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다크 투어리스트(Dark Tourist)'를 보게 되었다. 이 시리즈는 현대 사회의 독특한 현상인 '다크 투어리즘'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저널리스트 데이비드 패리어(David Farrier)가 무섭거나 음침한 역사를 지닌 전 세계의 색다른 여행지를 찾아 떠나는 과정을 담아내며, 잘 알려지지 않은 곳들과 경험들을 조명한다. 이 다큐멘터리를 보며 몇 가지 궁금증이 생겼다. 대체 '다크 투어리즘'이라는 용어는 어디서 유래했을까? 세계에는 어떤 다크 투어리즘 명소들이 있으며, 얼마나 인기가 있을까? 이번 글에서는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답을 찾아보려 한다.
다크 투어리즘이란 무엇인가?
다크 투어리즘(Dark Tourism)이란 죽음, 재난, 공포의 역사가 얽힌 장소를 방문하는 여행 형태를 말한다. 자연재해가 발생했던 곳일 수도 있고, 전쟁·암살·집단학살·고문이 벌어졌던 곳일 수도 있다.
'다크 투어리즘'이라는 용어는 1996년 글래스고 칼레도니언 대학교(University of Glasgow Caledonian)의 두 학자인 레논(Lennon)과 폴리(Foley)가 처음 사용했다. 레논은 2017년 발표한 글에서 관광과 죽음 사이에는 늘 밀접한 관계가 있어 왔다고 설명했다. 고대 로마에서 군중들이 검투사의 목숨을 건 결투를 환호하던 순간부터 공개 처형을 구경하던 시절까지, 인류는 언제나 죽음에 매료되어 왔다. 그렇다면 오늘날 사람들은 왜 이런 곳들을 찾아가는 걸까?

대체로 다크 투어리즘 여행지를 방문하는 사람들은 그곳에서 일어난 비극적 이야기를 감정적으로 소화하고, 역사의 어두운 단면을 되돌아보며 과거와 그 문화 속으로 몰입할 수 있다. 교육적 가치도 무시할 수 없다. 거의 모든 다크 투어리즘 명소는 방문객을 위한 투어 프로그램과 안내 서비스를 갖추고 있어, 과거의 음울한 기록을 배우고 체감할 기회를 제공한다. 그럼 지금부터 세계 최고의 다크 투어리즘 명소들을 살펴보자.
파리 카타콤(프랑스)

유래
18세기 말, 파리 당국은 도시 내 묘지들의 유해를 다른 곳으로 옮기기로 결정한다. 주된 원인은 과밀화였다. 묘지가 점점 얕아지면서 시신의 부패가 지표면으로 드러났고, 질병까지 확산되기 시작한 것이다. 파리 당국은 접근성이 좋은 톰브-이수아르(Tombe-Issoire) 채석장을 새로운 매장지로 선정했고, 1785년 파리 최대 규모의 생스-이노상(Saints-Innocent) 묘지부터 이장 작업이 시작되었다. 1786년 4월, 새 부지는 '파리 시립 납골당(Paris Municipal Ossuary)'으로 성역화되었고, 이후 로마의 카타콤을 본떠 '카타콤'이라 불리게 되었다.

그곳에서 무엇을 볼 수 있을까?
파리 카타콤에는 약 600만 명의 유해가 잠들어 있다. 뼈들은 예술적인 형태로 차곡차곡 쌓여 있는데, 이것이 재해의 벽에 섬뜩하고 기묘한 분위기를 더한다. 카타콤은 파리 시내 지하 약 20미터 깊이에 위치해 있는데, 이는 아파트 5층 높이에 해당한다. 입구를 지나면 먼저 카타콤의 역사를 설명하는 전시실들이 나오고, 구불구불한 복도 몇 개를 통과하면 마침내 납골당 입구에 도착한다. 지하 납골당은 최소 800미터 이상 이어져 있으며 뼈와 해골로 가득하다. 때로는 위 사진처럼 '통(barrel)' 형태로 배열되기도 한다. 파리 카타콤은 방문할 가치가 충분한 곳으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파리의 대표 명소 중 하나다.
킬링 필드(캄보디아)

1975년부터 1979년까지 크메르 루주(Khmer Rouge)는 캄보디아를 통치하며 최대 200만 명을 살해했다. 마르크스주의 지도자 폴 포트(Pol Pot)의 주도 아래, 그들은 캄보디아를 중세로 되돌리려 했다. 수백만 명의 도시 주민들은 강제로 시골의 집단 농장으로 끌려가 노동에 동원되었다. 크메르 루주는 스스로 땅을 일구며 살아가고 화폐가 필요 없는 농업 유토피아를 꿈꿨지만, 이 거대한 사회 재건 실험은 끔찍한 대가를 치렀다. 수백만 명이 기근, 질병, 탈진, 그리고 처형으로 목숨을 잃었다.

