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이야기

타밀 호랑이 – 십대 소녀까지 동원한 스리랑카 내전의 참혹한 진실

아름다운 섬에 남겨진 전쟁의 상흔

스리랑카(옛 이름 실론)의 내전은 26년 넘게 이어졌으며, 국제사회가 지켜보는 가운데 극심한 참화를 낳았습니다. 관광객에게 천국처럼 보이는 이 섬의 가장 아름다운 해변 아래에는 분쟁 희생자 수천 명의 유해가 모래 속에 잠들어 있습니다. 전쟁의 한쪽에는 십대 소녀까지 강제 동원한 잔혹한 무장 조직 '타밀 호랑이'가 있었고, 다른 한쪽에는 집단 학살을 포함한 수많은 전쟁범죄를 저지른 정부군이 있었습니다.

타밀인을 향한 집단 학살

공개적인 전쟁이 시작되기 전부터 실론의 상황은 일촉즉발의 위기에 처해 있었습니다. 두 최대 민족 집단인 신할라족과 타밀족 사이의 갈등은 옛 영국 식민지가 독립한 직후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두 민족을 가르는 것은 거의 모든 것이었습니다. 신할라족은 주로 국토 남부에, 타밀족은 북부에 집중되어 살았습니다. 두 언어는 서로 다른 문자 체계를 바탕으로 하고 그 차이가 워낙 커서 통역 없이는 의사소통이 거의 불가능했습니다. 신할라족의 지배 종교는 불교였고, 타밀족은 대체로 힌두교를 믿었으며 일부는 기독교나 이슬람교를 따랐습니다.

타밀 호랑이 – 십대 소녀까지 동원한 스리랑카 내전의 참혹한 진실

1953년부터 1983년 사이 타밀족은 여섯 차례의 포그롬(집단 학살)을 겪었습니다.

신할라 다수파는 빠르게 정부를 장악했고 곧 완전히 지배하게 되었습니다. 이는 타밀족 권리의 점진적 축소로 이어졌습니다. 공무 기관에서 타밀어는 더 이상 통용되지 못했습니다. 솔로몬 반다라나이케 총리와 그 뒤를 이은 시리마보 반다라나이케는 국가의 완전한 국유화를 추진했고, 교회 학교마저 국유화되었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박해는 더욱 심해졌습니다. 1953년부터 1983년 사이 타밀족은 당국의 묵인 아래 여섯 차례의 집단 학살을 당했습니다.

그중 마지막 사건인 이른바 '검은 7월(Black July)'은 최대 3천 명의 목숨을 앗아갔습니다. 당시 수도였던 콜롬보에서는 정치인과 국가 기관에 선동된 폭도들이 도시에 사는 소수민족을 공격했습니다. 승려들조차 폭력을 선동했습니다. 스리랑카는 세계에서도 몇 안 되는, 불교가 피비린내 나는 잔혹한 형태로 드러난 나라입니다. 1976년 벨루필라이 프라바카란을 중심으로 타밀족이 무장 조직을 결성했고, 검은 7월을 계기로 정부와의 공개 전쟁에 돌입했습니다.

타밀일람 해방 호랑이(LTTE)

정부군과의 현격한 전력 차이에도 불구하고, 이 조직은 독립국가 '일람' 건설을 위해 무력 투쟁에 나섰습니다. 새 나라가 차지할 영역 중 일부는 실제로 점령되었고, 사실상 별개의 국가처럼 운영되었습니다. 타밀 호랑이가 장악한 땅에는 자체적인 정부, 군대, 법원, 교육 제도가 있었습니다. 곧 '호랑이의 목소리(Voice of Tigers)' 라디오 방송국과 타밀일람 국영 TV도 방송을 시작했습니다.

타밀 호랑이 – 십대 소녀까지 동원한 스리랑카 내전의 참혹한 진실

잘 무장된 병사가 8천~1만 명에 달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호랑이 조직의 정확한 규모는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추정으로는 잘 무장된 병사가 8천~1만 명에 달했습니다. 그렇다면 누가 이들을 지원했을까요? 조직은 아시아, 북미, 유럽 곳곳에 흩어져 살던 타밀 디아스포라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게다가 1980년대 중반부터는 조직의 밀수 활동에 대한 소식이 점점 더 자주 들려왔습니다. 이윽고 조직은 공식적으로 테러 단체로 규정되었고 일부 조직원들이 체포되었습니다.

