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 당국이 진행 중인 이스탄불의 화려한 재개발 사업 뒤에는 수많은 인간적 비극이 숨겨져 있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고속도로나 세계 최대 공항 건설의 문제가 아니라 시민들의 마음을 두고 벌이는 싸움이며, 그 대가를 도시 자체가 치르고 있습니다. '새로운 터키'를 향한 열망은 이스탄불 역사의 조용한 증인들을 하나씩 삼켜가고 있습니다. 그 희생자 중에는 1944년부터 이어져 온 전설적인 제과점도 있습니다.
무사 아테쉬(Musa Ateş)는 상당히 내성적인 사람입니다. 감정을 좀처럼 드러내지 않습니다. 하지만 데니즈(Deniz)를 보는 순간, 그의 풍성하고 고결한 후추색과 소금색 눈썹이 기쁨으로 치솟아 이마 전체에 주름을 잡습니다. 무사는 아들을 안듯이 다정하게 데니즈를 끌어안고는 곧바로 이 가게의 시그니처 메뉴를 내옵니다. 걸쭉하고 짙은 초콜릿을 듬뿍 입힌 작은 슈, 프로피테롤(profiterol)입니다. 데니즈는 인치 파스타네시(İnci Pastanesi), 즉 파티스리 인치에서 평생 밥 얻어 먹을 수 있을 것입니다.
"역사를 지운다"
무사는 아직도 비가 내리던 어느 12월의 날에 벌어진 장면들을 생생히 기억합니다. 흥분에 사로잡힌 데니즈는 제과점을 둘러싼 군중을 헤치고 유일하게 가게 안으로 뛰어들었습니다. 그는 경찰관들에게 신분증을 보이라고 요구했고, 보여주기를 거부할 권리가 없다고 외쳤으며, 퇴거 통보는 반드시 한 달 전에 미리 해야 한다는 규정과 조항들을 쏟아냈습니다.
그는 몸을 던져 경찰관들이 장비를 옮기지 못하도록 막아섰습니다. 경찰들이 그를 끌어내려 하자 문 손잡이에 매달리며 저항했고, 군중의 우레 같은 박수 속에서 그들을 놀라게 할 만큼 강한 힘으로 버텨냈습니다. 마른 체구에 섬세한 몸집임에도 불구하고 무려 여섯 명의 경찰관이 함께 그를 경찰차에 태워야 했습니다.
그가 경찰차에 실려 떠날 때, 무사와 인치의 직원들은 은도금 쟁반에 프로피테롤과 각종 디저트를 가득 담아 거리로 나섰습니다. 주인은 충격에 빠진 모습이었습니다. 모여든 군중에게 디저트를 나눠주며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되뇌었습니다. "그들이 역사를 지우고 있어, 역사를 지우고 있어." 쏟아지는 비 속에서 사람들은 손에 든 디저트를 들고 흐느꼈습니다. 맞은편 메피스토 서점에서는 세상에서 가장 슬픈 바이올린 선율과 가슴을 파고드는 보컬이 흘러나왔습니다.
"아름다움과 선의 편에 서서"
인치 파스타네시는 1944년에 설립되었으며, 항상 이스탄불의 심장부인 대표 번화가 이스티클랄(İstiklal) 거리에 위치한 웅장하고 화려하게 장식된 건물, 세르클 도리앙(Cercle d'Orient)에 자리해 왔습니다. 무사는 1960년부터 이곳의 매니저를 맡아왔다고 말합니다. 그는 제과점을 늘 살피며, 저와 이야기할 때도 입구 바로 앞 테이블을 일부러 선택했습니다.
이야기를 마치면 그는 눈을 가늘게 뜨고 위를 올려다보며 다른 질문을 해도 된다는 신호를 보냅니다. 그는 어떤 질문에 답할지 스스로 선택합니다. "가족 이야기요? 그건 굳이 말할 필요가 없지요." 그는 구어체의 혼란을 용납하지 않는 아름답고 고전적인 문법의 터키어로 저를 나무랍니다. 그의 대답에는 불필요한 단어가 하나도 없습니다.

경찰이 인치의 문턱에 나타난 것은 2012년 12월 7일 아침이었습니다.
무사는 인치가 폐쇄되고 이스티클랄 거리에서 골목길 한쪽으로 쫓겨나야 했던 그날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으려 합니다. "저는 아름다움과 선의 편에 서서 삽니다. 잘못됐던 일은 돌아보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모든 직원들을 지켜냈고, 손님들과의 인연을 끊지 않았다는 것이지요." 시대를 품은 신사의 품위로 그렇게 말합니다.
