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그리스인이 두려워한 '야생의 여인들'
고대 그리스의 모든 이들은 이 거칠고 야만적인 여인들을 두려워했습니다. 로마에서는 다산의 신을 따르는 무리를 문자 그대로 숙청하는 방식으로 위험한 의식을 근절하기로 결정했고, 그 결과 유명한 난교 의식에 참여했던 수천 명의 사람들이 박해의 희생자가 되었습니다.
박카날리아(Bacchanalia), 즉 포도주와 다산, 즐거움의 신 디오니소스(바쿠스)를 기리는 그리스·로마의 밀교 의식은 당시 여성들에게 일종의 안전판 역할을 했습니다. 멸시받던 '약자', 즉 여성들이 억눌린 감정을 마음껏 내뱉을 수 있는 기회였던 것입니다. 여성들은 신의 권속에 있었다는 신화 속 님프들을 본떴으며, 이들은 메나드(maenads), 박칸테(bacchantes)라는 이름으로 역사에 남게 됩니다.
경계하라, 야생의 여인들
축제가 열리는 동안에는 평소의 어떤 규범도 적용되지 않았습니다. 그리스의 한겨울이면 여인들은 도시를 떠나 해발 약 2,500미터에 달하는 파르나소스 산의 가장 높은 봉우리로 올라갔습니다. 포도주에 취한 채 숲속에서 날뛰었고, 신비주의적 황홀경에 빠진 상태에서 동물을 찢어 생고기를 먹었다고 전해집니다. 또한 방탕한 행위를 서슴지 않았다는 소문도 퍼져 있었습니다.

박카날리아는 대그리스(Magna Graecia) 지역에서 시작되어 로마로 전파되면서 타락한 난교 의식으로 변질되었습니다. 사진은 루벤스의 그림 '박카날리아'의 일부입니다.
오늘날까지도 역사가들은 박칸테스의 황홀경이 과연 음악과 포도주, 잠 못 이루는 밤만으로 빚어진 것인지 의문을 품습니다. 혹시 약물을 사용하지는 않았을까요? 마찬가지로 박카날리아의 성적인 측면이 디오니소스의 권속인 음란한 사티로스 조각상이나 남근 이미지를 전시하는 수준에 머물렀는지, 아니면 그 이상의 무언가가 있었는지도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그리스인들은 그들을 따라가거나 해치는 일조차 감히 하지 못했기 때문에 진실을 알 길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 숭배 의식은 너무나 섬뜩하고 매혹적이어서 고대 예술의 걸작 중 하나인 에우리피데스의 피비린내 나는 비극 『박채(The Bacchae)』(기원전 405년)의 소재가 되었습니다. 이 작품에서 메나드들은 산 사람을 찢어 죽일 수 있는 존재로 그려졌습니다.

디오니소스를 기리는 의식은 여성들이 방탕하게 굴고, 미친 듯이 춤추고, 난교에 참여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습니다. 기원전 5세기 아티카 회화에 등장하는 메나드(신의 신봉자)의 모습.
메나드의 모습은 고대 회화와 스코파스의 아름다운 조각상 복제품에도 남아 있습니다. 조각 속 젊은 여인은 고개를 뒤로 젖히고 머리카락을 등 뒤로 흘려내리고 있습니다. 아름답고 곡선이 돋보이는 몸이 뒤틀리면서 옷자락이 은밀한 부위를 드러내기 시작합니다. 여인은 분명히 취해 있으며, 디오니소스적 황홀경 속에서 자아를 잃어가고 있습니다. 수 세기 전에 잃어버린 그녀의 손에는 아마도 유명한 상징물들, 즉 죽은 염소와 티르소스(Thyrsus)라 불리는 디오니소스의 지팡이가 쥐어져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스의 메나드들은 좋지 않은 평판을 얻고 있었습니다. 알렉산더 대왕의 어머니인 잔인한 올림피아스도 그중 하나였다는 소문이 이런 인식을 더욱 굳혔습니다. 그러나 박칸테스를 둘러싼 진짜 스캔들은 공화정 시대의 로마에서야 터지게 됩니다.
자폭하는 사제들보다 더 심각한 문제
디오니소스(바쿠스) 숭배가 약속하는 현세의 행복과 내세의 구원이라는 전망은 아펜니노 반도 주민들에게도 매력적으로 다가왔습니다. 신앙은 매우 빠르게 확산되었고, 여성뿐 아니라 남성도 밀교 의식에 참여했습니다.
문제는 기원전 2세기 로마의 박카날리아에서 만취 상태의 난교, 청년들에 대한 추문스러운 행위, 그리고 의식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았던 여성들의 음란한 행동이 벌어졌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인신공양까지 이루어졌을지도 모릅니다! 게다가 진짜 디오니소스 교단이 조직적으로 형성되어 자체적인 비밀 의식, 의례, 서열 단계 등을 갖추었습니다. 이들은 국가로부터 독립된 조직 구조를 만들었는데, 마치 훗날의 프리메이슨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로마 당국에게 너무나 견딜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결국 기원전 186년 로마는 먼저 추종자들을 조사하고 숙청했으며(7,000명이 희생자가 되었습니다), 이후 디오니소스 숭배가 축소되고 온순한 형태로만 존재하도록 허용했습니다.
박카날리아에서 대체 무엇이 그렇게 음란하고 끔찍했는지는 불확실합니다. 하지만 같은 시기 로마에서 키벨레 숭배가 용인되었던 것을 보면, 상당히 중대한 사안임에 틀림없습니다. 이 프리기아 여신의 사제들, 이른바 갈루스(Galli)는 신들린 춤을 추다가 스스로 거세를 감행했습니다. 그런 다음 피 묻은 성기를 들고 도시를 내달려 남의 재산에 던져 넣곤 했습니다(이는 갇힌 비버가 사냥꾼을 피해 스스로 고환을 물어 떼어 버린다는 고대의 믿음과 관련이 있을 수 있습니다).

키벨레는 추종자들이 자행하는 거세로 악명 높은 프리기아의 다산 여신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로마에서는 그녀를 기리는 의식을 금지한 이가 없었습니다. 반면 박카날리아는 제한을 받았습니다. 그렇다면 디오니소스 축제에서는 대체 어떤 일이 벌어진 것일까요?
가장(家長)은 갈루스에게 새 여성용 의복을 입혀주는 것을 영광으로 여겼습니다. 원로원 의원들은 로마 시민이 이러한 의식에 참여하는 것을 금지했지만, 박카날리아에서처럼 숭배 의식에서 섬뜩하거나 음란한 관습을 '청소'하지는 않았습니다.
어쩌면 디오니소스 밀교 의식의 비밀은 참여자들이 통치자의 전능함에서 벗어나 관습과 질서의 속박을 깨고 자유로운 존재가 된다는 사실에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당국에게는 너무나 위험한 존재였던 것이겠지요…
***
이 글은 저자가 최신 저서 『수치의 시대: 고대의 성과 에로티시즘』을 집필하는 과정에서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