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이야기

사라진 벨로루시 영부인, 루카셴코 대통령의 아내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나?

국가 공식 행사나 외국 원수 방문 때마다 영부인은 언제나 가장 빛나는 자리에 섭니다. 최고급 맞춤복과 전문 헤어스타일리스트의 손길로 단장한 모습은 곧 남편의 얼굴이죠. 하지만 벨로루시는 사정이 완전히 다릅니다. 알략산드르 루카셴코 대통령이 결혼 40년을 넘겼음에도, 그의 아내 즉 영부인의 모습을 본 사람은 오랫동안 아무도 없었습니다.

현직 벨로루시 대통령은 첫눈에 반했다고 전해집니다. 키 크고 잘생긴 소년, 작지만 매력적인 흑발 소녀. 겨울 학교 발표회에서 두 사람은 '디야데크 므로즈(동계 할아버지)'와 '스네주잉카(눈송이)' 역을 함께 맡았고, 이후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사랑한다면 '눈송이'처럼

소녀의 이름은 갈라였습니다. 교사의 딸로 예의 바른 성격이었다고 합니다. 저서 『루카셴코: 러시아의 잠재적 차르』의 저자 안제이 브제지에츠키와 말고르자타 노춘은 이렇게 적습니다.

루카셴코는 온갖 방법으로 그녀의 마음을 얻으려 애썼습니다. 꽃다발을 들고 찾아가고, 공부할 책을 빌려주고, 장모님의 환심까지 사려 했습니다.

당시 모든 여학생들이 그를 좋아했지만, 그의 마음은 오직 '눈송이' 한 사람에게 있었습니다. 날씨가 어떻든 왕복 8킬로미터 길을 걸어가며 구애를 이어갔고, 마침내 1975년 갈리나 로디오노브나 자우냐로비치와 결혼에 성공합니다.

사라진 벨로루시 영부인, 루카셴코 대통령의 아내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나?

참으로 잘 어울리는 커플이었죠. 루카셴코 부부의 결혼식 모습입니다.

하지만 원하는 것을 손에 넣자 루카셴코는 더 이상 노력하지 않았습니다. 콜호스(집단농장)에는 수군거림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신혼 남편에게 불륜이 의심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고, 사람들은 그날 밤 누가 그의 침대를 데웠는지 끊임없이 소문을 주고받았습니다.

결혼 후 미래의 대통령은 정치 경력을 쌓기 시작하며 조금씩 승진해 올랐습니다. 그는 영향력을 쌓는 방법을 빠르게 익혔습니다. 알맞은 사람들과 함께 사우나에 들어가 보드카를 마시고, 그보다 더 전통적인 절인 오이와 소시지를 곁들이곤 했죠.

사라진 벨로루시 영부인, 루카셴코 대통령의 아내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나?

결혼 후 수년이 지나도록 갈리나 로디오노브나는 매력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의원 자리에 오르자 그는 민스크의 호텔로 이사해 회의에 자유롭게 참석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고향에는 종종 다녀갔지만 아내와 아들들은 데려오지 않았고, 가족과 사생활에 대한 정보가 언론에 흘러나오지 않도록 세심하게 주의했습니다.

간혹 갈리나 로디오노브나가 남편을 찾아가기도 했습니다. 그곳에서 그녀는 친절하고 소박한 태도로 남편의 동료들의 호감을 얻었고, 스스로도 친한 친구들을 사귀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남편은 그녀를 사람들로부터 점점 더 고립시켰고, 수도의 친구들과 연락하는 것조차 금지했습니다. 저서에서 인용된 스베틀라나 칼린키나의 회고는 이렇습니다.

루카셴코가 대통령 출마를 결심했을 때 가족 관계는 이미 상당히 나빠져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제가 아는 한, 대통령이 아내를 동행시킨 것은 딱 한 번, 보리스 옐친과 그의 아내 나이나도 함께한 예루살렘 방문이 유일합니다.

소련 남자의 남성성

새로운 벨로루시 대통령은 소련 장군들의 모습을 본떠가기 시작했습니다. 어린 시절 TV로 그들을 본 기억이 있죠. 루카셴코는 소련성에 깊이 물든 전형적인 소련 남자입니다. 그래서 그는 국가 행사의 격식을 자신에게 익숙한 방식, 즉 소련식으로 바꾸기 시작합니다.

군복을 입고 훈장을 단 채 진지한 표정으로 우렁찬 목소리로 연설합니다. 그 자신의 생각에 스탈린처럼 남성성과 힘의 모범이 되는 것이죠. 이러한 테스토스테론의 홍수 속에서 곁에 여자가 설 자리는 없습니다. '민족의 태양' 이오시프 비사리오노비치가 소련의 영부인과 함께 모습을 드러낸 적이 있었습니까?

루카셴코가 대통령직에 오르면서 갈리나 로디오노브나의 강제 은거 생활도 시작됩니다. 아내는 시골의 소박한 집에 남아 전 생애의 흔적이라도 지키려 필사적으로 애썼습니다. 알략산드르의 두 아들 역시 아버지의 그늘 아래 경력을 쌓기 위해 시골을 떠났습니다.

사라진 벨로루시 영부인, 루카셴코 대통령의 아내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나?

