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이야기

1865년 4월, 로버트 E. 리와 율리시스 S. 그랜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로버트 E. 리(Robert E. Lee)

1865년 4월 9일, 로버트 E. 리 장군은 애포매톡스 코트 하우스(Appomattox Court House)에서 북버지니아군을 이끌고 율리시스 S. 그랜트(Ulysses S. Grant) 장군에게 항복했습니다. 이 항복으로 미국 남북전쟁은 사실상 종결되었습니다.

두 장군은 윌머 맥클린(Wilmer McLean)이라는 인물의 저택 응접실에서 만났습니다. 흥미롭게도 맥클린은 원래 북부(연방) 지지자였으며, 남군이 이 지역에 진주하자 피난을 떠났던 인물입니다. 리 장군은 그랜트 장군이 제시한 관대한 항복 조건을 수용했는데, 이 조건에 따라 남군 병사들은 개인 무기를 소유한 채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었지만, 다시는 미국에 대항해 무기를 들지 않겠다는 조건을 지켜야 했습니다. 또한 리 장군은 굶주림에 시달리던 남군 병사들을 위해 식량 지원을 요청하기도 했습니다.

항복 이후 리 장군은 버지니아주 리치몬드의 자택으로 돌아갔으며, 1865년부터 1870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워싱턴 앤드 리 대학교(Washington and Lee University) 총장으로 재직하며 후학 양성에 힘썼습니다.

율리시스 S. 그랜트(Ulysses S. Grant)

그랜트 장군은 1865년 4월 9일 애포매톡스 코트 하우스에서 북버지니아군의 항복을 받아들이며 남북전쟁의 종전을 이끌었습니다. 전쟁이 끝난 후 그는 1869년부터 1877년까지 미국 제18대 대통령으로 재임했습니다.

대통령 재임 기간 동안 그랜트는 남부 재건(Reconstruction) 사업을 감독했고, 아프리카계 미국인 남성에게 참정권을 보장한 수정헌법 제15조의 비준을 지원했으며, 국립공원 제도의 기틀을 마련했습니다. 또한 미국 정부와 아메리카 원주민 부족 간의 평화를 증진하는 것을 목표로 한 '인디언 평화 정책'을 법제화했습니다.

임기를 마친 후에는 세계 각지를 여행하고 회고록을 집필했으며, 1885년 후두암으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역사에 남은 두 사람

로버트 E. 리와 율리시스 S. 그랜트는 오늘날까지 미국 남북전쟁을 상징하는 가장 대표적인 인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두 사람은 뛰어난 군사적 재능을 지닌 지휘관이었을 뿐만 아니라, 미국 역사의 흐름을 결정짓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인물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