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이야기

할아버지는 31세, 어머니는 나의 여동생? 프랑스 왕 루이 15세의 기이한 가족사

퐁파두르 부인의 연인, 그리고 '최연소 할아버지'

루이 15세는 흔히 퐁파두르 부인과의 화려한 로맨스, 그리고 폴란드 출신 왕비와의 결혼으로 기억됩니다. 하지만 이 프랑스 국왕은 전혀 다른 분야에서도 기록을 세웠습니다. 다른 남성들이 겨우 결혼을 고민하기 시작하는 나이인 31세에, 그는 벌써 할아버지가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게다가 그의 가족사는 지금 읽어도 충격적일 만큼 뒤틀려 있었습니다.

'태양왕'의 후계자였던 루이 15세는 불과 5살에 왕위에 올랐습니다. 당시 그에게는 아버지도 어머니도 없었고, 가장 가까운 왕족인 오를레앙 공작이 섭정으로 임명되었습니다. 만약 어린 루이가 자식 없이 요절한다면 오를레앙 가문이 왕위를 이어받게 되는 처지였습니다. 섭정은 소년왕의 혼사를 소홀히 여기지 않았고, 11살이던 루이를 3살짜리 스페인 인판타(공주)와 약혼시켜 베르사유로 불러들였습니다.

2년 뒤 오를레앙 공작이 사망하자 섭정 자리는 또 다른 왕족인 콩데 공작에게 넘어갔습니다. 그는 전임자보다 왕실 대통(大統)의 계승에 더 큰 관심을 보였습니다. 루이 15세의 건강이 자주 문제가 있었기 때문에, 새 섭정은 즉시 출산이 가능한 성숙한 배필을 찾아야 한다고 판단했습니다.

할아버지는 31세, 어머니는 나의 여동생? 프랑스 왕 루이 15세의 기이한 가족사

12살 루이 15세가 인생의 파트너를 기다리고 있는 모습 (알렉시 시몽 벨 작, 퍼블릭 도메인)

급해진 왕비 물색 끝에, 루이는 망명 생활 중이던 전 폴란드 국왕 스타니스와프 레슈친스키의 딸 마리 레슈친스카와 혼인하게 됩니다. 그녀는 왕보다 7살 위였습니다.

건강하고 검소한 소녀라면 빠르게 프랑스에 후계자를 안겨줄 것이라는 계산이었습니다. 아울러 콩데 공작은 새 왕비가 자신에게 평생 감사할 것이라 기대했습니다. 일석이조였던 셈입니다.

하루빨리 아들을 낳아라

혼례는 1725년 거행되었는데, 마리는 22세, 국왕은 15세였습니다. 오늘날의 기준이라면 미성년자와의 결혼이 아니냐고 지적할 상황입니다. 실제로는 신앙심 깊었던 레슈친스카 쪽이 오히려 어린 왕을 '타락시키는 쪽'이라고 여길 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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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 레슈친스카는 남편에게서 왕이면서 동시에 한낱 어린아이라는 두 얼굴을 발견했을 것입니다... (장마르크 나티에 작, 퍼블릭 도메인)

루이 15세는 매일 저녁 아내의 침소를 찾았고, 함께 보내는 시간도 길었습니다. 물론 체스를 두며 놀았던 것은 아니겠지요. 결혼 1년 만에 마리가 임신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17세의 프랑스 국왕이 아버지가 된 것인데, 무려 쌍둥이였습니다!

아들이 아닌 딸 둘을 낳은 마리는 몹시 슬퍼했지만, 루이 15세는 기쁨을 숨기지 않았습니다. 그는 출산 소식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고 전해집니다. "과녁 정중앙을 두 번이나 명중시켰군!" 그리고 남계 후계자를 얻기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1년 뒤에도 마리 레슈친스카는 또 딸을 낳았습니다. 간절히 기다리던 아들은 1729년에야 태어났습니다. 이때 루이는 19세였고, 벌써 네 명의 자녀를 둔 아버지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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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난 도팽(왕세자)을 품에 안은 자랑스러운 레슈친스카. 그림에는 19살 아버지만 없네요... (알렉시 시몽 벨 작, 퍼블릭 도메인)

얘야, 어서 커다오!

1739년, 프랑스와 스페인의 우호 관계 강화에 따라 양국 왕실 간 혼맹이 결정되었습니다. 루이 15세의 쌍둥이 딸 중 하나인 루이즈 엘리자베트와, 아버지의 옛 약혼녀의 동생인 필리프가 결혼식장에 나란히 섰습니다. 필리프는 19세, 루이즈 엘리자베트는 12세였는데, 당시에는 이미 혼인하기에 충분한 나이로 여겨졌습니다.