갈리나가 낳은 두 아들과 함께한 루카셴코. 가문의 막내 콜라는 훗날의 연애 관계에서 태어난 아들입니다.

하지만 고독만이 버려진 영부인의 문제는 아니었습니다. 알략산드르는 그녀가 태어난 마을이 그녀에게 진정한 감옥이 되도록 만들었습니다.

탑 속 공주처럼

처음에는 갈리나가 마을을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었습니다. 이웃들과 수다를 떨고, 물건을 사러 다니기도 했습니다.

『루카셴코: 러시아의 잠재적 차르』의 저자들은 이렇게 전합니다.

집권 초기에 루카셴코의 아내는 젖 짜기나 말이 끄는 수레 타기 등 좋아하는 활동 중 사진 촬영을 허락했습니다. 언론은 그녀를 조롱했고, 사진에는 "벨로루시의 영부인"이라는 캡션을 달았습니다. 이러한 보도 이후 갈리나 로디오노브나는 입막음당했고, 기자들과 접촉하는 것이 금지되었습니다.

어찌 보면 루카셴코의 아내는 스스로 운명을 결정지었습니다. 개방적인 성격 덕분에 사람들이 여러 일에 대해 그녀에게 도움을 청하도록 부추긴 것이죠. 남편은 이것을 몹시 싫어했습니다.

사라진 벨로루시 영부인, 루카셴코 대통령의 아내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나?

왼쪽은 좋아하는 소의 젖을 짜는 갈리나 로디오노브나. 오른쪽은 그녀의 뒤를 이어 대통령 곁에 선 이리나 아벨스카야입니다.

영부인은 정치에 개입하면 안 된다

낡은 소련 관행에 따라 대통령 부인의 집 문 앞에는 케이크와 꽃, 각종 선물을 든 청원 줄이 늘어섰습니다. 갈리나는 이들을 들어줄 뿐 아니라 여러 문제에 대해 할 수 있는 한 개입하려 노력했습니다. 결국 이러한 '활동'에 대한 답변은… 루카셴코의 집 주위에 높은 벽돌 담장이 세워지고, 대통령 집무실로의 접근은 경비원들이 막는 형태로 이루어졌습니다.

사실상 영부인의 가택연금이 시작된 것입니다. 가족의 남성들은 더 이상 마을에 나타나지 않았고, 갈리나 로디오노브나는 크리스마스 때 며칠간의 외출 허가를 받아 민스크의 자녀와 손주들을 만나는 것이 유일한 낙이 되었습니다.

벨로루시 영부인의 사건에는 또 다른 이면이 있습니다. 통통하고 쾌활한 시골 여인 갈리나 로디오노브나는 공식적으로도 비공식적으로도 더 젊은 모델로 교체된 것입니다. 이미 집권 첫 해부터 알략산드르 루카셴코는 개인 의사였던 이리나 아벨스카야를 곁에 두었습니다.

날씬한 파란 눈의 금발 미녀는 요염한 눈빛으로 외국 방문과 공식 국가 행사 등 거의 모든 자리에서 대통령을 수행했습니다. 불륜은 수년간 이어졌고, 비공식 영부인은 정식 영부인을 그림자로 밀어냈습니다.

하늘에서 뚝 떨어진 어린 콜라?

아벨스카야는 벨로루시에서 가장 강력한 여성이 되었고, 그녀의 가족도 놀라운 영향력을 얻었습니다. 마침내 이리나는 아이를 낳았습니다. 모두가 알았지만 아무도 공개적으로 입 밖에 내지 못했던 사실, 미콜라이(콜라로 불림)가 대통령의 아들이라는 것입니다.

상황은 상당히 기괴해졌습니다. 갈리나 로디오노브나는 지방의 한 마을에 유폐된 채, 수도에서는 정보기관이 아벨스카야가 국가원수의 아이를 낳는 분만실을 경호했습니다.

사라진 벨로루시 영부인, 루카셴코 대통령의 아내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나?

모든 정황이 루카셴코가 막내 서자 콜라를 후계자로 키우고 있다는 것을 시사합니다.

공식 언론은 이 주제에 대해 함구했지만, 평범한 시민들의 집에서는 소문이 난무했습니다. 게다가 저자들은 이렇게 덧붙입니다.

[…] 콜라의 존재는 4년간 세상에 숨겨졌습니다. 루카셴코는 심지어 세금 신고서를 작성할 때 세 번째 아들의 존재조차 무시했습니다.
야권 정치인들이 알략산드르 그리고리예비치의 사생활을 언급하며 아내가 가택연금 상태이고 대통령에게 서자와 정부(情婦)가 있다고 항의하자, 그는 정적이 아닌 자신의 유권자들에게 답했습니다. "영부인이 필요하다면 그들을 뽑으시오." '그들', 즉 야권을 말한 것입니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루카셴코는 아내를 계속 가두어 두었고, 정부는 더 새롭고 더 젊은 모델로 교체해 갔습니다. 게다가 서자 콜라는 네 살부터 아버지 곁에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특별히 맞춰 지은 초미니 군복과 넥타이를 차려입은 금발 아이는 이런 차림새로 군사 퍼레이드를 사열하기도 했습니다. 야권 언론에서만 가끔 이런 질문이 제기되었습니다. 콜라의 어머니는 과연 어디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