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이야기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발명품: 500년 전에 그려진 미래의 설계도

르네상스 만능인, 레오나르도 다 빈치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르네상스 시대 '만능인'의 전형으로 꼽힙니다. 그림을 그리고, 조각하고, 글을 쓰고, 수학을 다루고, 자연을 탐구하고, 악기를 연주했습니다. 특히 《모나리자》와 《최후의 만찬》이라는 걸작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으며, 다양한 기계와 생활용품에 대한 설계 도면과 스케치로도 높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1452년 4월 15일에 태어난 레오나르도는 자신이 살던 시대를 훨씬 앞서간 인물로 일컬어지며, 그의 발명품 중 일부는 지금 보아도 여전히 참신하게 느껴집니다. 물론 회의적인 시각도 있습니다. 500년 이상 전 한 사람이 그토록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낼 수 있었겠느냐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다 빈치를 '시간 여행자' 혹은 고도로 발전된 외계 문명의 사절로 묘사하는 음모론까지 등장했습니다. 그렇다면 그의 작업 중 실제로 '시대를 앞섰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비행 기계

인류는 언제나 하늘을 나는 것을 꿈꿔 왔습니다. 이미 신화 속에서 다이달로스는 새 깃털을 밀랍으로 붙여 만든 날개를 만들었고, 그 날개를 단 아들 이카루스는 비행에 나섰다가 젊은 나이에 목숨을 잃었습니다. 요람 위로 연이 날아들었던 순간을 운명의 계기로 여겼던 레오나르도 역시 이 새에게 중요한 단서를 발견했습니다. 비행 기계 연구 초기 단계에서 그는 새의 날개 구조와 움직임 분석에 착안했습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발명품: 500년 전에 그려진 미래의 설계도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스케치한 헬리콥터와 행글라이더

"나는 나무 골조에 실크를 씌우고 그 위에 새 깃털과 통풍용 그물을 얹었다. 그러나 이 아이디어는 틀린 것으로 판명됐다. 새를 그대로 따르는 것은 적절한 방법이 아니었다. 박쥐의 날개를 본떠 만든 날개가 훨씬 더 나은 선택이었다. (...) 덕분에 공중으로 뜨기가 쉬워졌다. 구멍이 없으면 공기가 날개를 통과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생각 역시 결국 틀렸음이 드러났다."

그려낸 스케치를 바탕으로 종이 모형을 만들고 밀랍으로 마감하기도 했습니다. 그가 직접 하늘로 날아올랐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1506년 몬테체체리(Monte Ceceri)에서 그의 비행 기계 하나로 시험 비행을 진행했고, 조종은 토마소 마시니(Tomasso Masini)가 맡았다는 기록이 있지만, 이를 뒷받침하는 문서는 남아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 이야기 자체가 하나의 신화에 불과하다는 견해가 더 우세합니다.

레오나르도는 시간이 흐르면서 인간은 너무 무겁고 육체적으로도 약해서 날개와 팔의 움직임만으로 공중에 뜨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그의 도면에는 현대 헬리콥터를 닮은 설계가 등장합니다. 다만 로터와 기체가 서로 반대 방향으로 회전한다는 설정 때문에 실제로 이륙할 수는 없는 구조였습니다.

결국 위대한 발명가는 비행 기계 개발을 접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결정이 성급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2002년 10월, 영국인 조종사 주디 레덴(Judy Leden)이 500년 전 그의 도면을 바탕으로 제작된 글라이더의 시험 비행사를 맡았습니다. 다 빈치가 당시 접근할 수 있었던 재료만 사용했습니다. 검은 포플러와 대나무 골조에 삼베 돛을 씌우고 가죽 끈과 삼 로프로 묶은 것이었습니다. 시험은 성공으로 끝났습니다.

낙하산

기계를 이용해 공중에 뜨는 문제에서는 실패를 논할 수밖에 없지만, 추락의 문제는 사정이 달랐습니다. 레오나르도는 낙하산의 발명자로 간주됩니다. 그의 혁신적인 해법은 다음과 같이 소개됩니다.

"작동 원리는 매우 간단하다. 끝이 위를 향한 피라미드 모양의 물체에 몇 개의 줄을 연결하는 것이다. 떨어지는 사람이 이 줄들을 붙잡으면 피라미드가 낙하 속도를 늦춰준다. 그 결과 느린 낙하 덕분에 지면에 충돌하지 않고 착지할 수 있다."

이 설계가 성공적임은 오랜 세월이 지난 후 입증됐습니다. 2008년 스위스 낙하산 전문가 올리비에 비에티테파(Olivier Vietti-Teppa)가 레오나르도의 스케치와 지침에 따라 만든 낙하산을 들고 650미터 상공에서 점프해 무사히 착륙했습니다. 그로부터 8년 전에는 영국 스카이다이버 에이드리언 니콜라스(Adrian Nicholas)가 비슷한 시도를 했고, 역시 아무 탈 없이 착지했습니다.