파리가 준비한 결혼식 날의 성대한 축전 — 세느강 위의 화려한 조명과 시청에서 열린 대무도회 — 은 가족의 품을 너무 일찍 떠나야 했던 어린 소녀의 비극과는 어울리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아버지와의 눈물겨운 이별 장면은 그야말로 그 순간에 걸맞았습니다.

왕가에서는 이렇게 어린 부부가 본격적인 혼인 생활을 시작하기까지 몇 년을 기다리는 것이 관례이었습니다. 그러나 필리프는 이 불문율을 깬 듯합니다. 결혼 2년 만에 어린 아내가 아기를 출산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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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유대감을 나눈 두 사람 — 21세의 루이즈 엘리자베트와 7세가 된 딸 이자벨 (장마르크 나티에 작, 퍼블릭 도메인)

루이즈 엘리자베트는 1741년 마지막 날, 첫딸 이자벨을 낳았을 때 겨우 14세였습니다.

내 딸이 곧 내 여동생

국왕은 31세에 할아버지가 되었고, 그의 사랑스러운 딸은... 심각한 상처를 입었습니다. 몇 년 뒤 두 명의 자녀를 더 낳았음에도 그녀는 평생 남편을 원망했고, 가능한 모든 순간을 부모 곁에서 보내려 했습니다.

루이즈 엘리자베트는 첫째 아이와 매우 깊은 유대감을 느꼈지만, 그것은 전혀 모녀(母女)로서의 관계가 아니었습니다. 그녀는 이자벨을 한낱 여동생처럼 대했습니다. 인형을 가지고 같이 놀아주고 예뻐해 주곤 했습니다. 두 사람의 유대는 너무 강해서, 1759년 루이즈 엘리자베트가 급사하자 이자벨은 평생을 따라다니는 깊은 우울증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결혼은 행복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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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제프 2세 — 아내를 사랑했으나 이해하지 못한 남편 (퍼블릭 도메인)

루이 15세는 손녀의 혼사에도 신경을 썼습니다. 1760년, 18세가 된 이자벨은 제국 황태자 요제프 폰 합스부르크와 결혼했고, 요제프는 아내에게 푹 빠졌습니다. 하지만 이자벨은 그의 마음을 받아줄 수 없었습니다.

그녀의 이야기는 유명한 황후 시시(지씨)의 운명과 쉽게 겹쳐집니다. 이자벨 역시 아름다운 여인이었지만, 자신을 사랑하면서도 이해하지 못하는 남편 곁에서 불행했습니다. 합스부르크 가문 안에서 진심으로 마음을 주었다면, 그것은 요제프의 여동생 마리아 크리스티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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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자벨의 딸 중 첫째인 마리아 테레지아는 겨우 7살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런데도 신이 난 증조부 루이 15세는 자녀 만들기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퍼블릭 도메인).

죄책감과 우울은 이자벨을 자살 충동까지 몰았고, 그녀는 이를 시누이에게 보내는 편지에 고백했습니다. 하지만 이자벨은 자살하지 않고 두 번째 출산 중 자연사했으며, 남편을 끝없는 슬픔 속에 남겨두었습니다.

슬퍼야 할 가족들, 그러나

아내를 잃은 요제프는 그녀의 여동생과 재혼하고 싶어 했습니다. 이자벨의 '복제품'과만 살아야 행복할 것이라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녀는 이미 다른 사람의 약혼녀였습니다. 어쩔 수 없이 다른 귀족 여성과 혼인했지만 이 결혼도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황제가 된 그는 방침을 완전히 바꿔, 가문 대통 계승의 임무를 동생들에게 맡기고 자신은 황위에 앉은 채 평생 홀아비로 지내기로 했습니다.

반면 프랑스에서 이자벨의 죽음을 똑같이 애도하는 사람을 찾기란 어려웠습니다. 할아버지 루이 15세는 손녀가 죽은 뒤로도 여러 해 동안 젊은 여인들 — 종종 그녀보다 어린 여인들 — 과 밀회를 즐겼습니다.

마리 레슈친스카 역시 손녀의 죽음보다 자기 아버지의 처지를 더 걱정했습니다. 스타니스와프 레슈친스키가 벌써 85세였지만... 새 젊은 아내를 찾고 있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