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잉글랜드 요크에서 80명의 젊은 남성이 안장된 고대 묘지가 발견되었습니다. 대부분의 유골은 머리가 잘려 있었고, 연구자들은 이들이 로마 검투사라고 추정하고 있습니다.
관중석의 환호 속에서 벌어지는 생사를 건 결투, 원로원 의원과 황제까지 즐겁게 했던 오락, 그리고 끝없는 훈련과 노예라는 낙인. 이것이 바로 로마 검투사들의 삶이었습니다. 타인의 오락을 위해 서로를 상처 입히고 죽여야 했던 이들은 황제가 지켜보는 가운데 콜로세움에서만 싸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검투사들은 로마 제국 전역, 심지어 변방 지역에서도 군중을 즐겁게 했습니다. 2004년 잉글랜드 요크에서 이루어진 특별한 발견이 이를 증명합니다. 연구진은 이곳에서 80명의 남성 무덤을 찾아냈는데, 대부분의 유골은 머리가 잘려 있었습니다. 과학자들은 이들이 옛 로마 속주에서 군중의 환호를 위해 피를 흘린 검투사들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과학이 밝혀내는 과거의 비밀
현대의 유골 분석 기술과 DNA 분석 덕분에 오늘날 우리는 고대 묘지에 묻힌 사람들이 누구인지, 어디에서 왔는지 매우 정확하게 답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연구 결과는 폴샛 비아샛 히스토리(Polsat Viasat History) 채널의 역사 다큐멘터리 시리즈 '과거의 보물과 그 비밀'에서 만나볼 수 있습니다. 7월 18일 월요일부터 평일 밤 8시에 방송됩니다.

첫 번째 에피소드에서는 과학자들이 성경에 나오는 바벨탑의 미스터리를 풀어내는 모습이 그려집니다. 이 시리즈는 그 밖에도 스톤헨지와 돌무더기에 묻힌 사람들의 비밀, 그리고 요크 검투사의 신비로운 묘지 등을 다룹니다.
변방의 살육
로마 시대에 에보라쿰(Eboracum)이라 불렸던 요크는 잉글랜드 북부에 위치하며 로마의 정복 사업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바로 이곳에 서기 초기 몇 세기 동안 로마군의 주요 군사 기지가 자리했습니다. 211년 이곳에서 숨을 거둔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황제를 비롯한 황제들도 이곳을 방문했습니다. 또한 콘스탄티누스 대제는 요크에서 자신의 군단 병사들에 의해 황제로 추대되었습니다.

대륙 출신 제국 시민이나 제국 행정부와 협력한 현지인들이 살았던 로마령 브리타니아는 포장 도로망과 요새로 촘촘히 연결되어 있었고, 하드리아누스 장벽으로 칼레도니아(오늘날 스코틀랜드)의 용맹한 픽트족으로부터 막혀 있었습니다. 이곳에도 로마식 생활 방식과 로마식 오락이 필요했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인기 있는 것, 즉 서커스 공연과 검투 경기를 빼놓을 수 없었습니다. 특히 대륙에서 저명한 귀빈이 방문할 경우를 대비해 브리타니아의 요새와 도시에는 목재 원형극장이 우후죽순처럼 들어섰고, 그곳에서는 동물과 인간이 갖가지 조합으로 잔인하게 격돌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오락을 위해, 그리고 죽음을 각오한 채 싸웠다는 점입니다.
집단 처형의 희생자?
2004년, 옛 로마 도시 에보라쿰 중심지에서 진행된 건설 공사 중 신비로운 묘지가 발견되었습니다. 그곳에서 무려 80명에 달하는 키 크고 건장한 남성들의 유해가 나왔습니다. 이들은 비교적 젊은 나이에 사망했으며, 가장 나이가 많은 이조차 약 45세였습니다. 대부분의 유골에서 두개골에 해머에 의한 타격 흔적이 발견되었고, 상당수는 머리가 잘려 있었습니다. 처음에 과학자들은 이곳이 집단 학살로 살해된 사람들의 무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무덤은 도시 외곽, 강 건너편에 위치해 있었는데, 로마 시대에 그곳은 대규모 묘지였습니다. 반대편 강가에는 군사 기지가 있었습니다.
초기 가설 중에는 이곳이 군단병들의 묘지일 가능성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이론은 설득력이 떨어졌습니다. 병사들은 도시 경계 내에 묻히지 않았으며, 시신은 고향으로 운반되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요크의 무덤에서는 유골 외에도 다양한 부장품이 발견되었습니다. 사후 세계로 가는 길에 필요한 음식과 화폐 등입니다. 이는 고인들이 귀족 계층 출신임을 시사하는 것으로 보아, 매장지는 황제 카라칼라의 명으로 잔혹하게 진압된 속주 출신 귀족 반란군일 것으로 추정되었습니다. 그러나 정밀 조사 결과, 진실은 전혀 다를 수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사자의 송곳니와 발톱
우선, 희생된 남성들 중 다수가 현지 출신이 아니었다는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유해 중에는 북아프리카나 중동 출신으로 추정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즉, 적어도 일부는 아주 먼 곳에서 요크로 왔다는 뜻입니다.