전쟁 기계

최초의 전차로 불리는 마크 I(Mark I)은 1916년 소믈 전투에서 영국군이 보병 지원용으로 처음 투입했습니다. 그런데 다 빈치는 이와 유사한 구조물을 훨씬 일찍 구상했습니다. 밀라노 공작 루도비코 스포르차에게 보낸 1482~1483년경의 편지에 그런 차량에 대한 최초의 언급이 등장합니다. 다 빈치는 이 편지에서 군사 기술자로서 자신의 재능을 내세웠고, 거북이를 연상시키는 장갑을 두르고 돌을 발사하는 대포를 갖춘 전투 차량을 포함한 일련의 전쟁 장치 건설 안을 제안했습니다. 그는 이렇게 구상을 요약했습니다.

"나는 또한 덮개로 보호되는, 안전하고 함락되지 않는 차량을 만들 수 있다. 이 차량들은 화망으로 적진을 돌파할 수 있으며, 적이 아무리 많아도 이를 공격할 수 없을 것이다. 또한 많은 병력이 상처 입지도 방해받지도 않은 채 차량 뒤를 따라 걸어갈 수 있다..."

이후 1487년경 레오나르도는 이 개념 설계를 스케치로 남겼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시제품이 제작됐다는 증거는 없으며, 아마도 당시 기술적 한계 때문인 것으로 추정됩니다. 만약 누군가 이 전투 차량을 실제로 만들기로 했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사실 도면에는 치명적인 오류가 숨어 있었습니다. 크랭크가 서로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도록 그려져 있었던 것입니다. 많은 역사학자들은 이 실수가 의도적인 것으로, 관심 있는 이들이 차량을 제작하지 못하도록 하려는 장치였다고 주장합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발명품: 500년 전에 그려진 미래의 설계도

1487년경 레오나르도는 이 개념 설계를 스케치로 남겼으나, 시제품이 제작됐다는 증거는 없습니다.

"특히 내 설계에는 적에게 탈취되는 상황에 대비해 작은 결함을 심어두곤 했다. 전투 차량의 설계가 그 예였다. 나는 도판에 의도적으로 일부 수정을 가했다. 덕분에 내 도면대로 발명품이 만들어진다면 움직이는 데 문제가 생길 것이다. 이 장갑 차량은 즉시 옆으로 미끄러지거나 뒤로 밀릴 것이다. 이것은 내가 의도적으로 넣은 결함이다. 이렇게 해두면 설계도가 잘못된 손에 들어가도 아무 쓸모가 없게 된다."

다 빈치는 또한 적진에 큰 피해를 입히기 위한 거의 30미터에 달하는 초대형 석궁을 설계했습니다. 노트에는 투석기와 총포의 도면도 남아 있으며, 원형 자물쇠의 발명도 그의 공으로 돌려집니다.

그 밖의 프로젝트

레오나르도에게 귀속되는 발명품의 수는 놀라울 정도입니다. 더 흥미로운 것들 중에는 지하수를 끌어올리는 장치, 가동교, 베어링 등이 있습니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흥미로운 발명 중 하나는 거리 측정 장치, 즉 거리계였습니다. 이를 활용해 다 빈치는 체사레 보르자가 의뢰한 이몰라(Imola) 시의 정밀 건축 측량을 수행했습니다.

"내가 거리계라고 부른 장치가 기억난다. 그것 역시 수레였다. 수레의 바퀴가 한 바퀴 돌 때마다 공 하나가 특별한 용기에 떨어지는 원리로 작동했다. 따라서 이 수레로 일정 거리를 달리고 공의 개수를 센 뒤 바퀴 둘레를 곱하면 거리를 알 수 있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발명품: 500년 전에 그려진 미래의 설계도

이 글은 벨로나(Bellona) 출판사에서 갓 출간된 크리스토프 마흐트(Christopher Macht)의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고백』을 비롯한 자료를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평생 선구자적 사고를 이어온 그는 약 6천 페이지에 달하는 노트를 남겼습니다. 대부분 기술적인 내용과 관련된 것이었지만, 여건의 제약으로 그 안에 담긴 해법 대부분은 실현되지 못했습니다. 이론이 실천으로 이어지지 않은 것입니다. 그럼에도 오늘날에도 많은 이들이 이 설계도를 바탕으로 위대한 설계자의 장치를 재현하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참고 자료

  1. M. Aszkiełowicz, 『Inventions of Leonardo da Vinci』, 카토비체, 2013
  2. 영화: 『Leonardo da Vinci – the all-round genius』, 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