폴 포트는 사회가 '제로 원(Year Zero)'부터 다시 시작될 것이라 선언하며 캄보디아를 외부 세계로부터 고립시켰다. 도시는 텅 비었고, 돈과 사유재산, 종교는 사라졌으며, 사람들은 강제로 농촌 공동체에 편입되었다. 특히 지식인들은 표적이 되어 학살당했는데, 안경을 쓴 사람이나 외국어를 할 줄 아는 사람조차 예외가 아니었다. 오늘날 추모 공원의 중심에는 커다란 스투파(stupa), 즉 돔 형태의 기념탑이 서 있다. 그 안에는 8,000명이 넘는 희생자들의 유해가 안치되어 있다. 건물 뒤편에는 집단 매장지가 남아 있어 풀숲 사이로 아직도 뼈 조각들이 드러나 보인다. 참혹한 역사를 다시 들려주는 안내 게시판들이 곳곳에 세워져 있다. '킬링 필드'는 의외로 캄보디아에서 인기 있는 관광 명소로, 방문객들은 어두운 과거의 희생자들에게 애도를 표할 수 있다.
비키니 환초(마셜 제도)

비키니 환초(Bikini Atoll)는 태평양 마셜 제도의 일부를 이루는 석회암 산호초 지형이다. 미군은 1946년부터 1958년까지 이곳에서 여러 차례 원자폭탄 실험을 감행했고, 그 결과 섬의 모든 생태계가 파괴되었다. 한때 열대 낙원이었던 이곳은 독이 든 황무지로 변하고 말았다. 미국이 섬을 핵실험 장소로 지정하면서 주민들은 강제 이주를 당해야 했다. 1946년 3월, 비키니 섬 주민들은 조상의 무덤에 꽃을 바치고 작별 인사를 한 뒤, 언젠가 반드시 돌아올 것이라는 희망을 품으며 고향을 등졌다. 같은 해 6월 1일, 42,000명이 넘는 미군이 비키니 환초에서 진행된 첫 핵실험을 지켜보았다. 이는 "안개와 방사성 잔해로 덮인 기둥 위에 솟아오른, 소름 돋는 물기둥"으로 묘사되었다(jstor.org).

그 후에도 수많은 폭발이 이어졌는데, 그중에는 1954년 세계 최초의 수소폭탄 실험도 포함되어 있다. 산호초에는 폭 1킬로미터가 넘는 거대한 분화구가 만들어졌고, 15 메가톤의 위력을 지닌 '브라보(Bravo)' 수소폭탄은 섬 세 개를 완전히 소멸시켰다. 이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된 폭탄의 무려 1,000배에 달하는 위력이다. 눈에 보이는 피해는 즉각 확인할 수 있었지만, 남겨진 방사능 피해를 조사하는 데는 수십 년이 걸렸다. 2016년, 이 섬들은 머무는 동안 식수나 음식을 섭취하지 않는다는 조건 하에 방문이 허용되었다. 가장 인기 있는 프로그램은 다이빙 투어로, 해저에는 수많은 난파선과 분화구를 볼 수 있다.
죽은 자의 날(멕시코)

'죽은 자의 날(Día de los Muertos)'은 멕시코와 라틴아메리카 여러 지역에서 열리는 이틀간의 축제다. 11월 1일과 2일, 즉 가톨릭의 '모든 성인의 날(All Saints Day)'과 '모든 영혼의 날(All Souls Day)'과 같은 날짜에 열린다. 이 시기에는 우리 세계와 영혼의 세계 사이의 경계가 열린다고 믿는다. 사람들은 이때 죽은 이들의 영혼이 사랑하는 가족 곁으로 돌아와 함께 축하할 수 있다고 여긴다. 그래서 산 자들은 고인을 귀한 손님처럼 맞이하며 영혼들이 즐길 선물들을 준비한다. 이 축제는 돌아간 이들을 기억하고 감사하는 계기이자, 죽음을 훨씬 더 긍정적으로 바라보게 하는 특별한 문화다.

이 축제를 찾는 다크 투어리스트들에게는 볼거리와 즐길 거리가 무궁무진하다. 멕시코시티에서는 매년 대규모 퍼레이드가 열려 화려한 플로트(float)와 분장한 공연자들, 거리에서의 춤광이 이어진다. 미초아칸(Michoacán)은 치즈를 채운 포블라노 고추 요리와 빵 데 무에르토(pan de muerto) 같은 별미로 유명하다. 빵 데 무에르토는 설탕을 입힌 전통 달콤한 빵으로, 생명의 순환을 상징하는 둥근 모양을 하고 있다. 오아하카(Oaxaca)에서는 가족들이 사진과 장식용 해골, 음식과 술로 제단을 꾸미며 사랑하는 이들을 추모한다. 밤에 산타 크루스 쇼소코틀란(Xoxocotlán) 묘지를 거니는 것도 잊지 못할 경험이 될 것이다. 무덤과 제단 사이에서 전통적인 분위기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아우슈비츠 추모 박물관(폴란드 오시비엥침)

아우슈비츠(Auschwitz)는 나치 최대의 강제 수용이자 절멸 수용소로 전 세계에 악명 높은 곳이다. 제2차 세계대전 중 1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이곳에서 목숨을 잃은 것으로 추정된다. 처음에는 정치범 수용소였던 이곳은 점차 유대인과 그 밖의 '적대 세력'들을, 흔히 가스실을 통해 학살하는 거대한 수용소 군단으로 변모했다. 1945년 1월, 소련군이 아우슈비츠로 진격하자 나치 관료들은 수용소를 비우라고 명령했고, 6만 명의 수용자들을 도보로 다른 곳으로 이동시켰다. 이 행진은 '아우슈비츠 데스 마치(죽음의 행진)'로 알려져 있으며, 행진 도중 수많은 수용자들이 목숨을 잃었다.

