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이야기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났다는 사실조차 몰랐던 가족 — 시베리아 타이가에서 40년간 문명과 단절된 채 살아온 리코프 가문의 실화

1978년, 러시아 타이가 심연에서 문명과 완전히 단절된 채 40년 넘게 살아온 한 가족이 발견되었습니다. 원시 부족과 다름없는 조건 속에서 살았던 이들입니다. 오늘날 이 가족의 마지막 생존자인 80세 아가피야만이 남아 있으며, 그녀는 끝내 문명으로 돌아가기를 거부하고 있습니다.

1978년 6월, 아바칸 강 상류에서 철광석 광맥을 조사하던 지질학자들이 헬기로 광활한 타이가 상공을 비행하던 중 산비탈에 텃밭과 통나무집을 발견했습니다. 사람이 살 수 없는 이 불모지에 흔적이 있다니, 그들의 호기심은 커졌고 어느 화창한 날 정체불명의 주민들을 찾아갔습니다. 검게 그을린 오두막에 다가서자, 기운 옷과 바지를 입은 맨발의 노인이 그들을 맞이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났다는 사실조차 몰랐던 가족 — 시베리아 타이가에서 40년간 문명과 단절된 채 살아온 리코프 가문의 실화

리코프 가족은 구교도(스타오브랴디)였습니다. (사진은 예시 이미지)

노인은 그들을 집 안으로 초대했고, 안에는 두 명의 여성이 숨어 있었습니다. 한 명은 "이것이 우리 죄의 벌입니다!"라고 외쳤고, 다른 한 명은 말없이 공포에 질린 얼굴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발견된 것이 소련 당국을 피해 40년 넘게 타이가에 숨어 지낸 구교도 리코프 가문이었습니다.

집단화로부터의 도피

이들의 놀라운 역사는 1930년대 초반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젊은 부부 카르프 리코프와 아쿨리나, 그리고 자녀 사빈과 나탈리야는 대(大)아바칸 강변의 티사 마을에 살고 있었습니다. 이 지역에 집단화가 시작되자, 그들은 평화로운 삶의 끝이 왔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내린 결정은 바로 타이가로 떠나는 것이었습니다. 성수(물이 줄면 일반 물로 희석해 사용), 성상, 기도서, 몇몇 식물의 씨앗 등을 챙겨 떠난 그들은 곧 새로운 환경에 적응했습니다.

그들은 나무 사이에 오두막을 짓고 텃밭을 일궜습니다. 순무, 완두콩, 호밀, 양파, 대마를 재배했고, 그 사이 아가피야와 드미트리가 태어났습니다. 은둔 가족의 식량의 주축은 감자였는데, 지하 창고에 저장해도 금방 상해버렸습니다. 그래서 리코프 가족은 감자를 말리는 법을 익혔습니다. 얇게 저며 더운 날 자작나무 껍질이나 지붕 위에 펼쳐 말렸고, 방 안 가득 자작나무 껍질로 만든 상자에 말린 감자를 보관했습니다.

빈약한 식단은 숲의 선물로 보충했습니다. 자작나무 수액, 잣, 산양파, 쐐기풀, 블루베리, 버섯 등이었습니다. 여름과 가을에는 낚시를 했고, 생선을 날로 먹거나 불에 구워 먹거나 말려 먹었습니다. 운 좋게 엘크나 사슴을 잡으면 진짜 잔치가 열렸습니다. 호밀죽은 명절에나 맛볼 수 있는 별식이었습니다.

어머니 아쿨리나는 아이들에게 글을 가르쳤습니다. 종이 대신 자작나무 껍질을, 잉크 대신 인동덩굴 즙을 사용했습니다. 뾰족한 막대를 즙에 적셔 껍질에 쓰면 연한 파란색 글자가 나타났습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1961년 흉년으로 그녀는 세상을 떠났습니다. 혹독한 노동에 몸이 너무 약해져 있었던 것입니다.

