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이야기

엘리자베스 1세를 분노케 한 폴란드 외교관, 런던을 발칵 뒤흔들다

한 명의 폴란드 의원이 목숨을 잃을 뻔한 외교 스캔들을 일으켰습니다. 단 몇 문장이면 충분했습니다. 권력의 정점에 서 있던 엘리자베스 여왕은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에 대한 진심 어린 적개심을 품게 되었고, 이 갈등의 흔적은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가장 위대한 작품 속에서조차 발견됩니다.

16세기 튜더 왕조가 다스리던 잉글랜드는 세계적인 정치 강국 중 하나였습니다. 광범위한 대외 정책을 펼치던 잉글랜드는 대륙 반대편에 위치한 또 다른 유럽 강국, 즉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과 이해관계가 부딪힐 수밖에 없었습니다.

충격에 빠진 여왕

1597년, 스페인과 전쟁 중이던 잉글랜드는 스페인 항구에 대한 해상 봉쇄를 실시하며 무기와 전쟁에 사용될 수 있는 모든 물품, 심지어 식량까지 수입을 금지한다고 선언했습니다. 이 조치는 이베리아 반도와 활발한 곡물 무역을 하던 그단스크 상인들에게 치명타였습니다. 배들이 스페인 해안에 접근하는 것을 거부당하는 것은 물론, 잉글랜드 여왕의 명을 받은 사략선들에게 공격받고 약탈당하고 나포당하기까지 했습니다.

엘리자베스 1세를 분노케 한 폴란드 외교관, 런던을 발칵 뒤흔들다

그단스크. 발트해에서 가장 번화한 항구 도시 중 하나였다. 그림은 17세기 작품(출처: 퍼블릭 도메인).

이러한 탄압과 중요한 판매 시장의 차단에 직면한 상인들은 지그문트 3세 바사 국왕에게 도움을 청했습니다. 국왕은 신민을 위해 나서서 엘리자베스 1세 튜더 여왕에게 공해의 자유를 회복하고 그단스크 주민들이 입은 손실을 배상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첫 번째 외교 교섭이 아무런 성과를 거두지 못하자, 국왕은 자신의 비서관이자 막대 가문 출신인 37세의 도브진 성주 파베우 지아윈스키(Paweł Działyński)를 특사로 잉글랜드에 파견했습니다.

이전에 네덜란드에 사절로 파견된 경험이 있던 지아윈스키는 1597년 8월 4일 그리니치 궁전에서 궁정과 오케스트라에 둘러싸인 가운데 공개 알현으로 여왕을 접견했습니다. 폴란드 전통 의상을 입은 그는 라틴어로 연설을 통해 해상 봉쇄의 철폐, 그단스크 상인들의 무역 자유 회복, 압수된 물품의 반환, 피해자에 대한 배상을 강력히 요구했습니다.

지아윈스키는 공법과 자연법에 따라 바닷길은 모두에게 개방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아울러 이 봉쇄가 거의 모든 수입을 농산물 수출에 의존하던 폴란드 귀족 계층의 이해에 직결된다고 덧붙였습니다.

한 마디가 넘어선 순간

그의 요구에는 두 가지 위협이 담겨 있었습니다. 하나는 폴란드의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지그문트 국왕이 만회할 수 있는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다는 경고였고, 다른 하나는 야기엘워 왕조와 합스부르크 가문과의 인연(지그문트의 왕비는 합스부르크 가문의 안나였음)을 상기시키며 잉글랜드에 위협이 될 수 있는 폴란드-오스트리아-스페인 동맹을 노골적으로 암시하는 것이었습니다.

홀에는 무거운 침묵이 내렸습니다. 지아윈스키의 연설은 참석자들에게 전율을 안겼습니다. 목격자들의 기록에 따르면, 여왕은 분노에 들끓으며 옥좌에 몸을 던졌고 하마터면 알현을 중단할 뻔했습니다. 그런 다음 라틴어로 사절에게 말했습니다. '아, 얼마나 실망스러운가... 내 평생, 나도 내 백성도 이런 연설은 들어본 적이 없다... 저런 망언을 감행한 용기에 감복할 따름이다!'

엘리자베스 1세를 분노케 한 폴란드 외교관, 런던을 발칵 뒤흔들다

지그문트 3세 바사는 잉글랜드 여왕과의 분쟁에서 노골적인 위협도 서슴지 않았다. 그의 사절은 거의 목숨을 잃을 뻔했다(출처: 퍼블릭 도메인).