아우슈비츠 추모 박물관 가이드 투어
아우슈비츠는 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방문객이 찾는 다크 투어리즘 명소 중 하나다. 오늘날 이곳은 추모 사이트로 운영되며, 부지는 무료로 개방된다. 개인 또는 단체 단위로 신청할 수 있는 가이드 투어도 제공된다. 아우슈비츠는 크게 아우슈비츠 I과 아우슈비츠 II로 나뉜다. 아우슈비츠 I은 더 오래된 전신 수용소(강제 수용소)로, 본 박물관이 자리한 곳이다. 여기에는 수용소 생활의 실물 유물, 즉 신발과 가방, 머리카락의 잔해를 전시하는 전시관이 있다. 아우슈비츠 II, 즉 아우슈비츠 비르케나우(Auschwitz-Birkenau)는 옛 수용소의 바라크(병영)가 보존되어 있는 곳이다.
폼페이(이탈리아)

폼페이는 서기 79년 베수비오 화산 폭발로 파괴된 도시로 역사에 이름을 남겼다. 화산재와 잔해에 파묻힌 이 도시는 수 세기 동안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가, 16세기에야 비로소 발견되었다. 고대 유물을 찾아 캄파니아 지방에 도착한 탐험가들이 발굴을 시작하면서, 그들은 재 아래 통째로 잠든 도시 하나를 발견하게 된다. 건물들은 온전한 채 서 있었고, 해골들은 쓰러진 자리 그대로 있었다. 심지어 빵과 보존 처리된 식품들까지, 시간이 멈춘 채 발견되었다. 폼페이에서 출토된 유물들은 고대 사회의 삶을 연구하는 역사학자들에게 귀중한 단서가 되어 주었다.

폼페이와 에르콜라노
오늘날 폼페이를 찾는 다크 투어리스트에게는 다양한 선택지가 있다. 폼페이 유적은 약 44헥타르에 달해, 고대 로마 도시의 웅장함을 마음껏 체험할 수 있다. 보존된 신전, 극장, 원형 경기장, 공공 건물들이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다. 또 다른 선택지는 에르콜라노(Ercolano, 헤르쿨라네움)다. 이곳은 겨우 4에이커가 조금 넘는 작은 휴양 도시였다. 에르콜라노와 폼페이의 차이점은 에르콜라노가 훨씬 더 좋은 상태로 보존되어 있다는 점인데, 이는 폼페이와는 다른 형태의 화산 재해를 겪었기 때문이다. 폼페이는 떨어지는 화산탄과 거대한 화산 가스 기둥에 의해 건물 대부분의 윗부분이 파괴된 반면, 에르콜라노는 두꺼운 화산재 층에 덮이며 보존되었다.

베수비오 화산
베수비오 화산 등반 역시 인기 있는 다크 투어리즘 코스다. 베수비오 국립공원은 화산 지질학적 특징과 함께 야생 동식물이 잘 보존되어 있어 방문할 가치가 충분하다. 공원까지 차로 이동한 뒤 트레일을 따라 걸으며 주변의 아름다운 경관을 감상할 수 있고, 정상까지 올라가는 가이드 하이킹 프로그램도 운영된다. 베수비오는 오늘날에도 활화산이다. 다만 현대 기술 덕분에 화산 폭발은 상당히 일찍 예측할 수 있다. 마지막 분화는 1944년이었으며, 오늘날 많은 과학자들은 베수비오가 다른 분화를 위해 이미 충분히 '늦어지고 있다'고 말한다.
맺음말
다크 투어리즘은 수천 명의 여행객이 죽음과 파괴의 역사를 지닌 세계 곳곳을 찾아가는 현상이다. 인류 역사의 비극적 사건들은 언제나 병적인 매력을 발산해 왔고, 이런 장소들을 찾는 관광객들의 발걸음이 그 증거다. 이번 글에서 소개한 여섯 곳은 전 세계에 펼쳐진 다크 투어리즘 명소 중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다크 투어리즘이 다소 기묘한 낙인을 받기도 하지만, 결국 이는 끔찍한 잔혹 행위의 희생자들에 대한 존중을 표하고, 문화적 과거를 배우며, 공감의 수준에서 연결되는 한 가지 방식이다.

이 글에서는 멕시코의 '죽은 자의 날'처럼 비교적 가벼운 사례부터 인류 역사의 가장 어두운 단면까지, 다크 투어리즘의 다양한 모습을 담아보았다. 이 글이 다크 투어리즘이 무엇인지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고, 오늘날 현대 사회에서 이런 여행이 왜 그렇게 큰 인기를 끌고 있는지에 대한 통찰을 제공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