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이야기

사만다 스미스: 10살 소녀는 핵전쟁으로부터 세계를 구했을까?

전쟁이 곧 터질 것인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한 명의 작은 미국 소녀는 당사자에게 직접 물어보기로 결심했습니다. 소련 지도자에게 보낸 한 통의 편지는 그녀를 평화 운동의 상징으로 만들었고, 소련에서도 환영받았지만, 그 계기는 공산주의 PR 전문가들에게 교묘히 활용되기도 했습니다.

"엄마에게 전쟁이 일어날 거냐고 물었어요." — 미국 메인주 맨체스터에 살던 소녀 사만다 스미스(Samantha Smith)는 훗날 자신의 운명을 바꾼 그 순간을 이렇게 회상했습니다.

1982년 11월, 이 질문은 결코 근거 없는 걱정이 아니었습니다. 언제든 또 다른 세계 대전이 터질 듯한 분위기였고, 모두가 그것이 핵전쟁일 것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어느 쪽도 승자가 되지 못하고 지구를 불모지로 만들 전쟁 말입니다.

딸의 질문에 엄마는 타임(Time) 잡지 표지를 보여 주었습니다. 새로운 소련 공산당 제1서기 유리 안드로포프(Yuri Andropov)의 얼굴이 실린 표지였습니다. 브레즈네프의 후계자이자 능숙한 KGB 출신인 그야말로 세계에서 몇 되지 않는, 갈등을 격화시킬 수도 긴장을 완화할 수도 있는 인물이었습니다.

사만다 스미스: 10살 소녀는 핵전쟁으로부터 세계를 구했을까?

사만다는 몹시 결단력 있는 소녀였습니다. 이미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에게 편지를 쓴 경험도 있었습니다. 사진은 1977년 워싱턴 방문 당시 여왕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10살 소녀는 이 답변에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모두가 그렇게 두려워한다면, 왜 아무도 그 사람에게 직접 전쟁을 시작할 생각이 있느냐고 묻지 않나요?"라고 되물었고, 엄마는 "네가 직접 편지를 써 보면 어떨까?"라고 격려했습니다. 소녀는 이 제안을 진지하게 받아들였습니다. 하지만 그녀 자신도 자신이 만들 파란을 예상하지는 못했습니다.

모스크바의 회신

모두를 놀라게 한 것은, 사만다의 편지가 소련 기관지 프라우다(Pravda)에 게재되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이듬해인 1983년 봄, 소녀는 안드로포프 본인의 답장을 받았습니다. 소련 지도자는 미국을 정복할 의도가 전혀 없다고 밝혔고, 제2차 세계대전 때 두 나라가 독일에 맞서 함께 싸웠던 사실을 상기시켰습니다. 또한 마크 트웨인의 『톰 소여의 모험』을 언급하며 사만다를 책 속의 베키에 비유하기도 했습니다. 재능 있고 진취적인 베키는 주인공 톰의 마음을 빠르게 사로잡았던 인물입니다.

안드로포프는 이 편지를 소련 선전의 무대로 활용하는 것도 잊지 않았습니다. 레닌과 모든 소련 노동자·농민의 견해가 얼마나 평화주의적인지 강조했고, 핵무기가 얼마나 끔찍한지 덧붙이며 차라리 모두 없애 버리는 것이 가장 좋다고 말했습니다. 마지막으로 그는 사만다에게 여름에 직접 소련을 방문해 그곳의 아이들을 만나고 소련 생활의 매력을 경험해 보라고 권유했습니다.

제1서기의 편지는 명백히 훌륭한 PR 작업의 산물이었습니다. 미국 소녀의 자발적인 편지를 받고 불과 몇 달 만에 발송된 이 답장은, 교묘한 연출을 통해 국제적 화해를 향해 뻗은 손길처럼 보였습니다. 특히 그림 같은 크림 반도의 아르텍(Artek) 소년단 캠프 초청은 더욱 따뜻하게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같은 시각, 공산주의 체제의 정치범들은 전혀 다른 종류의 소련 '수용소'에서 고생하고 있었습니다.

언론은 안드로포프의 화해적 어조에 주목했고, 사만다는 순식간에 스타가 되었습니다. 그녀는 미국 신문 칼럼과 TV 프로그램에 등장했고, 실제로 소련을 방문했습니다. 소련 또래 친구들과 우정을 쌓았고, 안드로포프와 최초의 여성 우주인 발렌티나 테레시코바로부터 전화를 받기도 했습니다.