많은 뼈에는 심각한 상처, 창이나 해머에 의한 타격 흔적이 남아 있었습니다. 결정적인 단서는 사자의 송곳니와 발톱에 물어뜯긴 시신의 발견이었습니다. 야생동물과의 싸움은 보통 원형경기장에서 벌어졌습니다. 아마도 멀리 아프리카에서 온 야생 고양잇과 동물이 어떤 중요한 로마 인물의 방문을 맞아 특별 공연을 위해 데려왔고, 그 희생자는 살점이 뜯겨 나가는 비참한 최후를 맞았을 것입니다.
또한 부상당한 검투사를 마무리하기 위한 해머 타격과 죽음 직전이나 직후의 참수는 검투 경기의 전형적인 마무리 방식이었습니다. 더욱이 연구 결과, 요크에 묻힌 많은 남성들의 오른팔 근육이 더 발달해 있었습니다. 로마 연대기 작가들이 이미 지적했듯이, 이는 어린 시절부터 전투 훈련을 받은 검투사의 특징적인 신체 특징입니다.
이 가설이 사실이라면, 요크에는 현재 알려진 세계 최대 규모의 검투사 묘지가 있는 셈입니다. 터키 에페소스에서도 해머로 두개골이 파손되고 몸통에서 잘려 나간 유사한 묘지가 발견된 바 있습니다.
스타 검투사의 장례식
많은 무덤에서 과학자들은 말고기나 소고기 같은 육류의 흔적을 발견했습니다. 이는 고인들을 위해 호화로운 장례 만찬이 열렸음을 보여줍니다. 로마에서는 귀족들이 이런 방식으로 장사되었기 때문에 연구자들은 처음에 그렇게 판단했습니다. 그러나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검투사에게도 웅장하고 값비싼 장례식이 거행되는 일이 있었습니다. 투기장에서 실력을 인정받은 노예 검투사들은 명성과 위상을 얻었고, 시간이 지나면서 자유와 부도 손에 넣었습니다. 일부의 지위는 오늘날 축구 스타에 필적할 정도였습니다.
역사적 배경 또한 '검투사' 이론을 뒷받침합니다. 서기 초기 몇 세기의 요크는 브리튼 제도에서 가장 중요한 로마 중심지 중 하나였습니다. 황제들조차 이곳을 방문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 중요성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잉글랜드의 이번 발견은 자신의 문화, 법질서, 관습과 오락을 제국의 가장 먼 구석까지 일관되게 확산시킨 로마의 코스모폴리탄적 성격을 확인시켜 줍니다. 가장 잔혹한 오락까지도 말입니다.
'과거의 보물과 그 비밀', 폴샛 비아샛 히스토리 채널. 7월 18일 월요일부터 평일 밤 8시 첫 방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