관심이 있었지만… 정작 의학에는 문외한이었습니다.

그의 앞뒤 많은 이들처럼 그도 수은에 대한 불운한 관심을 가졌습니다. 또한 선배들처럼 위험한 금속을 열린 용기에서 가열할 때 발생하는 증기에 중독될 수 있었습니다. 그의 죽음은 이미 예정된 것이었던 걸까요? 수은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 중 하나는 신장 손상과 뇌 기능 저하입니다. 이는 어눌한 발화와 경련, 그리고 마침내 국왕 생애 마지막 날의 발작으로 이어졌을 수 있습니다.

찰스의 사인에 대한 또 하나의 근거는 부검에서 확인된 뇌실의 비정상적으로 높은 수분 함량이었습니다.

의사여, 도와주세요

오늘날 찰스를 정확히 무엇이 죽였는지 규명하기는 어렵습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불려온 의사들이 전혀 도움이 되지 못했다는 사실입니다.

첫 증상은 아침 면도 중 발견되었습니다. 면도는 즉시 중단되었고, 국왕에게서 반 리터의 피가 빼내졌습니다. 불행히도 효과가 없자 흡혈컵으로 또 4분의 1리터를 더 뽑았습니다. 유감스럽게도 이번에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이제야 의사들이 진짜 '일'에 나설 때가 된 것이지요…

"폐하께서는 독성 금속인 안티모니를 복용하도록 설득당했다. 폐하께서 구토를 하자 일련의 관장이 시행되었다. 머리카락은 밀리고 두피에는 해로운 기운을 내쫓기 위해 화상을 일으키는 약제가 발랐다."

- 네이선 벨로프스키의 책 『옛날에는 이렇게 치료했다』에서 읽을 수 있는 내용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찰스의 발에는 '떨어져 나가는 기운'을 끌어당기기 위해 각종 자극성 물질에 적신 찜질팩이 붙여졌습니다. 다시 한 번 4분의 1리터가량의 피를 뽑았고, 국왕이 쇠약해지기 시작하자 백설탕으로 만든 과자가 서빙되었습니다. 이것도 소용이 없자 의사들은 달군 쇠막대로 환자의 몸을 찌르기 시작했습니다. 마지막 치료는 "매장되지 않은 남자의 두개골"에서 얻은 분비물 40방울과 인도네시아 염소의 장에서 나온 결석을 부수어 투여하는 것이었습니다. 짐작하시겠지만, 이런 치료 역시 어떤 긍정적 효과도 가져오지 못했습니다.

이 모든 것은 나흘 동안 계속되었고, 그 후 찰스 2세는 세상을 떠났습니다. 숨을 거두기 전에 그는 너무 오래 버텼다고 모두에게 사과했습니다.

참고 문헌

  1. Belofsky, N., How Was Treated Before, i.e. moss fillings and other stories. RM Publishing House, Warsaw, 2014.
  2. Fraser, A., King Charles II. London: Phoenix Press, 2002.
  3. Hutton, R., Charles II: King of England, Scotland, and Ireland. Oxford: Clarendon Press, 19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