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이야기

바티칸 성벽이 세워지기 전, 그 자리에는 '피의 여신'을 모시는 고대 신전이 있었다

성 베드로 광장 재건축 작업 중 로마 신전의 유적이 발견되었습니다. 알고 보니 이 신전은 프리기아 여신 마그나 마테르(Magna Mater), 즉 키벨레(Cybele)에게 봉헌된 곳이었습니다. 로마인들은 역사상 가장 중요한 전쟁 중 하나에서 승리하기 위해 이 여신을 자신들의 편으로 끌어들였고, 여신과 함께 그녀를 섬기던 피에 젖은 사제들마저 도시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바티칸 언덕, 이름의 기원

바티칸 언덕은 티베르 강 건너편, 곧 로마의 일곱 언덕 반대편에 위치해 있으며 원래 고대 로마 시의 경계에 속하지 않았습니다. 흥미롭게도 고대 사람들조차 그 이름의 유래에 대해 확신하지 못했습니다. 학자 바론(Varro)은 갓 태어난 아기의 첫 울음소리를 지켜주는 신 바기타누스(Vagitanus)와 연결 지었고, 또 다른 설명은 에트루리아 정착지 '바티카(Vatica)' 혹은 '바티쿰(Vaticum)'에서 비롯되었다고 봅니다.

키케로는 '바티카니 몬테스(Vaticani Montes)'라는 복수형 명칭을 언급했는데, 이는 바티칸 언덕부터 티베르 강까지 이어지는 더 넓은 지역을 가리켰을 가능성을 시사합니다. 수세기 동안 이 일대는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었으며, 고고학적 발굴 조사에 따르면 이곳에는 프리기아눔(Phrygianum), 즉 마그나 마테르 여신의 신전도 존재했던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이 신전은 제국 내 이 여신에게 헌정된 최고의 신전은 아니었습니다(가장 중요한 신전은 팔라티노 언덕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명성과 위상이 워낙 높아 제국의 일부 지역에서는 이를 모방한 신전들이 세워질 정도였습니다. 그렇다면 훗날 바티칸 성벽이 서게 될 자리에서 숭배받았던 '피의 여신'은 과연 누구였을까요?

만물의 어머니, 키벨레

마그나 마테르, 즉 키벨레는 대지·다산·풍요와 야생 자연을 관장하는 프리기아의 여신으로, 만물의 어머니로 여겨졌습니다. 그리스에는 기원전 7~6세기 무렵 그녀의 숭배가 도입되었고, 이내 데메테르(자연에 대한 권능을 부여받는 역할) 및 레아와 결합되어 올림포스 신들의 어머니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축제의 성격 때문에 그녀의 제전은 이내 디오니소스를 기리는 밀교 의식과 융합되었고, 시간이 흐르면서 그녀의 배우자 아티스(Attis)에 대한 숭배와도 결합되어갔습니다. 기원전 5세기경 여신은 이미 표준화된 이미지를 갖추게 되는데, 그리스식 예복을 입고 앉아 있는 모습으로 묘사되었으며 제물 그릇과 팀파눔(작은 북)이 그녀의 상징물이었습니다. 이 시기부터는 사자가 그녀를 수행하게 됩니다.

바티칸 성벽이 세워지기 전, 그 자리에는  피의 여신 을 모시는 고대 신전이 있었다

키벨레는 마법적인 힘을 지닌 존재로 믿어졌습니다. 사람들은 그녀에게 정의와 복수를 구했습니다. 그녀는 재앙과 질병을 내릴 수도 있지만, 그로부터 보호하고 치유할 수도 있는 존재였습니다. 이러한 강력한 이중성 때문에 그녀는 숭배와 두려움, 사랑과 미움을 동시에 받는 여신이 되었습니다.

로마로 '초대된' 대모 여신

로마인들은 상당히 관용적인 종교 정책을 펼쳤습니다. 덕분에 그들은 거대한 제국을 오랫동안 통치할 수 있었습니다. 외래 신들을 로마 판테온에 흡수하는 일은 드문 일이 아니었으며, 그 대표적인 관습이 바로 에보카티오(evocatio), 즉 적진의 신을 자기 편으로 끌어당기는 의식이었습니다. 솔직히 말해 일종의 '뇌물'이었던 셈입니다.

시빌라의 책(Sibylline Books)의 지시에 따른 에보카티오를 통해 대모 여신은 로마 판테온에 받아들여졌으며, 그 숭배는 기원전 204년, 제2차 포에니 전쟁에서 한니발을 물리치는 데 대한 감사의 표시로 공식 도입되었습니다. 그러나 여신을 '매수'한 대가에는 로마인들이 미처 상상도 못한 결과가 뒤따르게 됩니다.