문명과의 접촉

이 고독한 삶의 가장 큰 결핍은 바로 소금이었습니다. "소금 없이 사는 것은 진짜 고문이다"라고 가장인 카르프는 토로했습니다. 지질학자들이 오두막을 찾았을 때 리코프 가족은 빵이나 다른 음식은 받지 않았지만, 소금은 기꺼이 받아 음식에 간을 하는 데 사용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났다는 사실조차 몰랐던 가족 — 시베리아 타이가에서 40년간 문명과 단절된 채 살아온 리코프 가문의 실화

크라스노야르스크 박물관에 전시된 리코프 가족의 물품들

지질학자들은 방문할 때마다 가족을 만났고, 리코프 가족은 점차 그들을 신뢰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구교도들은 레닌, 마르크스, 엥겔스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었고, 대조국전쟁이 소련을 강타했으며 세계가 제2차 세계대전에 휘말렸다는 사실조차 전혀 몰랐습니다. 그들의 모든 지식은 경전에 근거한 것이었기에, 비행기를 보고는 '쇠붙이 새'라고 생각했고, 인공위성을 보고는 '별이 하늘을 걷기 시작했다'고 결론지었습니다.

연구자들은 은둔자들의 집에서 15km 떨어진 자신들의 캠프로 가족을 정기적으로 초대했습니다. 하지만 카르프는 "우리는 그럴 수 없다"며 끝까지 거부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리코프 가족 다섯 명이 캠프로 다가오는 것을 목격한 과학자들의 놀람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흥미롭게도 손님들은 그 긴 길을 맨발로 걸어왔습니다. 리코프 가족과 지질학자들은 즐겁게 이야기를 나눴고, 주인들은 식사를 권했습니다.

하지만 구교도들은 거절했습니다. "우리는 당신들이 먹는 것을 먹을 수 없습니다." 그들은 따로 앉아 저녁을 먹었습니다. 메뉴는 직접 구운 빵과 견과류, 마실 것은 물뿐이었습니다.

아가피야의 고독

1981년 늦가을, 사빈, 드미트리, 아가피야, 나탈리야는 심한 감기에 걸렸고 이것이 폐렴으로 번졌습니다. 지질학자들을 만나면서 감염된 것으로 추정되며, 평생 고립된 채 살아온 탓에 면역체계가 충분히 발달하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아가피야를 제외한) 형제자매들은 약 복용을 거부하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여섯 식구 중 아버지와 딸만이 살아남았습니다. 한편 1982년부터 소련 언론인들이 리코프 가족의 오두막을 찾기 시작하면서, 타이가의 구교도들에 대한 소식은 소련은 물론 전 세계에 퍼졌습니다. 소련 시민들의 반응은 엇갈렸습니다. 어떤 이들은 그들을 기생충으로 여겼고, 또 어떤 이들은 원시적 조건에서 살아남은 능력에 감탄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났다는 사실조차 몰랐던 가족 — 시베리아 타이가에서 40년간 문명과 단절된 채 살아온 리코프 가문의 실화

시베리아에서 태어난 아가피야 리코바 / East News

1988년 2월, 카르프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당시 48세였던 아가피야는 문명으로 돌아가기를 거부했습니다. 친척들을 여러 차례 방문했지만 종교관의 차이로 정을 붙이지 못했고, 한때 함께 살았던 수녀들도 주인의 까다로운 성격 때문에 수녀원으로 돌아갔습니다. 케메로보 주지사 아만 툴레예프는 부하들에게 정기적으로 식량과 의약품을 공급하고 의료 지원을 제공하도록 명령하는 등 아가피야를 도왔습니다.

현재 아가피야는 80세로 여전히 타이가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녀에게 문명의 유혹에서 멀리 떨어진 황야의 삶이야말로 영적으로 가장 올바른 삶이기 때문입니다.

참고 문헌

  1. Песков В., 『타이가의 막다른 길(Таежный тупик)』, 모스크바, 2007.
  2. "Таежный тупик: как семья Лыковых смогла так долго прожить в изоляции", 2020년 11월 21일 확인.
  3. Урушев Д.А., 『러시아 구교도: 전통, 역사, 문화』, 모스크바,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