전쟁인가, 평화인가

소련 제1서기의 확언에도 불구하고 전쟁의 위협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같은 해 9월, 세계는 우연히 핵전쟁 직전까지 치달았습니다. 모스크바 근교 세르푸호프-15(Serpukhov-15) 조기경보 센터의 컴퓨터가 미국발 미사일 여러 발이 소련을 향해 날아오고 있다는 신호를 포착한 것입니다. 다행히 신호를 접수한 장교 스타니슬라프 페트로프(Stanislav Petrov)는 이를 무시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규정대로라면 그는 본부에 공격을 보고해야 했고, 그렇게 되면 소련의 전체 핵무기고가 가동되어 미국에 대한 보복이 이루어졌을 것입니다.

페트로프는 이 신호들이 단순한 시스템 오류라고 판단했습니다. 양국이 수천 발의 핵미사일을 보유한 상황에서 누가 단 몇 발만으로 핵전쟁을 시작하겠는가? 게다가 두 강대국은 최근 서로 대화를 시도하고 있었습니다. 십대 소녀 사만다의 사건이 그 증거 중 하나였습니다.

사만다 스미스: 10살 소녀는 핵전쟁으로부터 세계를 구했을까?

1983년 소련 방문 당시 아르텍 소년단 캠프에 있는 사만다 스미스.

페트로프는 알지 못했겠지만, 편지 성공에 고무된 미국 소녀는 또 다른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내놓았습니다. 두 초강대국이 지도자들의 손주를 서로 교환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자발적 '인질'이라면 양측의 강경파들도 성급한 결정을 내리기 어려울 것이라는 논리였습니다.

물론 모든 미국인이 사만다와 그녀의 가족을 열렬히 환영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일부 회의론자들은 그녀를 크렘린이 이용한 '유용한 바보' 정도로 보았고, 또 다른 이들은 소련의 '제5열'로 취급했습니다. 그러나 대다수는 그녀를 사랑했고 언론 등장을 반겼습니다. 그래서 13살의 사만다는 TV 시리즈 『라임 스트리트(Lime Street)』 출연 제안을 받기도 했습니다.

안타깝게도 바로 그 인기가 소녀의 죽음에 간접적으로 한몫했습니다. 1985년 8월 25일, 촬영지에서 돌아오던 소형 비행기가 비 내리는 밤 숲속에 추락한 것입니다. 승무원과 승객 전원이 목숨을 잃었고, 그중에는 사만다와 동행하던 아버지도 있었습니다.

사만다 스미스: 10살 소녀는 핵전쟁으로부터 세계를 구했을까?

아르텍의 사만다 스미스 기념 거리.

기억과 허위 정보

비극은 큰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양 초강대국의 정상들이 유족에게 애도를 표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사만다의 죽음이 단순한 사고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소문이 퍼졌습니다. 소련 통신사 타스(TASS)는 은근히 음모 가능성을 시사하기까지 했습니다. 이런 떠보기 덕분에 소련 국민들은 소녀가 미국 CIA에 의해 영원히 입을 다물게 되었다고 믿을 수 있었습니다. 레이건 대통령의 강경 노선을 방해받지 않고 계속하기 위해서라는 논리였습니다.

미국 언론에 따르면, 소련에서는 이번 '습격'의 배후로 반소 성향 인사들을 지목하려는 시도도 있었습니다. 소련에서 추방된 블라디미르 부코프스키(Vladimir Bukovsky)와 미국-이스라엘계 랍비 메어 카헤인(Meir Kahane) 등이 비난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지구 반대편에서도 이 사건은 주목받고 있었습니다.

최근 기밀 해제된 CIA 자료에 따르면, 이 기관은 소련 측의 시사에 면밀히 주목하고 있었습니다. 예컨대 사만다 스미스에 대한 소위 '습격'은 소련 허위 정보 활동에 관한 보고서 중 하나에 언급되어 있으며, 스웨덴 총리 욜로프 팔메(Olof Palme)와 그레나다의 모리스 비숍(Maurice Bishop)의 죽음과 함께 나열되어 있었습니다.

사만다 스미스: 10살 소녀는 핵전쟁으로부터 세계를 구했을까?

CIA 문서 중 하나에는 사만다 스미스에 대한 소위 '습격'이 전직 스웨덴 총리 욜로프 팔메(1968년 사진)의 암살과 함께 언급되어 있습니다.

오늘날까지 의심이 남아 있지만, 십대 '평화 대사'의 죽음이 단순한 사고 이상이었다는 증거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활동과 인기가 없었다면 참사 자체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는 점은 인정해야 합니다. 어린 사만다가 정말 세계를 파괴에서 구했다면, 그녀는 그 대가로 가장 값비싼 대금을 치른 셈입니다. 그녀는 글, 사진, 우표, 그리고 이름을 남겼습니다. 잊힌 영웅의 기억은 www.samanthasmith.info 웹사이트에 의해서도 이어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