바티칸 성벽이 세워지기 전, 그 자리에는  피의 여신 을 모시는 고대 신전이 있었다

키벨레가 그리스에서 개인적 신앙의 대상에 가까웠던 것과 달리, 로마에서 그녀는 즉시 공공 예배의 중심 요소가 되었습니다. 여신의 검은 돌은 프리기아에서 제국의 수도로 신속히 운반되어 팔라티노 언덕의 신전에 안치되었습니다.

또한 마그나 마테르를 기리는 연례 축제 메갈레시아(Megalesia)가 제정되어 매년 4월 4일부터 10일까지 열렸습니다. 그런데 이 축제는 너무나 특이하고 피로 물든 의식이 많아, 정작 로마 시민들은 축제에 참여하는 것이 금지될 정도였습니다.

여신을 위한 의식과 행렬

축제는 팔라티노 언덕의 신전에서 열렸을 가능성이 높으며, 여신이 지켜보는 가운데 연극 공연이 진행되었다고 전해집니다. 테렌티우스와 플라우투스의 희곡이 상연되었고, 키케로에 따르면 신전 앞에서 경기도 열렸다고 합니다. 다만 신전 주변의 협소한 공간을 고려하면 실제로는 언덕 아래 계곡에서 치러졌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여신이 직접 '참관'할 수 있도록 말입니다.

마그나 마테르 숭배의 핵심 요소 중 하나는 '갈리(Galli)'라 불리는 거세된 사제들의 행렬이었습니다. 그들은 광란의 행진 속에서 로마 거리를 따라 여신상을 가마에 실어 나르며 전진했습니다. 키벨레는 사자가 끄는 전차를 타고 머리에 전쟁의 왕관을 쓴 모습으로 묘사되곤 했습니다.

자학 행위로 온몸이 피에 젖은 그들의 종복들은 북, 뿔피리, 심벌즈 반주에 맞춰 그리스어 찬가를 부르며 행인들에게 시주를 구걸했습니다. 행렬 참가자들은 광기를 상징하는 무기를 들고 다녔고, 잠시 후 무장한 집단이 합류해 모의 전투를 벌이기도 했습니다.

제정 시대에 이르러 마그나 마테르 숭배는 더욱 크게 성장했습니다. 3월의 한 주간도 그녀의 영광을 위해 바쳐졌으며, 그 제전에는 광란의 피바다와 밀교 의식의 요소를 포함해 훨씬 더 많은 의례적 측면이 담겨 있었습니다.

피의 목욕, 타우로볼리움

키벨레 숭배가 발전하면서 등장한 대표 의식이 바로 타우로볼리움(taurobolium), 즉 황소를 제물로 바치는 의식이었습니다. 이 의식은 마그나 마테르와 그녀의 신성한 배우자 아티스를 기리기 위해 거행되었습니다.

바티칸 성벽이 세워지기 전, 그 자리에는  피의 여신 을 모시는 고대 신전이 있었다

사제는 특별히 설치된 구조물 아래로 내려가 구덩이 위에 섰습니다. 그의 바로 위, 투각 제단 위에서 황소가 제물로 바쳐졌고, 그 피가 여신의 종복의 몸 위로 쏟아져 내렸습니다. 이처럼 피로 뒤덮이는 극단적 의식을 통해 정화와 재생이 이루어진다고 믿었던 것입니다.

기독교 시대에 접어들면서 황제들은 이러한 피로 물든 의식들을 금지했습니다. 여신의 신전들도 점차 위상을 잃었고, 새로운 신앙의 성물들로 대체되어 갔습니다. 그러나 성 베드로 광장 인근의 발굴 조사는 이곳에 키벨레 숭배와 관련된 구조물이 실제로 존재했음을 입증해냈습니다. 이곳에서 거행된 타우로볼리움과 관련된 제단과 비문들이 발견된 것입니다.

참고 문헌

  1. B. Bogh, The Phrygian Background of Kybele, "Numen" 54 (2007), pp. 304-339.
  2. M. J. Vermaseren, Cybele and Attis: the Myth and the Cult, London 1977.
  3. G. Showerman, The Great Mother of the Gods, "Bulletin of the University of Wisconsin," No. 43; Philology and Literature Series, 1.3 (1901).
  4. W. Warde Fowler, The Roman Festivals of the period of the Republic. An introduction to the study of the religion of the Romans, Port Washington, N.Y./London 19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