그날의 이야기는 개입을 시도했다가 집행유예 2년형을 선고받은 데니즈 외즈귀르(Deniz Özgür)가 들려줍니다. 이후 그의 재판을 지켜본 증인들은 무사가 데니즈를 너무나 격렬하게 변호해서 판사가 "원하시면 오즈귀르 씨를 즉시 해고하고 대신 당신을 재판하겠소"라고 말할 정도였다고 전합니다.
"문제는 인치 자체만이 아니라 세르클 도리앙 건물 전체였습니다. 우리는 그곳의 에멕(Emek) 영화관을 지키려 했습니다."라고 데니즈는 설명합니다. 에멕은 1924년 처음 관객에게 문을 열었습니다. 극장이나 오페라하우스를 연상시키는 장식으로 꾸며진 그 홀에서 유명한 이스탄불 국제영화제가 시작되었고, 수많은 감독들이 역사 깊은 영화관의 야심 찬 레퍼토리 속에서 성장했습니다.
그래서 세르클 도리앙 리모델링 과정에서 에멕 부지에 쇼핑센터를 짓고 에멕은 그 최상층으로 옮겨가기로 결정되자 영화계는 숨을 죽였습니다. "처음에는 인치에 가서 직원들이 이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아보려 했습니다. 제과점에는 대체로 나이 많고 부유한 세대의 단골들이 있었지요. 우리는 프로피테롤을 살 형편이 못 됐습니다."
"복수극이자 심리적 승리"
디저트로 가득 찬 정교한 진열장 사이 우아한 의자에 앉아 차를 마시던 데니즈는 무사가 베이오글루(Beyoğlu) 지역의 전통과 역사를 이야기하는 것을 들으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때부터 그는 차 마시러 자주 들렀습니다.
경찰이 인치의 문턱에 나타난 것은 2012년 12월 7일 아침이었습니다. "에멕을 지키기 위한 싸움은 그런 곳들의 가치를 아는 사람들을 하나의 공동체로 묶어놓았기 때문에 소식이 순식간에 퍼졌습니다. 사람들이 도시 곳곳에서 몰려들기 시작했고, 저도 할 수 있는 한 빨리 달려갔습니다." 데니즈가 우리가 이야기를 나누는 카페 가장 안쪽 구석의 어스름한 자리에서 말합니다. 그는 휴대폰 화면에 검거 영상을 보여줍니다. 세르클 도리앙 건물의 마지막 가게였던 인치의 퇴거는 결국 막을 수 없었습니다.

"저녁에는 경찰이 다시 와서 우리가 인치를 되찾고 구할 수 있으리라는 환상을 깨뜨렸습니다. 문틀과 가구를 부수고 창문을 깼지요. 복수극이자 심리적 승리였습니다."라고 데니즈는 결론짓습니다. 모든 것은 이스티클랄 거리가 이미 익히 알던 무거운 망치로 이루어졌습니다. "역사적인 장소 하나를 지키기 위해 큰 시위를 조직할 때마다 무사는 항상 우리에게 프로피테롤을 보내줍니다."라고 그는 덧붙입니다.
무사는 확인도 부인도 하지 않습니다. "저는 이스탄불을 정성껏 가꾸지 못해 시들고 죽어버린 장미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 용서해 주소서..." 그는 그저 그렇게 말하고, 10월 오후 햇살 속에서 가지런히 다듬은 머리칼—이미 많이 빠진—은 더욱 잿빛으로 보입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베이오글루는 문화와 영화관, 극장, 레스토랑으로 가득했습니다... 넥타이 없이 이곳에 오는 것은 무례한 일로 여겨졌지요!" 그는 여전히 양복을 입고 다닙니다. 우아함과 품위가 그의 모든 동작에 배어 있지만, 동시에 그 안에는 놀랄 만큼 많은 연약함이 묻어납니다. "이스티클랄에는 통역사와 가이드를 대동한 유럽 관광객들이 오갔습니다. 지금은 그들을 볼 수 없습니다. 유럽인들이 그립습니다! 정말 그립습니다!" 평소와 다른 짜증 섞인 목소리로 그는 되뇌는데, 마치 이렇게 호소하는 것 같습니다. 돌아오세요!
출처
이 글은 아그네슈카 로스트코프스카(Agnieszka Rostkowska)의 책 『유리 눈동자의 전사들: 새로운 터키를 찾아서』(포즈난 출판사 간행)에서 발췌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