이는 극적인 결과를 낳았습니다. 대규모 검거 이후 병력이 크게 줄자, 조직은 여성들을 모집하기 시작했고 그 연령은 갈수록 어려졌습니다. 결코 자발적인 모집이 아니었습니다. 분쟁 말기에는 부대의 거의 절반이 십대였습니다. 아이들은 집이나 공공장소에서 납치되었고, 구타와 방화도 자행되었습니다. 신병 훈련과 세뇌를 담당하던 베트리첼비(Vetrichelvi)는 17세에 여성 대원이 되었지만, 국제앰네스티는 14세 소녀들에 대한 언급도 남기고 있습니다.

처음에 여성과 청소년들은 주로 위생병 역할을 맡았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모든 부대를 지원하게 되었고, 심지어 보병과 자살 폭탄 테러를 담당하던 '검은 호랑이(Black Tigers)' 부대에도 배속되었습니다. 검은 호랑이는 1991년 인도 전 총리 라지브 간디 암살 등 전 세계에 충격을 준 자살 공격을 감행하기도 했습니다.

전쟁의 종언

21세기 첫 10년이 저물며 26년간 이어진 무력 분쟁도 막을 내렸습니다. 휴전 감시단이 섬에서 철수하자 스리랑카군은 테러 조직에 대한 대대적인 공세에 나섰습니다. 정부는 정규 군사 작전으로 호랑이의 분리 독립 야욕을 잘라냈습니다. 도시를 하나씩 다투는 전투에서 수천 명의 민간인이 목숨을 잃었고, 타밀족의 저항은 갈수록 필사적인 형태로 변해갔습니다. 2009년 마지막 공방전은 주로 자살 폭탄 테러 방식으로 이루어졌습니다.

타밀일람 해방 호랑이는 2009년 5월 17일 무기를 내려놓았고, 하루 뒤 분쟁의 종결이 선언되었습니다. 전쟁으로 인한 총 사망자는 약 9만 명에 달했습니다. 신할라족의 지지를 등에 업은 마힌다 라자팍사가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했습니다. 그의 경쟁자였던 사랏 폰세카는 얼마 지나지 않아 군사 기밀을 유출한 혐의로 정부의 고발을 받았습니다.

타밀 호랑이 – 십대 소녀까지 동원한 스리랑카 내전의 참혹한 진실

테러리스트가 된 소녀들. 그들은 타밀군의 거의 절반을 차지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으로 실론의 비극이 끝난 것은 아니었습니다. 2011년 유엔은 스리랑카 정부가 반인도적 범죄를 저질렀다고 고발하는 보고서를 발표했습니다. 보고서에 따르면 군은 포로를 총살하고 여성을 성폭행했으며, 병원과 유엔·적십자 시설을 고의로 포격하고 파괴했습니다. 그 결과 군은 최대 4만 명의 민간인을 살해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스리랑카 당국은 이 보고서를 편향되고 허위라고 일축했습니다.

두 달도 지나지 않아 또 다른 참담한 보도가 이어졌습니다. 당시 공개된 영상에 따르면 스리랑카군은 포로로 잡힌 타밀족을 상대로 성폭행과 집단 처형을 자행했습니다. 사진에는 해변에 버려진 민간인(아이들 포함)의 시신이 담겨 있었습니다. 라자팍사 대통령은 이 자료들이 정부를 깎아내리기 위해 조작된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항복한 타밀족 살해가 공식 명령이었다고 판단한 사랏 폰세카는 징역 3년형을 선고받아 수감되었습니다.

참고 자료

  1. Scars(흉터)(2020), 감독 아그니에슈카 즈비에프카(Agnieszka Zwiefka)
  2. Harrison F., Tamil Tigers appeal over shrine, news.bbc.co.uk [2021년 11월 26일 확인]
  3. Manogaran C., The untold story of the ancient Tamils of Sri Lanka, Chennai 2000.
  4. McConnell D., The Tamil people's right to self-determination, "Cambridge Review of International Affairs" 21(1).
  5. Sri Lanka: Tamil Tigers raid families to recruit child soldiers, amnesty.org.pl [2021년 11월 26일 확인]