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을 소환할 수 있다고 믿어졌고, 일부는 자연의 힘을 지배한다고 여겨졌던 사람들. 무역과 사냥의 전문가이자 타고난 전사였던 그들. 제퍼슨 대통령의 특별 명령을 받고 떠난 탐험가들의 기록에 따르면, 아메리카 원주민 부족들의 세계는 여러 층위에서 놀라움을 안겨준다.
미주리 강과 그 지류의 탐사가 머리웨더 루이스(Meriwether Lewis)와 윌리엄 클라크(William Clark)가 이끈 탐험대의 최우선 목표였다. 그러나 아메리카 대륙 서쪽 끝으로 향한 이 여정은 생각보다 훨씬 다면적이고 예측을 벗어나는 것이었고, 그래서 더욱 매혹적이었다. 1803년 7월 4일자 탐험가의 일기는 방대한 기록의 서막에 불과했다. 버지니아 출신 농장주의 아들 루이스는 이 여정에서 민족지학자로 변신했다. 초보자였지만 특유의 직관과 섬세한 감수성을 지닌 인물이었다. 바로 그의 연대기를 통해 우리는 인디언 부족들의 다양성을 접하게 된다.
타인을 이해하다 — 야생의 아름다움, 이국적인 문명
루이스와 클라크 탐험의 기록을 읽다 보면 그들의 경험이 얼마나 새로운 것이었는지 실감할 수 있다. 미합중국은 독립 국가로서 겨우 27년밖에 되지 않았다. 1776년 7월 4일, 열세 개 식민지의 대표들이 필라델피아 회의에 모여 신생 국가의 탄생을 공식 선포했을 무렵, 미국 지도에는 아직 백지 영역이 많이 남아 있었다. 그러나 아메리카 대륙 자체는 수세기 전부터 이미 사람들이 살아온 땅이었다.
스티븐 E. 앰브로즈(Stephen E. Ambrose)의 방대한 저서 『미국의 경계를 찾아서 — 루이스와 클라크 탐험』에 담긴 역사를 접하면, 본격적인 탐험 준비 과정이 어떠했는지, 대통령 비서관의 역할은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맨단 요새(Fort Mandan)에서의 겨울을 어떻게 견뎌야 했는지를 생생하게 그려볼 수 있다. 군 복무 중 대위까지 올랐던 루이스는 당시 아무도 알지 못했던 인디언 세계의 문화를 생동감 있게 묘사할 수 있었다. 이국적인 문명의 야생미를 종이 위에 그려낸 것이다.

쇼쇼니 — 뱀의 사람들, 평화와 전쟁 사이
루이스와 오늘날 독자들에게 특히 흥미로운 부족은 단연 쇼쇼니(Shoshoni)족이다. 19세기 초까지만 해도 이 공동체의 구성원들은 백인과 접촉한 경험이 가장 드문 부족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원래 오늘날 아이다호와 오리건 주에 해당하는 지역에 거주했던 쇼쇼니족은 와이오밍에 가장 많이 모여 살았다. 유럽인들이 이 땅을 발견하기 전, 미국 중서부의 이 지역은 아라파호, 라코타, 크로우 부족 인디언들의 터전이기도 했다.
루이스는 쇼쇼니족에 대해 "키가 작고, 발목이 굵으며, 다리가 휘었고, 발은 넓적하고 납작했다. 요컨대 내가 본 어떤 인디언 부족과 비교해도 체구가 빈약했다"고 기록했다. 다만 그는 남자 전사들이 항상 전쟁에 대비하고 있었다고 인정했다. 밤마다 최고의 말들은 티피(tepee) 근처 말뚝에 묶어 두었던 것이다. 미국 탐험가의 눈에 그들의 조리 방식은 원시적으로 보였지만, 쇼쇼니족은 일 처리의 조직력이 뛰어난 부족이었다.

쇼쇼니족의 티피. 1870년경 촬영된 자료 사진.
젊은이들 사이에서 특히 귀하게 여겨진 덕목은 용기였다. 부족 내에서의 지위는 바로 이 용기에 달려 있었다. 뱀이라는 상징은 자연의 에너지와 힘, 그리고 동시에 신비주의의 영역과 연결된다. 쇼쇼니족은 때때로 '뱀의 공동체'라고 불렸다. 이 명칭은 루이스와 클라크의 첫 탐험 시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부 인디언들이 이 위험한 파충류의 고기를 먹는다는 사실을 발견했기 때문이라는 설이 있다. 물론 이 이름이 다른 유래를 지녔을 가능성도 같은 만큼 있다. 공동체의 일부는 아이다호와 오리건을 흐르는 스네이크 강(Snake River) 유역에 살았다. 결국 자연은 언제나 상징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치누크 — 무역의 전문가, 타고난 언어학자?
루이스와 클라크의 길목에 나타난 또 다른 부족은 다른 원주민 집단들과 확연히 구분되는 특징을 지녔다. 루이스는 그들의 온순한 성품과 공격성의 부재를 언급하면서도, 역시 중요한 점으로 일종의 강도 짓 기질도 지적했다. 바로 치누크(Chinook)족이다. 이들은 어업과 무역 분야의 뛰어난 능력으로 널리 알려져 있었다.
다른 부족들, 그리고 무엇보다 백인들 — 예컨대 오리건 애스토리아(Astoria) 교역소의 모피 상인들 — 과 효과적으로 소통하기 위해 치누크족은 완전히 새로운 언어 체계를 발전시켰다. 여러 인디언 언어에 영어, 프랑스어, 심지어 러시아어까지 혼합된 독특한 방언이었다. 놀람은 "He-He", 들소는 "Moos-Moosa", 시계는 "Hy-as Watch", 성탄절은 "Hy-as Sunday"로 불렸다.

세인트루이스 미시시피 강변에 세워진 루이스와 클라크 기념비.
루이스의 회고록에는 원주민을 향한 우월주의적 시각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루이스는 그들을 야만인이라 불렀다. 숫자가 몇 배로 많았음에도 그들이 한 번도 폭력으로 위협하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그들의 외모는 그에게 역겹게 느껴졌다. 그는 그들의 사소한 절도 행위와 성 도덕, 그리고 무자비한 상술을 비난했다." 게다가 치누크족은 담배 피우는 맛도 들였고, 도박에도 인색하지 않았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언제나 자기 뜻을 관철할 줄 알았다는 점이다. 재치와 기질, 그리고 설득의 기술을 활용해서 말이다. 기록에 따르면 "구매자가 구매를 포기하면, 다음 날 인디언은 훨씬 낮은 가격을 요구했다." 인디언들은 자신들의 물건 가치를 정확히 알았고, 효과적으로 흥정하는 법을 터득하고 있었다. 이러한 무역 능력은 수상 교통로와 인접해 있었기에 가능했다. 덕분에 그들은 해안 전역에서 물건을 팔 수 있었다.

가장 흥미로운 것은 경계선에 있다
머리웨더 루이스와 윌리엄 클라크의 기행문은 우리가 아메리카 대륙을 조금 다른 시각에서 다시 발견할 수 있게 해주는 지식의 보고다. 인디언 공동체의 모습은 당연히 탐험대라는 프리즘을 통해 비친다. 특정한 교육을 받았고, 우리와 다른 사회적 감수성을 지닌 사람들의 눈을 통해서 말이다. 그럼에도 북미 원주민의 역사를 새로운 맥락에서 더 깊이 이해하려는 시도는 엄청난 가치를 지닌다. 그 가치는 탐험가들의 일기, 그리고 『미국의 경계를 찾아서 — 루이스와 클라크 탐험』과 같은 기록 속에 생생히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