격앙된 연설 속에서 그녀는 지그문트 국왕을 모욕하며 그의 젊은 나이와 세습이 아닌 선거로 왕위에 올랐다는 사실을 지적했습니다. 지아윈스키 본인도 예외는 아니었는데, 그녀는 그가 군주들 사이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고 비난했습니다.

마지막으로 그녀는 폴란드 정치 상황에 대한 깊은 지식을 과시하며, 폴란드-합스부르크 동맹이 그리 굳건하지 않다고 반박했습니다. 불과 얼마 전까지 오스트리아 가문의 한 인물이 지그문트에게 왕국을 빼앗으려 했다는 것입니다. 모든 격한 말을 쏟아낸 뒤 그녀는 두 번째 방으로 달려 나갔습니다.

사절을 독살하라!

폴란드 사절이 연루된 궁정 스캔들의 소식은 급속히 런던 전역으로 퍼져나갔습니다. 여왕의 답변이 즉시 기록되어 공개되었기 때문입니다. 백성들은 여왕이 모욕당했다고 판단했고, 도시 곳곳에서 소요가 벌어졌습니다. 사람들은 왕실 모욕에 대한 처벌을 요구했으며, 지아윈스키를 공격하고 구타하고 심지어 독살하려 하기까지 했습니다.

엘리자베스 1세를 분노케 한 폴란드 외교관, 런던을 발칵 뒤흔들다

엘리자베스 1세는 폴란드 사절의 대담함에 충격을 받았다(출처: 퍼블릭 도메인).

사절이 머무르던 여관 주인은 갑자기 일주일 치 숙박비를 모두 지불할 것을 요구했고, 그동안 호의적이었던 잉글랜드 귀족들 중 누구도 그가 떠나는 날까지 자신의 저택으로 초대할 용기를 내지 못했습니다.

여왕이 화나면… 온 백성이 화난다

지아윈스키는 지그문트 국왕에게 전달할 엘리자베스 여왕의 공식 답변을 받았고, 가능한 한 빨리 잉글랜드를 떠나라는 권고를 받았습니다. 폴란드로 돌아온 후 작성한 방문 보고서에는 잉글랜드 당국 관계자가 그에게 남긴 조언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친구로서 친구에게 하는 충고입니다. 소요 때문에 잉글랜드에 더 이상 머물지 마십시오. 보십시오(이것이 절대 군주제의 현실입니다). 여왕이 모욕당하면 온 백성이 모욕당한 것으로 여깁니다. 누군가 당신을 모욕하거나 해치기 위한 구실을 만들어내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알현 나흘 후, 두 번째 스캔들이 터졌습니다. 이번에는 런던 근처의 한 극장 무대에서였습니다. 템스강 하구, 그리니치 왕궁 근처에 있는 섬의 이름을 딴 연극 '개의 섬(The Isle of Dogs)'이 공연되었는데, 이 작품에서 지그문트 3세 바사 국왕이 풍자적으로 묘사되었습니다.

지아윈스키가 이 문제에 개입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해당 공연은 무대에서 걷어졌고, 극작가는 체포되어 런던탑에 수감되었으며, 모든 공공 극장은 몇 달(!) 동안 폐쇄되었습니다.

셰익스피어도 분노했을까?

이 이야기에는 정치적 결말과 문학적 결말이라는 두 가지 결말이 있습니다. 곧 드러났듯이, 지아윈스키의 불운한 외교 임무는 결과적으로 완전한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이듬해인 1598년 1월, 엘리자베스 1세는 잉글랜드 내 그단스크 상인들의 특권을 재확인해 주었고, 여름에는 그녀의 사절 조지 카워(George Cawer)가 폴란드로 파견되어 폴란드 곡물의 스페인 자유 운송을 허용하고 지난해 런던에서 벌어진 지아윈스키 사건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엘리자베스 1세를 분노케 한 폴란드 외교관, 런던을 발칵 뒤흔들다

예한 게오르크 비베르트가 그린 폴로니우스(출처: 퍼블릭 도메인).

문학적 결말은 이렇습니다. 몇 년 후,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햄릿' 완전판이 잉글랜드에서 출간되었습니다. 그 안에서 불쾌하고 지나치게 아첨하는 관료 폴로니우스라는 인물이 처음 등장했습니다.

흥미롭게도 몇 달 전인 1603년에 출간된 초판에서는 이 인물의 이름이 코람비스(Corambis)였습니다. 야기엘론 대학의 테레사 바우크-울레비초바(Dr. Teresa Bałuk-Ulewiczowa) 박사가 지적했듯이, 폴로니우스(라틴어 'Polonius'는 폴란드인을 의미함)라는 이름과 폴란드, 그리고 지아윈스키의 외교 사절단을 연결 짓는 것은 자명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